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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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계절이 바뀌는 바람에 못 사고 다음 해를 기약하는 물건들이 있다.

봄에는 등나무 피크닉 바구니.
여름에는 레인부츠.
겨울에는 모카신.

특히 봄을 위한 피크닉 바구니는 백화점에 갈 때마다 눈여겨 보는 통에 지겨워진 언니가 이제 좀 사라고 하는데
막상 사려면 은근히 돈이 아까운 아이템이란 말이다.
이왕 사는 거 접시랑 포크까지 다 들어있는 비싼 걸로 사고 싶은데 그건 또 너무 비싸고...

이놈의 레인부츠도  내 돈으로 사려면 거의 20만원 돈이 넘어가는 거라서 초절정 가난뱅이인 나로서는 엄두가 안 난다.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가죽도 아닌 고무(혹은 비닐?)에 20만원을 쓸 순 없는 노릇...
하지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면, 내년에는 꼭 사고 말리라 다짐하지... ㅠㅠ
가끔은 내가 불행한 건 레인부츠가 없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기도 하고.

모카신도 그렇게 갖고 싶은 아이템 중 하나.
하지만 신발굽이 최소 7cm는 돼야 신을 맛이 나기 때문에 살까말까 고민 중인데
요즘엔 플랫슈즈에 맛들렸으니 굽이 낮아도 괜찮아.
어그랑 번갈아신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이 벙실벙실.
드라이빙 슈즈로 신어도 딱일 것 같고! 차도 없는 주제에 ㅋㅋ

게다가 모카신을 꼭 사야겠다 마음먹은 건 바로 이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때문. 



주인공 '작은 나무'가 가난한 소작농의 딸한테 송아지가죽으로 만든 작은 모카신을 선물해 주는데
냄새나고 더러운 그 여자아이는 신발에 달린 빨간 방울을 살짝살짝 건드려보며 제법 마음에 들어한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본 아버지에게 감나뭇가지가 부러질 때까지 얻어맞고선 모카신을 되돌려준다.
가진 거라곤 '잘못 발휘된 자부심' 뿐이기 때문.

나는 가난해도 모카신 좋아하는데.

인디언이 선물을 줄 때 그냥 상대방의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고 가버리듯이,
누군가 나의 의자에 모카신을 올려놓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원래 이 책을 읽으면 인생 전반의 '욕심'을 비워야하는 게 옳을 텐데
나는 어쩌자고 갖고 싶은 아이템만 늘었는지.
나는 자본주의의 딸. 

몇 년 전에 본 건데, 미국의 저명인사들이 제일 감명깊게 읽은 책을 한 권씩 소개한 기획기사가 있었다.
그 중 중복되는 책들이 몇 있었는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미국의 송어낚시>,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였지, 아마.
<위대한 개츠비>와 <미국의 송어낚시>는 철저히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담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크게 좋아하지 않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왠지 관심이 안 갔었다.
바보 멍충이인 나는 이 책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처럼
여기저기 떠도는 가슴 뭉클한 얘기들을 묶어놓은 책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부끄러운 무지의 소산.

가끔 주변사람들이 좋은 책을 소개해 달래서 <월든>을 추천해 주면
열이면 열, 따분해서 읽지 못하겠다고 말하던데
그런 사람들에게 다시 가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월든>과 비슷한 사상을 담고 있는데, 문체도 쉽고 줄거리까지 있어서 쉽게 읽힌다.
마음에 남는 문장도 <월든> 못지 않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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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구판절판


이제 산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천천히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품으로 토해낸 미세한 수증기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23쪽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 비(bonnie bee), '예쁜 벌'이었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I love ye"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다.-66쪽

할머니으는 체로키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비밀장소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 자신에게도 비밀장소가 있으며, 할아버지에게도 있다, 지금까지 한번도 물어본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비밀장소는 산꼭대기 가는 길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할머니 자신이 보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비밀장소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한번도 그 문제에 대해 조사해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비밀장소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 우연이긴 하지만 나한테도 비밀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그럴 수 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100쪽

또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들면 링거(개) 생각이 날 것이고, 또 나도 생각을 떠올리는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 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126쪽

한번은 의자에 앉으려고 하다가 내가 앉는 의자 위에 긴 칼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의 칼만큼 긴 그 칼은 술장식이 달린 사슴가죽 칼집 속에 들어 있었다. 윌로 존이 나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할머니가 말해주셨다. 이것이 인디언이 선물을 주는 방법이다. 인디언은 절대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하지 않는다. 선물을 할 때는 그냥 상대방의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고 가버린다.-230쪽

와인 씨는, 자신의 가족들은 모두 넓은 바다 건너에 살고 있어서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자신과 가족들이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똑같이 촛불을 켜는 것이다. 이렇게 촛불을 켤 때면 서로의 생각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과연 그럴 것 같았다.-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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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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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만나보면 성격은 그저 그럴 거야, 라고 생각하며 소개팅을 거절했는데
몇 년 후에 알고 보니 걔가 성격도 수준급이고, 나랑 취미도 같더라......... 라는 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위와 비슷한 후회막급 감정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고 느껴버렸다.
왜 이 책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없이 가볍고 말랑말랑한 연애소설 쯤으로 치부하고쳐다도 안 봤던 걸까.
별다른 기대 없이 읽었는데.... 언빌리버블! 액설런트!!!!!
아, 진작 읽을 걸. 진작 읽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어떤 책이든 그것을 읽기 전과 후의 인생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은 후의 내 인생은 그전보다 더 풍미도 짙고 농밀하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말을 빌어 얘기하자면,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처럼 온몸에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 듯이 후끈 달아오른다고나 할까?

이 책을 최근 연애감정을 몽글몽글 느낄락말락 하고 있는 M양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가을 연애에 성공하지 못하면 젖은 성냥갑이 되고 말지도 몰라,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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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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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을 파고드는 듯한 뜨겁고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을 때 티타는 달걀노른자로 만든 젤리를 쟁반에 담아 식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페드로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티타는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 이런 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얼굴과 배, 심장, 젖가슴, 온몸이 도넛처럼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 듯이 후끈 달아올랐다.-24쪽

티타는 눈물이 마른 채로 계속 울었다. 마른 눈물은 양수 없이 출산할 때처럼 아프다는 말도 있다.-37쪽

별들은 사랑하는 연인의 시선을 받으면 그 즉시 돌려보냈다. 거울로 장난치듯 지구를 향해 빛을 반사했다. 그래서 밤마다 별들이 그렇게 반짝거렸던 것이다.-68쪽

옷을 뚫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나눈 후로는 모든 게 전과 같지 않았다. 티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 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75쪽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식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124쪽

수프는 몸의 병이건 마음의 병이건 뭐든지 다 고칠 수 있다. -131쪽

본인의 말에 따르면 첸차는 두 눈을 감고 양손을 묶은 채로도 참판동고를 만들 수 있었다.-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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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9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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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의 두번째 단편선.
첫번째 단편선은 3년 전에 읽었는데 나는 그 때 알라딘 리뷰에 이렇게 써놨었다.


미국인들에게 좋아하는 소설을 물어볼 때 제일 흔한 대답 중 하나가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이길래 이다지도 열광하나 싶어 읽어봤다가 '흥!' 소리만 연달아 냈었다.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기 때문인데, 이상하게도 그 여운이 오래 남아 몇 달 지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봤었고
그제서야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릴 정도였으니 피츠제럴드에 대한 나의 애정은 정말 얕은 시냇물 수준.
단편을 꽤 썼단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과연 단편은 얼마나 큰 여운을 줄까 싶어 덥석 집어들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흥!'.
번역할 때는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원서로 읽으면 멋진 구절일 수도 있겠는데 번역해 놓으면 영 딴판인 문장들이 간혹 있었을까봐(?) 아쉽다.
번역문장에 비해 플롯은 참으로 훌륭한 듯하다. 장편으로 죽죽 늘려도 부족함이 없겠다.
 

(2006년 12월 24일)

 


나는 되게 멍청한 편인데, 똑똑한 체 하는 건 꽤나 좋아해서 소설을 읽고 번역이 어쩌고 저쩌고 들먹거릴 때가 왕왕 있다.
그러면 차라리 원어로 읽으면 될 텐데, 문제는 또 내가 그렇게까지 똑똑하진 않을 뿐더러 부지런하지도 않다는 것.
오죽하면 영문학을 전공했으면서 원어로 다 읽은 작품이 <고도를 기다리며>가 유일할까.

이번 두 번째 단편선은 첫번째 이후 꽤 오랜만에 나왔는데
첫번째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낀 주제에 두번째를 산 건 순전히 '벤저민 버튼' 탓.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벤저민 버튼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 탓.
도대체 합성을 한 건지 마법같은 분장 탓인지 할아버지인 브래드 피트까지 멋있을 정도였으니
피츠제럴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발전한 거다.

소설은 영화와 똑같진 않다.
영화 쪽의 결말은 너무나도 따뜻한 느낌이었는데 소설 쪽은 좀 쓸쓸하다.
그리고 생각이 참 많아진다.

특히나 머리에서 계속 떠나지 않는 생각은
어리게 태어나서 늙어가는 게 좋은지, 늙게 태어나서 갓난아기로 죽는 게 좋은지 하는 것.
물론 내가 아무리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해도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두 가지 경우 모두 처음엔 거동이 불편하고 마지막엔 기억이 사라진다는 점은 일치한다.
어머나, 인생이란 오묘해라.
나는 인생이란 '발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인생이란 건 그냥 생성과 소멸일 뿐.
발전했다 싶으면 소멸을 향해서 곤두박질 치는 거다.
누구에게라도 가차없다.
그리고 대를 이어 반복된다. 생성 소멸 생성 소멸....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몇 대에 걸쳐 반복하면서 인류 자체는 '발전'의 과정을 밟는다는 것.
어머나, 인생이란 오묘해라.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말고 또 다른 단편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도 엄지 두 개 다 내밀 정도로 훌륭하다.
<해변의 해적>은 은근히 내 취향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기억 때문에 피츠제럴드를 꽤나 사실적인 표현을 하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던 거다.
죄송합니다.
피츠제럴드의 상상력에 존경을. 

아, 이건 사족.
꽤 오래 전부터 <위대한 개츠비>를 영어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 다니는데
너무 생략된 부분이 많아서인지, 내가 못 알아먹어서인지, 역시나 재미가 없다.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고 싶으면 단편을 먼저 읽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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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gmin2516 2023-01-0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생각이 넓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