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어처구니없는 곳에 쓰게 되면 인생이 바뀐다는 걸 알게 된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일단 빚을 내서 요트를 한 대 사보길 바란다. 요트 정도는 되어야만 한다. 그러면 당신은 평생 바다를 동경했었다고 떠들어댈 것이다. (김연수)-13쪽
늘 언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무지한 채로 사랑하고, 이별한 뒤에야 똑똑해진다. 이 자체가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김연수)-25쪽
영국 작가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파티에 참석해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다 (세상에!) 커트 보네거트를 만났다는 것이다. 닉 혼비는 커트 보네거트를 추억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자녀에게 가르치되 대신 금연에는 단점도 있다고 알려주는 게 정당하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미국에 현존하는 가장 위댛나 작가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기회도 얻지 못하게 되리라고 말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읽고도 담배를 다시 피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커트 보네거트는 2007년에 죽었다. (김중혁) -154쪽
"네, 저는 김중혁이라고 합니다"라는 발음을 40년 가까이 해왔는데 아직도 나는 그 말을 하는 게 참으로 힘들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최대한 쉬운 이름을 지어주려는 것도 그 떄문이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은 대부분 이니셜이나 별명으로 불린다. 단편소설이야 'K'니 'M'이니 하는 이니셜이나 별명으로 해결한다지만 장편을 쓸 때는 이름이 꼭 필요한데, 이름을 지을 때마다 고민이 많다. 이런 이름은 너무 흔하고, 저런 이름은 부르기 힘들고, 그런 이름은 누군가의 이름과 비슷하고, 그렇게 이름을 생각하다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이름 짓기가 몹시 귀찮아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책에서 이름을 고르기로 했다. 눈을 감고 집어든 책이 <꼬마 니콜라>였다. 하필이면 외국 책이 걸릴 게 뭔가, 싶었지만 의외로 괜찮은 이름인 탄생했다. 책의 저자인 르네 고시니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고신희'라는 한국 이름이 떠올랐다. 부르기 좋은 이름이다. 글미을 그린 장 자크 상페의 이름을 보고는 '장상배'가 떠올랐다. 쓰고 싶었던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가 딱 맞아떨어지는 절묘한 이름이었다. 장상배와 고신희, 은근 잘 어울리지 않나. (김중혁)-204쪽
우리의 삶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일 뿐이다. 같은 자리를 맴돌긴 하지만 그 자리는 조금씩 넓어진다. 많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은 큰 원을 그릴 것이다.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살마은 더 적고 촘촘한 원을 그릴 것이다. 어떤 게 더 좋고 나쁜 건 없다. 넓은 모기향과 좁은 모기향은 삶의 취향일 뿐이다.-23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