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밝은 측면이 있어. 제아무리 어둡고 두꺼운 구름도 뒤쪽은 은색으로 빛나지." (98)
"아일레이 섬 근처에 주라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인구도 적고, 거의 아무것도 없는 섬입니다. 사람보다 사슴이 훨씬 많은 곳이지요. 토끼나 꿩, 바다표범도 많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증류소가 하나 있습니다. 근처에 아주 맑은 샘이 있는데 그 물이 위스키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더군요. 주라의 싱글 몰트를 그 샘에서 막 길어온 차가운 물에 섞어 마시면 매우 훌륭한 맛이 납니다. 그야말로 그 섬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맛이죠." 듣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거긴 조지 오웰이 <1984>를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오웰은 말 그대로 외딴섬인 그곳 북단에 작은 집을 빌리고 혼자 틀어박혀 책을 쓰다가 겨우내 건강을 해치고 말았지요. 원시적인 설비뿐인 집이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가혹한 환경이 필요했겠지요. 저도 그 섬에 일주일쯤 머문 적이 있습니다. 난로 옆에서 매일 밤 혼자 맛있는 위스키를 마시면서요." (150~151)
아마다는 종이가방에서 시바스 리갈을 꺼내 뚜껑을 땄다. 나는 잔을 두 개 챙기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냈다. 위스키를 잔에 따르니 무척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가까운 사람이 마음을 여는 듯한 소리다. (186~187)
"‘사람한테 찾아오는 가장 큰 놀라움은 늙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게 누구였더라?" 몰라,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다. 하지만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뜻밖의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생물학적으로(그리고 사회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느 날 누군가가 또박또박 알려주는 것. (190)
우리는 한동안 그대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시간을 새겨나갔다. 바늘이 나아갈 때마다 세계가 조금씩 앞으로 밀려나갔다. 창밖에는 밤의 어둠이 깔려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275)
나는 완성되지 않은 초상화를 기꺼이 그녀에게 주었다(약속했던 석 장의 데셍과 함께). 미완성이라서 오히려 더 좋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림이 미완성이면 나 자신도 언제까지나 미완성 상태인 것 같으니까 멋지잖아요." 마리에는 말했다.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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