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구판절판


"이봐, 언제 한번 놀러 와. 연락 자주 하세." 파트리지가 말했다.
그들은 차마 손을 놓지 못하고 깊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공중에서 맞잡은 손으로 펌프질을 해댔다.-25쪽

옛날 상사병에 걸린 뱃사람은 낚싯줄로 느슨하게 '진정한 연인 매듭'을 만들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냈다. 매듭이 느슨한 상태로 되돌아오면 그 관계는 제자리걸음, 단단하게 묶여서 돌아오면 사랑이 맺어지는 것, 매듭이 뒤집혀서 돌아오면 배를 타고 떠나라는 무언의 충고였다고 한다.-27쪽

"(...)그러고 보면 불행은 여럿이 함께 나누는 게 좋다는 옛말이 일리가 있어요. 주위 사람들이 함께 죽으면 죽기도 한결 쉬워지는 거 아니겠어요?"-317쪽

그들의 침묵은 늘 편안했다. 둘 사이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상처 입고 뒤틀린 사랑은 아니었다. 평생 단 한 번 오는 사랑은 아니었다.-332쪽

쿼일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센 바람 속에서 수십억 개의 눈발이 춤추듯 맴돌며 떨어져 내렸다.
"계모의 입김이야." 빌리가 말했다.-380쪽

쿼일은 페틀에게서 받은 유일한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페틀은 쿼일이 준 여남은 개의 선물 포장을 풀었다. 터키옥 팔찌, 열대어 어항, 카나리아 색깔 눈과 무대 의상에 다는 반짝이 입술의 엘비스 프레슬리 얼굴을 수놓은 조끼. 그녀는 마지막 포장을 풀고 나서 빈손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쿼일을 흘낏 보았다.
"잠깐만." 그녀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냉장고 문 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나왔다.
"당신 선물을 살 시간이 없었어." 그러곤 꼭 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을 펴자 양 손바닥에 갈색 달걀이 하나씩 있었다. 쿼일은 그것들을 집었다. 차가운 감촉. 그는 페틀의 행동을 다정하고 멋지다고 여겼다. 중요한 건 달걀이 아니라 그것이 그녀가 손으로 건넨 선물이라는 상징성이었다. 그에겐 그것으로 족했다. 그 달걀이 어제 슈퍼마켓에서 자기가 산 것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페틀이 자신의 속마음을 아는구나 생각했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건 선물을 주는 마음, 선물을 건네는 손길이라는 걸 알 만큼 그녀는 날 사랑하고 있어.-393쪽

"하루는 그녀가 내게 달걀 두 알을 줬어요. 날달걀을 선물로 준 거지요." 그떄 쿼일은 그 달걀로 오믈렛을 만들어 어미 새가 새끼를 먹이듯 페틀에게 떠먹였다. 그리고 달걀 껍데기는 종이컵에 넣어 부엌 캐비닛 위에 올려놓았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으리라.-429쪽

4월의 바다에 마치 살포시 미소 짓듯, 혹은 레이스 식탁보를 탁 펼치는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듯 흰 포말의 줄무늬가 보일 뿐 쿼일은 나타나지 않았다.-437쪽

자정이 되자 바람은 서쪽으로부터 곧장 불어오고 신음 소리가 통곡 소리로 높아졌다. 바람의 목록에도 들어있지 않은 지독한 바람. 무시무시한 강풍 블루노더와 블라스트와 랜드래시의 친척. 한가운데가 불그레한 작은 구름으로 시작되는 불스아이 스콜의 사촌. 북유럽의 전설에도 등장하는 뉴잉글랜드 해상의 사흘간의 동북풍 빈드그니르의 시어머니. 알래스카의 윌리워와 아일랜드의 도이니온의 아저씨. 러시아의 눈으로 유고슬라비아의 평원을 강타하는 코샤바, 슈테펜빈트,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스텝 지역에서 불어오는 부란, 크리베츠, 시베리아의 비우가스와 푸르가스, 북러시아의 미아텔의 이복자매. 그냥 북풍이라고도 불리는 캐나다 프레리에 휘몰아치는 블리자드와 그린란드의 얼음평원을 달리는 피타라크의 친형제. 이렇듯 어마어마한 세력을 지닌 저 이름 없는 바람은 예리한 칼날처럼 바위를 깎아냈다.-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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