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쿠다 히데오다, 오쿠다 히데오!
내가 가진 그의 책은 <공중그네>, <면장선거>, <인더풀>, <남쪽으로 튀어> 뿐이지만
그가 창조한 명캐릭터 '이라부' 덕분에 이미 나는 그의 노예.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이 책엔 '이라부'만큼이나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다.
먼저, 책중 좋아하는 인물 설문조사를 하면 당당히 1위를 꿰찰 것 같은 시마자키 구니오.
잘생기고 어딘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뿜으며 아이큐도 높고 그래서 당연하겠지만 도쿄대에 다니는 이 청년은
친형(아버지는 다르다)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죽자, 똑같은 곳에 가서 형과 똑같은 강도의 노동을 시작한다.
처음엔 도쿄대생 샌님이 왠일이냐며 홀대하던 공사장 인부들과도 친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시마자키는 사회의 불균형과 불합리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니 어쩔 수 있어? 사회를 이렇게 만든 올림픽의 몸값이라도 받아내는 수밖에.
여리여리한 줄만 알았는데, 시마자키, 결단력도 있구나! 대담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부잣집 도련님이자 방송국 PD인 다다시도 어쩐지 '엣지'있게 생겼을 거 같은데
근데 그 시절의 PD는 거의 연예인 '따까리'였나 보네. 왠지 쌤통이다 요것들 ㅋㅋ
열혈형사 오치하이 마사오는 일도 열심히 하는데다 가정적이기까지 해서 신랑감으로 꽤 괜찮을 거 같기도 하다가
잠복근무 때문에 외박이 잦을 거야 하고 앞서 생각하고선 순위를 조금 뒤로 뺐다.
조무래기 소매치기 무라타 아저씨는 왠지 짠하지만 키가 작으니까 이 역시 뒤로 빼고.
공안부의 야노는 좀 마음에 든다. 나는 언제나 엘리트에 끌리는 타입이니까.

결국, 나의 사심과 흑심을 한껏 포함한 설문조사 결과는,

1위: 시마자키.
2위: 야노.
공동 3위: 그 외의 모든 등장인물.
  

그러니까 한마디로 오쿠다 히데오가 참 잘 썼다는 얘기.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고 짠한 애정까지 갖게 캐릭터를 창조하다니!
사심 가득한 나는 시마자키가 올림픽의 몸값을 받아내는 데 성공해서 북한으로 도망치길 바랬지만
그래서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 뒤가 궁금해서 입안에 침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였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을 써주진 않았다.
아니, 일본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쪽이 당연히 해피엔딩이겠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시마자키의 매력에 퐁당 빠졌으므로 마음에 들지 않는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이 소설, 읽다 보면 단순히 '재미'만을 표방한 소설은 또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8올림픽 때 환경을 정화한다는 이유로 힘없는 이들을 내몰았던 경우가 있었는데
우리 이전에 1964년 이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구나.
과연 누구를 위한 국제행사인지, 올림픽 기간엔 내국인과 외국인 중 누가 더 중요한지
그걸 결정하는 건 국민이 아니라 권력층이었다.
그래서 재개발을 이유로 빈민층을 몰아내도 아무도 찍 소리 못했을 터. 적어도 겉으로는.
올림픽을 통해 국가의 우성 유전자만 보여주겠다는 건가.
<올림픽의 몸값>에서도 올림픽 기간 동안 야쿠자들은 시골 온천에 '짱박혀' 있겠다고 하던데,
그렇게 범죄좌와 빈민들을 몰아내고 나면, 그게 바로 진정한 올림픽 도시의 모습인가?
그렇다면 언론에 꾸며진 평양의 모습이랑 다를 건 또 뭐야.

이쯤에서 홍세화 선생님의 깨진 계란 이론이 생각나서
강연회 때 책 뒤에 필기(?)해 놓은 걸 다시 보려고 책장에서 <생각의 좌표>를 찾는데, 어랏, 없다.
어디 있지 어디 있지 하며 지난 7월 이사 후 정리를 안 해 장르, 국가, 작가 상관없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책장 앞에서
한참동안을 찾아봐도 역시나 없다! 
좌절해서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오는데 책상 옆 여행가방을 보니 그제서야 생각이 난다!!!
그 책, Ryu가 해외출장 갈 때 읽는다며 빌려갔었다 털썩...

어쨌거나 <올림픽의 몸값>에는 이런 생각할거리 말고도 군데군데 '한국찾기 잔재미'도 가득하다.
전철역 앞에는 조선인이 하는 불고기집이 있고 처음 보는 김치도 매워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도쿄 어디쯤의 개발 안 된 동네에서는 한복 입은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집안일을 하고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김씨 아저씨는 시마자키와 무라타에게 은신처를 제공한다. (물론 돈 받고)

요즘 좀 우울했던터라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오쿠다 히데오 책이나 더 찾아봐야겠다.
우울할 땐 그의 책이 즉효약이다.  
 

(2010년 2월 13일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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