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품절


꿈이나 허구를 꽃에 견주는 습관은 일본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꽃보다 경단" (하나요리 단고. 우리 속담 '금강산도 식후경'에 해당한다. '꽃보다 남자'의 일본 원작 제목은 '하나요리 단시'다. '하나요리 단고'를 염두에 둔 일종의 말놀이로 짐작된다) 이라는 속담이리라. 풍류보다는 실리를, 겉보기보다는 내실을 추구하라는 관용구다.-29쪽

"정말이에요. 이야기 덕분에 살아남았답니다, 우리는."
강제수용소 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하루 열두 시간에 이르는 가혹한 중노동도, 견디기 어려운 겨울 추위도, 벼룩과 이가 우글거리던 비위생적인 불결함도, 날이면 날마다 말라비틀어진 검은 빵 한 조각과 묽은 수프만 달랑 나오는 빈약한 식사 때문에 늘 배고팠던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들은 무섭게 고통스러웠디만, 그런 와중에도 인간에게는 어찌되었든 살려는, 살아남으려는 힘이 솟아오르는 법이랍니다."
기력의 뿌리가 잘려 고통스러운 와중에 그나마 남아 있던 기운을 무참히 앗아갔던 것은, 라디오와 신문은 물론 가족과 주고받는 편지에 이르기까지 외부 정보를 완전히 차단당한 일, 그리고 무엇보다 책과 필기도구 소지를 금지당한 일이었다.-70쪽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라고 갈리나는 말한다. 마치 "가축 같았다"고. 체포될 당시 그녀는 철도대학의 학생으로 기사가 될 사람이었다. 인문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던 여성들이 어느 날 밤 기발한 해결책을 발견한다. 온종일 노동으로 지친 몸을 딱딱한 침대에 누인 깜깜한 막사 안에서, 배우였던 여죄수가 <오셀로>의 무대를 혼자서 모든 역을 맡아 재현한 것이다. 단 한 사람도 잠자리에 든 이가 없었다.
그 뒤로는 매일 밤 각자의 기억 속에 있던 책의 구절을 끄집어내 이러쿵저러쿵 서로 보완하면서 즐기게 된다. 예전에 읽은 소설이나 에세이, 시를 차례로 '독파'해간다. 그렇게 해서 통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멜빌의 <백경> 같은 장편 대작까지도 거의 문장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비참한 상황에 빠져 있던 우리가 안나 카레니나를 동정해서 눈물을 플리고, 일프와 페트로프의 <열두 개의 의자>를 듣고 포복절도했다고는 믿기 어렵겠지요."-71쪽

'알랭 들롱의 식탁 매너가 너무나 완벽하다는 사실이 도리어 그의 태생이 비천함을 증명한다. 매너를 제 주머니 속의 물건을 다루듯 완전히 몸에 익힌 사람은 좀 더 편안한 법이다.'-132쪽

석간에 실리는 칼럼에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겠지만, 신문은 아침에 읽기에 딱 좋은 인쇄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활자 없이는 한시도 견딜 수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아침에 된장국을 먹으면서 혹은 커피를 홀짝이면서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아침이, 이제부터 세상이라는 '현실 세계'로 들어설 것을 일깨우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신문은 그 현실 세계의 윤곽을 전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아침의 바이오리듬은 신문 이외의 인쇄물을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을 적절하게 쓰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까.-139쪽

"좋은 남편을 만나면 남편을 잃었을 때 엄청나게 불행하고, 나쁜 남편을 만나면 남편이 없어졌을 때 해방감이 엄청나다"-247쪽

요네하라 : 체코인을 생각하면 대하소설적인 것, 거대한 로망은 싹트지 않은 것 같습니다. 블랙 유머 같은 것은 매우 뛰어납니다만, 주관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서정에 몸을 맡기는 것이 불가능한 민족입니다.
이케우치 : 확실히 체코의 대하소설 같은 것은 읽은 적이 없네요. 끊임없이 줄줄 말하는 일은 하지 않지요. 반면에 풍자극 같은 것은 정말 재미있고, 솜씨가 좋아요.-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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