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처사는 완전히 늙어 있었다. 흰돌머리의 기업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의 몇 년이 그를 한 쇠약한 노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황씨 부인을 대함에 있어 뜻 아니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치마꼬리에 매달려 주춤거리는 아이들이 셋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원자 융은 황제가 떠나올 때 네 살이었고 둘째인 휘도 이미 태중이어서 이름을 지어 두고 왔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는 셋째는 아무래도 기억이 없었다.
황제가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셋째를 뜯어보자 찔끔하던 황씨 부인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이 아이는 오 년 전 겨울에 다녀가셨을 때......"
그렇게 말하는 황씨 부인과 황제를 번갈아 바라보는 정 처사의 눈길은 무언가를 탐색하는 듯하였고, 그 곁의 우발산은 왠지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송구한 듯 목을 움츠렸다.
"왜 생각 안 나느냐? 그 뒤로도 몇 번 다녀갔다면서......"
정 처사가 여전히 탐색하는 눈길로 황제의 표정을 살피며 따지듯 물었다. 너무나 창졸간의 일이라 멍청해진 황제가 어떨결에 대답했다.
"아,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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