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이치도 (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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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에는 미친 사람들이 해마다 서너 명씩 봄철에 나타나서 여름내 돌아다니다가 날이 추워지면 어디론가 가버리곤 했다. 이치도는 다른 읍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길고 심각한 토론 끝에, 개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미친 사람들은 미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미치지 않은채 있다가 꽃이 피듯 봄이 되면 미치는 것이고 겨울이 되면 얼어죽으면서 후배들에게 바통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걸핏하면 "아이 썅. 술 허기져서 미치겠네" "마누라 때문에 정말 돌아버리겠어. 나이가 들면서 더 밝히니까 말야" 하는 말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38쪽

호흡 단련의 최고 수준으로 인정되어온 것이 뱃속의 태아처럼 배꼽으로 호흡한다는 태식법이다. 실제로 배꼽으로 호흡하는 것은 아니고 일 분에 한두 번, 그것도 숨결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가는 호흡을 하는데, 심지어는 피부로 호흡한다고 해서 피부호흡이라고도 한다.
무덤 속에 수백 수천 년 동안 정체되어 있는 공기를 호흡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호흡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125쪽

대가는 남들도 다 하는 평범한 기술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연마한다.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하는 가운데 스타가 탄생한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건 쉽지만 소도둑이 바늘도둑이 되기는어렵다. 바늘도둑으로 시작한 소도둑이 다시 바늘도둑이 될 수 있으면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소든 바늘이든 "어라, 이게 언제 내 손에 들어왔지?" 하고 탄식하는 무념의 경지, 왼손이 훔치는 걸 오른손이 모르는 무상의 차원이 진정한 도둑이 지향하는 바다.-239쪽

방죽 좌우의 마을에서 하나씩 둘씩 불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마치 청결하게 닦아놓은 거울에 어린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붉은 크레용으로 점을 찍듯이.-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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