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진짜 중국을 보려면 어디까지 가야만 하는 걸까요? 보들레르의 글에 보면 그런 말들이 있던데, 중국 사람들은 고양이의 눈을 보고 시간을 읽는다는. 아, 그러고 보니, 그건 남경에 관한 글이었군요." "그런 말이 있습니까? 중국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정말 신기한 일이군요." 내가 말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군요." 정화가 내 말투를 흉내냈다. "대련에 가면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라는 책을 사서 읽어보세요. 거기에 나오는 글이에요. '꿈들! 언제나 꿈들을!', 그런 문장도 나오죠."-33쪽
최초의 연애 감정을 뜨겁게 달구는 장작은 이처럼 혼자 지내는 고독의 시간들이었다.-39쪽
나는 겨드랑이에 끼워넣었던 두 손을 눈앞에 펼치고 바라봤다. 차가운 바람을 받은 두 손은 창백했다. 한때 절망했던 손, 또 한때 의심했던 손. 그리고 이제는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 손. 정희는 과연 나를 사랑했던 것일까? 여옥이처럼 나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던 것일까?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여옥이가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감싸 쥐고는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 사람, 죽었습지. 내게 바다 얘기 들려주던 그 사람, 죽었습지. 작년 8월 대성촌에서 죽었습지. 나도 한 계절 말이 안 나돕답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답데.-115쪽
"꼭 누가 흔들어야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랍데. 나뭇가지 저 혼자서 흔들리는 밤도 더러 있답데."-132쪽
낚시에 붙잡힌 물고기처럼, 여옥이는 가슴살이 빨갛게 홍조를 띨 정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다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물기로 축축한 여옥이의 검은 몸을 어루만지며 여름 땡볕을 받아 마른 돌들이 하얗게 타오르는 광경을 떠올려보라고 말했다. 바다란 그 마른 돌들이 흐느껴 잠들면서 꾸는 꿈이라고 말했다. 내 말에 여옥이는 몸을 뒤척이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지방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그런 말로는 바다를 떠올릴 수 없으니 물결 하나만 보여달라고 말했다. 한 줌의 달빛이면 보름의 밤을, 한 닢 꽃잎이면 봄날의 바람을 볼 수 있으니 어서어서 이랑이 긴 물결 하나는 보여달라고. 나는 어둠 속에서 미끈거리는 여옥이의 몸 안으로 남해 푸르른 물결 하나를 밀어넣었다.-148쪽
"그거 알아사 씁네. 내사 동무한테 애당초 맘도 없었는데 이 손일랑 그만 정이 붙어버렸소. 동무 처음 왔을 때, 송 영감이 희대의 영웅이 나왔다며 떠들었습지. 마작하다가, 혁명하다가, 특무질 하다가 목 매달리는 사내는 많아도 여자 때문에 자기 목을 매는 사내가 간도 땅에는 흔치는 않습지. 그런데 용정 나가는 길에 마바리에서 손 아프다고 우는 걸 옆에서 보니 그 맘은 또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런 생각이 듭데. 마음이야 어디 붙었는지 내사 모릅지. 하지만 손이야 눈에 보이니 만져주고 싶었습지. 그러다 그만 정 깊이 들어버렸소."-273쪽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게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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