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에 있는 9백 권의 장서 중 7백 권은 내가 쓴 책이다. 나는 실패한 저자가 되었지만, 이로써 독자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행복하다. (Thoreau)-44쪽
감히 말하거니와 이 [인간의 상징]은 나의 2,30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했던 책 두 권 중의 하나다. 다른 한 권의 책은 엘리아데의 [우주와 역사]...-118쪽
시인 이문재는 신화를 두고 '오래 된 미래'라고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신화는 '예스터모로우'인가? '어제의 내일'인 것인가? '내일의 어제'인 것인가? 수수께끼 같은 그의 표현이 내게는 문득 또 하나의 막막한 그리움이 된다.-137쪽
말과 글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다. 말과 글을 통해 그려진 것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단 유포되면 닦을 수도, 거두어 들일 수도 없다. 바로 말과 글이 지닌, 이러한 마법과 같은 기능 때문에 말과 글의 약속인 철자를 뜻하는 '스펠(spell)'이 '마법(spell)'과 동일한 철자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191쪽
나는 스스로 서양 미술사에 대해 그렇게 무식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보고, 부인의 작품인가요, 하고 물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영문학 교수가 나보다 한 수 위라고 믿는다. 나는 따지는데 그는 즐기지 않는가.-210쪽
나는 여행할 때 한잔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차에서, 특히 비행기에서 한잔하는 것을 좋아한다. '취하다'가 '깨다'의 반대말이라는 것을 나는 매우 의심한다. 나는 약간 취한 상태로 깨어 있는 것이 좋다. 서쪽으로 여행하는 경우, 지기 싫어서 미적거리는 듯하던 해가 마침내 지평선을 장렬하게 넘어갈 때, 또는 하늘의 운평선 뒤로 잠길 때 나는 그 비장하게 아름다운 색깔에 한잔을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219-220쪽
'정신의 사정(射精)'이라는 말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독수리는 교합한 상태에서 날개를 접고는 고공에서 떨어져 내린다던가? 그 아득한 높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도중에 수컷은 사정을 한다던가?-227쪽
좋아하면 자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전문가가 된다. 좋아하는 일의 전문가가 되는 길, 골드칼라로 통하는 고속도로다.-246쪽
자, 외국인들에게 '동해(East Sea)'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한다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이름에는,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방위 개념이 들어 있을 뿐, 보편적인 지역 개념이 전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일본인들을 탓하기에 앞서, '아뿔싸, 우리 생각이 짧았구나', 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조선해'라고 부르자는 독도 박물관의 이종학 관장의 주장이 일이 있어 보인다.-252쪽
서점에서의 작은 사치는, 서점에다 십일조를 바치는 서음성(書淫性) 애서가들의 성감대일 터...-285쪽
[세설신어]는 5세기 위진남북조 시대의 소설가 유의경이 쓴 짧은 글 모음이다. -302쪽
한 민족이 사라져 갈 때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추는 것은 상류 계층의 정체성과 그 민족의 문학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인류학적 사실이다.-307쪽
"그의 글은 간명하고 재미있다. 왜 재미있는가? 그는 인문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다. 인문적 소양만 풍부하면 글이 재미있는가? 인문적 교양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그는 독자에게 친절하다. 왜 친절한가? 독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글은 왜 간명한가? 경제학의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가 정밀하기 때문이다."-312쪽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이니 세월이지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흐르는 세월에다 임의로 새긴 눈금에 지나지 않는 것인 만큼 그렇게 크게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 제야의 종이 울리는데도 못다한 일이 있으면, 남의 나라 시간대를 좀 빌려 쓰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음력 설이 있다. 설을 쓰는데도 안 된다면 7월에 시작하는 회교력도 있고, 10월에 시작하는 유태력도 있다. 오늘은 여생의 첫날...... 날마다 좋은 날이 되면 그 뿐이다.-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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