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인취 선심로, 조인취 한기포'라 해서 좋은 사람은 술에 취하면 착한 마음이 나타나고 조급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사나운 기운이 나온다고 했다.-28쪽
말도 고드름처럼 지나치게 얼면 흉기였다.-34쪽
우물은 땅의 드러난 눈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고요하여 자신의 저 깊은 데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우물 벽에 매달려, 사람들은 마치 안정된 눈동자를 가진 사람 앞에서처럼 조금씩 기가 죽곤 했다.-162쪽
강제 추방이 아닌 다음에야 떠나는 사람에겐 무엇보다 스스로의 의지가 개입되게 마련인지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때까지 모두가 자신의 선택하에 있다. 덤으로, 맞닥뜨린 공간이 낯설면 낯설수록 두고 온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이 얼마큼은 밀려나고 말 터이니 아무래도 여유롭다. 능동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남겨진 사람은 다르다. 그저 남아,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떠난 사람의 흔적을 감당하는 일이 고통스러워도 남은 채로 있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188쪽
심경루만행. 마음이 놀라 만 줄기 눈물이 흐르네.-210쪽
요절한 이들이 남기고 간 글에는 독이 있다. 한 번에 보내는 맹독이라기보다는 시간의 힘을 빌려 체내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결국엔 중독과 마비를 동반하는, 하지만 처음엔 표 하나 안 났을 그런 독. 그들이 남기고 간 글에서는 또한 묘한 냄새가 난다. 매혹적인 불안함과 야릇한 평안함을 동시에 던져주고는 잘난 척, 독자의 영혼까지 구석구석 집적대는 여하간의 냄새. -215쪽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헤맬 땐 그리도 넓은 척하던 세상이, 만나서 좋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만은 여실하게 좁은 티를 냈다.-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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