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7년 5월
구판절판


바다라는 것은 역시 가까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그 냄새를 맡으며 생활하지 않으면 진짜 좋은 점을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나는 쇠고기와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82쪽

그러나 'UFO'를 '유포'라고 읽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UFO'는역시 '유 에프 오'다. 죽어도 '유포'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U.S.A'를 '유사'라고 읽으십시오. 안 그렇습니까?

<집사람이 UFO를 '유포'라고 읽을 때>-96쪽

나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 원고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 굉장히 건방진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프로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설사 아무리 싸더라도 원고료만큼은 현금으로 받는다. 술 한 잔 사주고 입을 싹 씻어버리는 건 딱 질색이다. 나도 원고 마감일을 엄수하니까, 그 쪽도 지불 약속을 정확히 지켜주기를 원한다.

<내가 준 보수와 내가 받은 원고료>-101쪽

맛있는 두부를 먹기 위한 요령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대로 된 두부 가게에서 두부를 살 것(슈퍼는 안 된다). 또 하나는 집에 돌아오면 즉시 물을 담은 그릇에 옮겨 냉장고에 집어넣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온 그날 안에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두북 가게는 반드시 집 근처에 있어야 한다. 멀리 있으면 일일이 부지런을 떨어가며 사러 갈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언제나처럼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두부 가게에 들러보니까 셔터가 내려져 있고, '점포 임대함'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항상 싱글벙글 사람 좋던 두부 가게 일가가 돌연 가게 문을 닫고 어디론가 떠나가버린 것이다. 앞으로 나는 도대체 어디서 두부를 사란 말인가?

<나의 두부 먹는 방식>-128쪽

두부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뭘까, 하고 한가할 때 한 번 생각해본 적이 있다.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정사를 한 뒤에 먹는 것이다.

<가장 맛있는 두부는 정사 후에>-132쪽

그 미모의 미망인은 두부를 두 모 사가지고, 한 모에 파와 생강을 곁들여 맥주와 함께 내 앞에 내놓는다. 그리고 "우선 잠시 두부하고 들고 계세요. 금방 저녁식사를 준비할게요"와 같은 애교섞인 말을 한다.
이러한 '우선'막간을 때우는 것 같은 두부의 섹시한 뉘앙스가 더할 수 없이 좋다.

<가장 맛있는 두부는 정사 후에>-133쪽

비록 메뉴에 비프 커틀릿이 없어도 식당차라는 것은 꽤 좋은 것이다. 뭐라고 할까, 옛날 풍의 식당 분위기가 나서 좋다. 먹기 전과 먹고 난 다음에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덜커덩덜커덩 하는 진동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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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차의 그 '스쳐가는 제도' 속에서, 내가 특히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아침부터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레스토랑이나 아침부터 맥주 정도는 마실 수 있지만, 약간 시키기가 창피하고, 또 그다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식사하는 즐거움> -138쪽

어째서 일부러 삿포로까지 가서 영화를 구경해야 했는지,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고장에 가면 이상하게도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국 각지의 참으로 많은 영화관에 들어가서 수많은 영화를 관람했다. 낯선 고장의 낯선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가 묘하게 몸에 스며들어 온다. 이것은 어쩌면 영화의 즐거움이 본질적으로 안타까움과 동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생소한 고장에선 이상하게도 영화관에 가고 싶다>-140-141쪽

때때로 혼자 토론회를 벌이며 즐기곤 한다. 가령 '인간에게는 꼬리가 있는 편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식의 테마로 꼬리 지지파 A와 꼬리 배척파 B를 교대로 혼자 해가면서 말이다. 그런 걸 하고 있노라면, 인간의 의견 혹은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고 임시변통적인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 애매모호하고 임시변통적인 점이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올해엔 설날은 비교적 즐겁다라고 쓰고 싶다>-184쪽

며칠 전에 오모테산도를 걸어가다가, 안자이 미즈마루 씨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미즈마루 씨는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도, 언제나 그 부근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옛 종업원이 선물한 단골 삽화가의 그림 있는 티셔츠>-222쪽

나에게 있어서 잠이라는 것은 걸쭉한 과즙이 듬뿍 들어 있는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과실과 비슷하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잘 먹겠습니다!'하는 느낌으로 눈을 감고, 그 잠의 과즙을 쪽쪽 빨아먹고, 다 빨아먹고 난 다음에 잠이 깨는 것이다. 약간 이상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다.

<내 잠버릇의 3대 특징>-230쪽

좀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나는 똑같이 '여느 때와 다른 것'이라도, 여느 때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무엇인가가 생기는 것보다는, 여느 때는 무엇인가가 있는 곳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마이너스 상황, 즉 결락 상황 쪽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교통 파업 같은 것은 내 취미에 딱 들어맞는다. 만일 반교통 파업 같은 것이 존재해서, 그날은 열차 수가 3배로 증가한다고 해도 그런 종류의 비일상성은 그다지 내 마음을 매료시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교통 파업은 즐겁다>-233-234쪽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아연실색'하는 경험이 날이 갈수록 많아져 가는 것 같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중년의 비만>-245쪽

뜨거운 커피 위에 푸짐하게 흰 크림이 얹혀 있고, 럼주의 향기가 탁 하고 코를 찌른다. 그리고 크림과 커피와 럼주의 향기가 일체가 되어서 구수하게 누른 듯한 냄새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몸이 따뜻해진다.

<겨울이 되면 먹고 싶어지는 것>-270쪽

사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고 인정미 있는 것이다. 공부나 작업을 하기 위해 사용할 때는 '나는 사전이다'하고 턱 버티고 있는 것 같아 가까이하기가 퍽 어렵지만, 일단 책상을 떠나 복도에서 고양이와 함께 딩굴면서 유유히 책장 페이지를 넘기거나 하고 있노라면 상대방(사전)로 릴랙스해져서, '그럼 우리끼리 이야긴데 말야......' 하는 측면을 나타내보이기 시작한다.

<책 한 권 갖고 무인도에 간다면 무슨 책을?>-293-294쪽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 [밤의 나무]-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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