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구판절판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 결국은 언제나 제 일인칭이라는 사실을 흔히 잊어버린다. 만약 나 자신에 대해서만큼 내가 잘 아는 다름 사람이 있다면 내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경험이 부족한 탓에 '나'라는 주제로 한정되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다른 모든 저자들에게도 남의 생활에 대하여 주워들은 이야기만을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먼 타향에서 자기 친지들에게 보냄직한 그런 이야기 말인데, 사실 그가 성실하게 살았다면 그것은 먼 타향에서나 가능했을 터이니 말이다.-10쪽

(주석 中)
아르카디아 -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상향으로 소박한 전원 풍경을 가진, 끝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 곳. '아르카디아에 갔을 때'는 하나의 문학적 표현이다.-83쪽

왜냐하면 속담에도 있듯이 사람이 한가하면 악마가 일거릴르 찾아주니 말이다.-104쪽

변질된 선행에서 풍기는 악취처럼 고약한 냄새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썩은 고기요, 신의 썩은 고기이다.-106쪽

처음 일주일 동안은 호수를 바라볼 때마다 그것이 마치 산허리에 자리잡은 산상 호수인 것처럼 느껴졌으며, 호수의 바닥이 다른 호수의 수면보다 훨씬 높은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호수는 안개의 잠옷을 벗고 여기저기서 저 부드러운 잔물결이나 잔잔한 수면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으며, 안개는 무슨 밤의 비밀회의를 막 끝낸 유령들처럼 살금살금 숲의 사방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이슬마저도, 산허리에서 그러듯이 여느 곳보다 더 늦게까지 나뭇잎에 맺혀 있는 것 같았다.-124쪽

근처에 물이 있으며 좋다. 땅에 부력을 주어 땅을 띄워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우물이라도 하나의 가치는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땅이 대륙이 아니라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125쪽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두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132쪽

뉴스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137쪽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150쪽

이 화차에 실려가는 찢어진 돛들은 재생되어 책으로 인쇄되겠지만, 그보다는 지금 이대로가 읽기도 쉽고 내용도 재미있다. 이 돛들이 겪은 폭풍우의 역사를 이 찢어진 자국들만큼 생생하게 그려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들은 더 이상 고칠 필요가 없이 바로 인쇄에 들어갈 수 있는 교정쇄인 것이다.-172쪽

올빼미 우는 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면 자연의 소리 가운데 가장 우울한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자연의 여신이 죽어가는 인간의 신음소리를 올빼미 소리로 형상화시켜서 자신의 합창단 가운데 영구히 집어넣은 것 같다. -180쪽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아침 공기를 마시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시간에 대한 예매권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아침 공기는 아무리 차가운 지하실에 넣어둔다 해도 정오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 전에 벌써 병마개를 밀어젖히고 새벽의 여신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199쪽

내 방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200쪽

마침내 나는 줄을 당기기 시작한다. 한손 한손으로 천천히 줄을 감아올리면 뿔이 난 메기 한 마리가 끽끽거리며 몸을 비틀면서 물밖으로 끌려 나온다. 깜깜한 밤에, 특히 나의 생각이 다른 천체들의 방대하고 우주생성론적인 문제 주위를 방황하고 있을 때, 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가벼운 충격을 느끼면서 몽상에서 깨어나 자연과 다시 연결이 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체험이었다. 이제 나는 공기보다 더 진할 것 같지 않은 아래쪽의 물속은 물론 위쪽의 하늘로도 낚싯줄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하여 나는 낚시 한 개로 두 마리의 물고기를 낚았던 것이다.-252쪽

월든 호수의 경치는 그 규모가 수수하며 매우 아름답기는 하나 웅장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자주 와본 사람이나 그 호숫가에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 호수는 너무나 깊고 맑기 때문에 자세하게 묘사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호수는 길이가 반 마일에다 둘레의 길이가 1 3/4마일에 이르는 맑고 싶은 초록빛의 우물이며 61에이커 반쯤 되는 넓이를 가지고 있다.-253쪽

월든 호수는 똑같은 관측 지점에서 보더라도 어떤 때는 청색으로 어떤 때는 초록색으로 보인다.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이 호수는 양쪽의 색깔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언덕 위에서 보면 호수는 하늘의 색을 반영하고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모래가 보이는 호숫가의 물은 누런 색조를 띠고 있으며, 조금 더 깊은 곳은 엷은 녹색, 그러고는 점차로 색이 진해져서 호수의 중심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물은 한결같이 짙은 초록색이다. 빛의 상태에 따라서는 언덕 위에서 보더라도 호숫가 근처의 물이 선명한 초록색일 때가 있다.-254쪽

호수의 이름은, '새프로월든' 같은 영국이 지명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월드인폰드', 즉 '담으로 둘러싸인 호수'라고 불린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263쪽

호수는 하나의 경관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지형이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은 자기 본성의 깊이를 잰다. 호숫가를 따라 자라는 나무들은 눈의 가장자리에 난 가냘픈 속눈썹이며, 그 주위에 있는 우거진 숲과 낭떠러지들은 굵직한 눈썹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268쪽

9월이나 10월의 이런 날 월든 호수는 완벽한 숲의 거울이 된다. 그 거울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돌들은 내 눈에는 보석 이상으로 귀하게 보인다. 지구의 표면에서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 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갔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을 자연은 늘 손질해준다. 어떤 폭풍이나 먼지도 그 깨끗한 표면을 흐리게 할 수는 없다. 호수의 거울에 나타난 불순물은 그 속에 가라앉거나 태양의 아지랑이 같은 솔이, 그 너무나도 가벼운 마른걸레가 쓸어주고 털어준다.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워 올리는데, 그 구름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그 모습이 비친다. -271쪽

10월 하순경 된서리가 내리면 소금쟁이와 물매암이는 마침내 자취를 감 춘다. 그때부터 11월 말까지 평온한 날에는 호수의 표면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것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11월의 어느 오후였다. 며칠 동안 계속되던 비바람이 그치고 평온이 다시 왔지만 하늘은 아직도 구름이 잔뜩 끼고 공기는 엷은 안개로 가득했다. 호수가 너무 잔잔했기 때문에 수면을 구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수면은 이제 10월의 화려한 색들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어두운 11월의 색깔을 반영하고 있었다.-272쪽

시 한 줄을 장식하기 위하여
꿈을 꾼 것이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277-278쪽

이 호수를 '신의 안약'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다.-278쪽

나는 철둑길을 걸을 때면 내 그림자 주위에 후광이 생기는 것을 보고 늘 신기하게 생각했으며, 어쩌면 내가 선책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공상을 해보기도 했다. 나를 찾아온 사람 하나는 자기 앞을 걸어가던 어떤 아일랜드 사람들의 그림자에는 후광이 없었으며 오직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그런 특징이 있노라고 단언하기도 했다.-291쪽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산토끼는 어린아이처럼 운다고 했다.-306쪽

곤충학자들이 논한 다음과 같은 사실은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커비와 스펜스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완전한 상태에 있는 어떤 곤충들은 소화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관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규정짓기를, "일반적으로 이 상태에 놓인 거의 모든 곤충들은 유충 상태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은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또 "식욕이 왕성한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고, 식욕이 왕성한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서는" 한두 방울의 꿀이나 그 밖의 단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309쪽

시인은 날개 달린 말과 더불어 날개 달린 고양이를 키우는 게 제격이 아니겠는가?-336쪽

우물을 덮는다는 것, 세상에 그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우물을 덮을 때 아마 그 집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의 샘이 터졌으리라.-377쪽

(올빼미는 고양이의 날개 달린 사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381쪽

숲 속을 거닐다 보면 갑자기 들꿩이 날개를 급히 치며 도망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그때 주위의 나뭇가지와 잎사귀에 쌓인 눈이 마치 체로 쳐낸 황금 가루처럼 햇빛 속에 쏟아져 내렸다.-396쪽

퍼치는 유충을 삼키고, 강꼬치고기는 퍼치를 삼키며, 낚시꾼은 강꼬치고기를 삼킨다. 이리하여 자연의 각 단계 사이에 있는 틈이 메워지는 것이다.-408쪽

물 밖으로 잡혀 나온 강꼬치고기는 마치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하늘의 엷은 공기로 옮겨가는 인간처럼 몇 번 몸부림치고는 물속에서의 삶을 단념해버린다.-409쪽

"봄비의 부름을 받고 풀들은 처음으로 싹튼다."하고 어느 옛사람은 말했지만, 언덕마다 풀들이 봄 불처럼 타오르는 모습이 마치 대지가 돌아오는 태양을 맞기 위해 내부의 열을 발산하는 것만 같다. 그 불길의 색깔은 붉은색이 아니고 초록색이다.-442쪽

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는 과거를 뒤로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461쪽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 맛있듯이 뼈 가까이의 검소한 생활도 멋진 것이다.-470쪽

즉 처음엔 코네티컷 주, 다음에는 매사추세츠 주 어느 농가의 부엌에 60년 동안이나 놓여 있던 사과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식탁의 마른 판자에서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곤충이 나왔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 곤충이 자리잡고 있던 곳의 바깥쪽으로 겹쳐 있는 나이테의 수를 세어본즉, 그보다도 여러 해 전 그 나무가 살아 있을 때에 깐 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커피 주전자가 끓는 열에 의해 부화되었겠지만 그 곤충이 밖으로 나오려고 판자를 갉아먹는 소리가 여러 주일 전부터 들렸다는 것이다.-476쪽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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