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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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빈곤층에게는 비슷한 문제행동이 동반되는 사례가 많고, 이런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규칙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보기에 통제력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규범과 질서를 강조하는 학교환경은,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이나 습속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중에 탈학교하거나 학력 경쟁에서 실패하는 아이들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쓰는 ‘못 배우고 가난한 놈들‘,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들‘, ‘악다구니하며 싸우는 집구석‘ 같은 표현들은 모두 이런 문제행동을 비난하며 낙인감을 주는 말들이다. - P35

정상가족은 사회문화적으로도 강력한 밈이 되어 있다. ‘또 하나의 가족‘과 같은 상품 브랜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운영되는 회사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마치 ‘가족‘ 같은 관계가 되면 모든 갈등이 녹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은유한다. 일종의 가족지상주의라는 환상을 퍼뜨리는 것인데, 이는 그 관계 안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조직사회에서 가장 약자에게 행하는 착취를 은폐한다. - P63

반면, ‘정상가족‘의 틀이 공고하면 공고할수록 그 밖에 존재하는 ‘비정상가족‘ 혹은 ‘가족이 없는 개인 단위‘에 대한 배타성은 더욱 커진다. ‘1인가족‘,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정‘, ‘장애가족‘, ‘재결합가족‘, ‘다문화가족‘, ‘동성가족‘ 등등 현대사회는 매우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이들은 정상가족에 비해 각종 결핍이나 질병, 문제행동 등 많은 어려움을 중첩해서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밀려나 있다. 예를 들어 출산 지원 정책을 보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미혼모에 대한 지원 정책은 매년 줄어들고 잇다. 출생률이 낮다고 많은 예산을 들여 출생을 장려한다지만, 실제로는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인 셈이다. - P63

가난한 가족일수록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비정상가족‘일 가능성이 높고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상당수가 바로 여기에 속한 약자들이다. 정상가족의 배타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열패감을 경험한다. - P65

그런데 이런 외적인 조건 외에도 지현에게는 분명 다르 힘이 더 있었다. 나는 이를 ‘성찰하는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다. - P97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현의 ‘도움 요청‘과 ‘성찰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빈곤 정책을 고미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 P99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일수록 진로 선택의 중요한 장면에서 부모나 교사로부터 특별한 조언이나 지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P111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들이 주변에 안정적으로 돌봐줄 지지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이 과업 달성의 과정은 아픔과 혼란이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본 아이는 이후에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줄 안다. 그 시간이 자아존중감을 길러주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 P121

청소년기에 획득해야 할 과업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자아정체감‘이다. 에릭슨과 마샤에 의해 도입되고 발달해온 개념인 자아정체감은 나 자신에 대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어디에 위치해 잇는가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자아실현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 혹은 사고이다. 어른이라고 자아정체감이 모두 확립되어 잇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기에 이 과업을 잘 달성하지 못하면 그는 미성숙한 채로 남아 어른이 되고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데에 학습 능력이나 지능, 지위 고하, 재산 유무, 신체적 능력 등이 영향을 주긴 하지만 이것들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하면서 겪은 경험의 질, 직면하고 대처해본 어려움, 접해본 사람들의 다양성,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주는 자극 등이 더 깊게 연관된다.청소년지가 자신을 만들어가고,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아실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기의 과업으로 자아정체감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P123

청소년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이 방향도 없고 할 일도 없이 배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겉으로는 그저 싸돌아다니는 모습이어도 속으로는 골똘히 자신의 내면과 치열하게 만나는 시간이다. 젊은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이런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시간 또한 ‘사색하는 시간‘이다. - P126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은 가난한 청년이 되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취직하자마자 바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수정은 가난을 벗어날 디딤돌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 P133

전에는 그렇게 내가 막 열심히 해야겟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교 오니까, 당장 대학교를 안 다니면 수급이 다 끊기고 생활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힘들어서 학교를 쉬고 싶어도 맘대로 못 해요. 학점이 안 나오면 장학금을 못 받으니까 또 무조건 못 다니고요. 알바도 하기 싫고 쉬고 싶은데 용돈이 없으니 헤야 되고. (...) 언니도 휴학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아봤는데, 휴학은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휴학하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끊긴대요. 그러면 엄마 약값하고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학교를 다니는 수밖에 없었어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 P135

천현우 작가가 자신이 용접공으로 일했던 경험을 담은 책 <쇳밥일지>를 보면, 충분한 휴식과 마땅한 임금이 보장된 좋은 일자리가 가난한 고졸 노동자계급에게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 있다. 툭하면 산업재해를 당하고,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입금에 반영되지 않으며, 미래를 위한 공부나 여가가 보장되지 않는 삶은 21세기 동시대에 일어나고 잇는 일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참혹하다. 청년 세대의 가난은 과도기적이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현재의 가난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직업훈련 지원, 주거 안정 자금, 일-학교병행이나 일-가정 병행(결혼한 경우) 제도 등이 더 절실해 보인다. 이런 제도들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평생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안전망이 될 것이다. - P159

우리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너무 받은 것이 없고 자기 통제를 훈련받지도 못한 청소년들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다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기에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난한 가정을 대신해서 돌봐주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 P189

우빈 같은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겨우 그것밖에 꿈이 안 되냐", "대학은 가야 한다", "더 크고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지", "현재에 안주할 거냐"고 얘기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이들이 장기적인 안목에, 바람직한 좋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지 않았고, 실제로 이들이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현실적인 미래를 그리는 우빈들을 오히려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닐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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