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이토록 평범한 미래> - P26
대부분의 말은 듣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어떤 말들은 씨앗처럼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 P31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 P34
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믿음에 가까웠지만, 그는 늘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모습을 통해 지금 자신의 내적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거리의 풍경을 면밀히 살펴보거나 들리는 소리에 자세히 귀를 기울이는 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 P44
일본 시인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난주의 바다 앞에서> - P48
"그때는 이 친구가 동양 챔피언이 관장이던 복싱 체육관에 다녔어요. 복싱을 좋아했거든요. 제가 왜 좋아했다고 말하는지 아시겠어요? 좋아할 뿐이지, 잘하지는 못했거든요. 한번은 시합에 나간다고 해서 응원하러 갔는데, 뭐 신인왕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많이 안 맞으면 싶었지요. 그런데 1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일방적으로 얻어맞더니 KO패를 당한 거예요. 차마 볼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시합이 끝나고 친구들이랑 다 함께 장충동 어딘가의 술집에 갔는데, 이 친구가 부은 눈을 뜨지도 못하면서 아까 그 시를 소리 내서 읊어대는 거예요. 그래서 ‘비에도 바람에도 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컷 얻어맞고 경기에 진 건 맞는 것 같은데 뭐가 좋아서 그리 싱글벙글이야?‘ 그랬더니 ‘상대 선수보다 연습량도 경험도 다 부족한데 어쩌겠니? 얻어맞고 쓰러져봐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이러더라구요. ‘인생 참 힘들게 사네‘라고 말했더니 ‘은정아, 인생 별 거 아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가 넘어지면 그만이야. 지금은 그거 연습하는 중이야. 얼른 소주나 줘‘라고 대답하더라닊나요." "얼른 소주나 줘."
<난주의 바다 앞에서> - P59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진주의 결말> - P85
다시, 깨어날 때는 귀부터 깨어난다. 죽을 때 마지막으로 청력이 사라지듯이. 어둠 속 저 멀리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면서 그의 의식이 돌아왔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01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더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내에게 죽음이란 더이상 신간을 읽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더이상 읽지 못할 책들이 거기 켜켜이 쌓여 있었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02
정미가 죽은 뒤로 마음의 가장자리는 매 순간 조금씩 시간에 쓸려 과거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03
고비사막에서 보는 하늘에는 시간적인 광대함도 담겨 있었다. 밤이 되자 어둠 속에서 고대의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사시대, 혹은 아직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이전의 원시적인 하늘, 별들만이 가득한 하늘. 광활하게 펼쳐진 공간처럼 시간 역시 계속 뻗어나갔다. 과거로, 더 먼 과거로, 시간이 시작되던 그 순간까지. 그렇게 시간은 쌓이고 또 쌓여 한없이 깊어졌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사막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에서 본 ‘깊은 시간(deep time)‘ 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 깊은 시간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07
"밤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밤은 밤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인간은 백오십 리 높이의 대기권에 짓눌려 그 육체적 기관이 저녁이면 피로하게 된다. 피로해진 인간은 누워 휴식한다. 육체의 눈이 감기는 바로 그 순간, 생각보다 그리 무기력하지 않은 머릿속에서 또하나의 다른 눈이 열린다. 미지의 세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모르고 지내던 세계의 어두운 사물들이 인간의 이웃이 된다"라고 빅토르 위고는 [바다의 일꾼들]에서 썼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07
"서로 싫어져서 헤어지는데, 어떻게 헤어져야 잘 헤어지는 건가요?" 그가 물었다. "간단해. 헤어질 때는 헤어지는 일에만 집중할 것. 사랑할 때 그랬듯이."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13
사람은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한다. 이름과 얼굴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삼백 명 정도인데 그중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서른 명이고, 절친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라고. 그렇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건 언제나 한 명뿐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사랑의 단상 2014> - P206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 우주를 인식하기에는 육신의 삶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인간읜 말과 글을 통해 서로 협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나갈 시간을 단축해야만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백 퍼센트 동의했다. 덕분에 책은 우리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 P222
"... 우리의 정신은 얼마간 서로 겹쳐져 있다는 거야. 시간적으로도 겹쳐지고, 공간적으로도 겹쳐지지.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삶이 끝나고 난 뒤에도 정신의 삶은 조금 더 지속된다네.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네. 그러므로 우리 정신의 삶은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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