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터리식 닭장>

붐비는 엘리베이터에 탄다고 상상해 보라. 너무 붐벼서 옆 사람에게 부딪치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를 화나게 만들지 않고서는) 몸을 돌릴 수도 없을 지경이다. 엘리베이터가 어찌나 붐비는지 발이 땅에서 뜨는 떄도 있는데, 차라리 그게 다행이다. 경사진 바닥이 철조망으로 되어 있어서 발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지나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남 생각을 할 기력을 잃을 것이다. 난폭해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미쳐 날뛰는 이들도 나올 것이다.먹을 것도 희망도 빼앗기면, 몇몇은 남을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휴식도, 구원도 없다. 엘리베이터 수리공 따위는 오지 않는다. 문은 단 한 번, 삶을 마감할 때, 이보다 더 나쁜 단 하나의 장소로 떠나는 여행을 위해 열릴 것이다. (‘처리 공정‘ 항목 참조) - P65

<감상주의>

현실보다 감정에 가치를 두는 것. 감상은 흔히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진함이나 나약함으로 간주된다. 가축들이 사육되는 조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혹은 관심만 보여도) 감상주의자라고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누가 감상주의자이고 누가 현실주의자인지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좋겠다.
농장 동물들이 어떻게 취급되는지 안다면 동물과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을 대면하거나 회피하는 데 도움이 될까? 더 값싼 햄버거(아니면 햄버거를 먹는 행위 자체)보다 동정의 감정에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감정과 충동에서 나온 표현인가 아니면 현실과 우리의 도덕적 직관을 연결시킨 것인가?
두 친구가 점심 식사를 주문한다 치자. 한 명이 "햄버거거 먹고 싶은 기분인데." 이렇게 말하고 햄버거를 주문한다. 또 한 명도 "햄버거를 먹고 싶은 기분이야." 라고 말하지만, 어느 순간 무엇을 하고 싶은 기분인지보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른 것을 주문한다.누가 감상주의자인가? - P100

잠든 사람은 언제라도 꺠울 수 있지만, 잠든 척하는 사람은 아무리 지독한 소음으로도 도저히 깨울 수 없다. - P137

한때는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 최첨단의 대항문화 성명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요. 지금은 저를 채식주의로 이끄는 가치가 다른 어디에서보다도 뒷마당에 일구는 제 가족의 작은 텃밭에서 나온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 P302

우리는 무지를 변명 삼을 수 없다. 그것은 무관심일 뿐이다. 오늘날 세대는 더 많은 것을 안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비판이 대중의 양심 속으로 파고든 시대에 사는 기회와 부담을 다 안았다. 우리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인 어떤 것인지 진실을 알았을 어떻게 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될 사람들이다. - P319

닭고기 패티와 채식주의 버거 중에서 무엇을 주문하느냐가 심각하게 중요한 결정이라고 한다면 철딱서니 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그러면 다시 말해 보건대, 1950년대에는 식당이나 버스에서 어디에 앉느냐가 인종 문제를 근절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1970년대 초, 세사르 차베스의 노동자 권리 운동 이전에 포도를 먹지 않는 것이 농장 노동자들을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구해 주기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면, 똑같이 정신 나간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뜬구름 잡는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잘 들여다본다면, 매일의 선택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 P326

미래가 얼마나 나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가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유가 된다. - P3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