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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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를 본 후에도 그렇고, 도플갱어를 읽은 후에도 똑같은 나의 반응.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외치고 싶어 죽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스포일러라고 돌팔매 맞을까봐 혼자만 속으로 끅끅 삭이고 있느라 아주 죽을 맛인데, 또 한편으로는 그 비밀을 아직은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우쭐하다. 흔히들 드라마틱한 상황을 목격할 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쓰곤 하는데, '도플갱어'에선 그런 관용어구조차 무색할 정도다. 반전의 지뢰밭이다. 큰 반전 2건은 압권이다. 소설 중반에 잠깐 호기심 들게 했던 부분이 나중에 큰 태풍이 되어 돌아온다. 

특이한 건, 여느 소설처럼 장마다 장소가 바뀌거나 주제가 바뀌는 게 아니라 순전히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식이라는 것. 이런 것도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철저히 제 3자가 되어 그들의 불행을 관찰하는 건 못된 짓이다 싶지만, 뜨악하게 '상식'이 등장하는 건 또 뭔가. 새롭다. 이것도 내가 제 3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매력. 특히,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가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노랫가락에 맞춰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드리고 있을 때 차에 올라탄 상식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네 종족의 역사에서 상식의 역할은 특히 어리석음이 고개를 들고 고삐를 쥐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 조심하라며 닭고기 수프를 권해주는 수준을 벗어난 적이 없어." 아, 얼마나 자기 처지를 잘 아는 상식이란 말인가.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한때 재미있게 읽었던 게 슬그머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 외,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 아마도 '도플갱어'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주제 사라마구의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도 섭렵했을 터. 그렇다면 '도플갱어'에 나오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라마구가 자신의 전작들에 변함없는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이 또한 고맙다.

하지만! 쉼표와 마침표를 잘 구분해가며 읽어야 한다는 것! 처음엔 굉장히 신경쓰느라 읽는 속도가 더뎠는데, 익숙해지니까 이게 또 별미다. 사라마구는 언제나 이렇게 글을 쓰는 것 같은데, 처음엔 독자 생각 안 하는 고집불통 늙은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또 '유명 작가니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싶은 게지'라며 동조하게 된다. 어쨌건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는 건 중요한 거니까. 덕분에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쓰윽 페이지만 훑어봐도 사라마구의 책은 티가 난다. 그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라면,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잘난 척 할 수 있겠다. ㅋ 

한 가지 조심할 점은, 저 어려운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라는 이름이 한동안 입안에서 맴돌것이라는 것. 절대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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