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치 가시 우리시 그림책 8
백석 지음, 김세현 그림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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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읽고 나서 백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위트와 유머 넘치는 이야기를 정갈한 시어 속에 담았다. 말은 리듬감 넘치고 그림은 백석의 시를 잘 살려서 그림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쭈삣쭈삣 다가가는 준치와 장난스럽게 바라보는 물고기들. 염치와 의리를 아는 멋진 물고기들이다. 그러니 '가시가 많다고' 준치를  먹을 때 '나물지 말'아야 한다.  그 장면 정말 웃겨서 그림책 들고 혼자 '큭큭큭' 하다가 나중엔 박장 대소를 했다. 다행히 혼자 있었다.  

  두고두고 읽어도, 보아도 좋을 책이다. 스텔라랑 가끔 꺼내 보면서 우리 이렇게 말한다. "나 가시많아서 준치 싫은데", "나도"... 백석님, 죄송합니다. 가시가 많아서 준치를 나물 수 밖에 없어요. 

 사설: 준치랑 전어랑 같은 청어과 청어목이란다. 생긴 것도, 서식지도 비슷하고. 난 여태 같은 물고긴줄 알았는데, 학명은 다르더라. 어쨌든 준치도 전어도 가시 많아 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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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글.그림 / 초방책방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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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에 휩싸인 까막나라의 묘사는 불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신비스럽고, 불개가 청룡, 백호와 싸우는 장면은 힘차다.   그림책이 아니라 멋들어진 영웅신화를 보는 기분이다.     

   여기서 스텔라가 배운 것은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 자신감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란다, 불개처럼. 스텔라가 힘든 일에 좌절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기를 스텔라 말처럼 기대해본다. 

 사족 : 뒷표지는 외롭고 힘들지만 갈길을 꿋꿋하게 가는 영웅 불개-삽사리를 멋지게 표현해 놓았다. 삽사리 정말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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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각시 풀각시 (책 + 플래시 DVD 1장) -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 국시꼬랭이 동네 15
이춘희 지음, 소윤경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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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한 이야기다. 

 외모가 별볼일 없어 외로운 각시풀이 완벽한 변신으로 예뻐지자 모두들 우러러본다는 것. 

  여기서 스텔라가 깨달은 것은 외모와 마음이 모두 예뻐야 한다는 거다. 대개 이럴 때 우리는 '겉모습보다는 마음'이라는 정답을 선택하지 않나? 그러나 굳은 신념으로 둘 다 예뻐야 한다고 하는 스텔라... 세대차이를 확 느꼈다....는 슬픈 이야기....  

  그렇고 그런 진부한 이야기지만 대개의 이야기들이 그렇고, 각시풀의 변신을 멋들어지게 잘 그린데다, 각시풀을 예쁜 각시로 변신시키는 설명 사진까지 들어있으니 어린이 책으로 그런대로 합격. 

  각시풀로 각시를 만들어보고 싶다던데, 서울 한복판에서 어딜가야 각시풀을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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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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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오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물웅덩이를 피해 깡충깡충 뛰는 어린이들을 보다가 이 책에 나온 사형을 당하러 가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비켜가는 장면이 생각났다. 물론, 생기발랄한 어린이들과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나 곧 죽어야 하는 사형수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안다. 그러나 생명이 몸 속에 스스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본질 적으로 같고, 그런 느낌이 평화로운 오후에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 것일 터이다. 생명을 바라보는 조지 오웰의 통찰은 놀랍고 적나라하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신체기관은 미련스러우면서도 장엄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조직은 계속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쑥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은 누런 자갈과 잿빛 담장을 보았고,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과 예측과 추론을 했다-그는 웅덩이에 대해서도 추론을 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뒤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26쪽

 
   

  조지 오웰의 에세이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가벼운 주제도 있고, 무거운 주제도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열렬한 개선 의지는 가릴 수가 없다.  

  "서점의 추억"이나 "어느 서평자의 고백" 같은 글들은 가볍게 읽기 좋고 "좌든 우든 나의 조국"은 애국심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그의 생각과 주장이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다.   

  "민족주의 비망록"의 경우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오웰이 예를 든 영국의 정당과 집단의 이름을 오늘 이 대한민국 집단들의 이름이나 일본 극우주의자들, 스킨헤드 등으로 살짝 바꿔 놓아도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여기서 오웰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민족주의보다는 집단에 맹몽적 충성을 강요하고 타 집단에 대한 배척과 공격으로 자기 집단의 이익과 결속을 획득하는 그런 개념이다. 

  오웰은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에서는『걸리버 여행기』에 나타난 저자 스위프트의 정치 인식을 비판하고 있다. "뉴스와 정치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문제에 대해 알려고 하며, 나랏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정당의 견해에 대해 조목조목 논쟁을 하는" 수학자에 대해 "두 분야 사이에 아무런 유사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스위프트 썼다. 이에 대해 오웰은 이렇게 비판했다. 

   
 

 그것은 과학자가 하느님의 존재나 영혼의 불멸성 같은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깜짝 놀랄 일이라고 말하는 유명한 카톨릭 옹호론자들의 말과 어조가 똑같다. 우리는 과학자가 제한된 한 분야에서만 전문가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러니 다른 분야에선 그의 의견을 존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신학은 이를테면 화학과 같은 정밀과학이며, 사제는 특정 주제들에 대한 그의 판단이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전문가라는 암시가 있다. 스위프트는 사실상 정치인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며, 과학자가('순수' 과학자든 특수한 연구자든) 나름으로 유용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310쪽

 
   

   누구에게나 중요한 영혼의 문제나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는 정치의 문제에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입닫고 전문가의 지도에 따르라는 의견은 기시감조차 있다.  

  60여년 전에 쓰진 오웰의 글들은 그가 살고 온 몸으로 부딪혀 왔던 그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또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쓴다고 말하는 조지 오웰의 자기 고백이면서 여전히 존재하고 세를 불리는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해주는 사회·정치학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지 오웰의 눈으로 사회를 보는 것은 지금도 유효하고 묵직한 생명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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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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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가장한 강요, 소설을 가장한 '유효기간지난 이데올로기' 강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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