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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아마도 유홍준 선생님의 책에서 본 걸로 기억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던가, 아마도 조선 후기 문장가 유한준의 글이었을 것이다. 이 글의 앞 뒤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느낀다는 뜻의 글이었던 것 같다. 문화유산을 볼 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느끼는 데도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할 터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세상을 향한 사랑이 없이는.
어떤 행위를 하기 전과 후가 같다면 그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먹고 자고 싸는 지극히 동물적이고 필수불가결한 행위라도 그 전후는 다르다. (먹으면 뿌듯하고 자면 행복하고, 싸면 시원한... ㅡ.ㅡ;) 하물며 책을 읽는다는 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지극히 고차원적인 행위인데(난 책을 읽는 사람 여자니까 내맘대로 인간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그 전후에 변화가 없다면 그거야 말로 헛일 한거지.
그런데 왜 하필 여자일까? 독서라는 행위가 일으키는 변화가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것은. 그야 물론 고매하신 선조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책 읽는 인간을 오로지 남성으로만 정의했으니까. 사람 여자는 독서하는 인간이 아니라 번식하고 양육하는, 가사에 묶여 독서가 필요없는 영역에서만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독서는 여자에게 치명적인 유혹이 된 것일게다.
괜히 이브가 금지된 열매를 따먹은 것이 아니다. 금지된 것의 유혹은 거부할 수 없어서 치명적이다. 판도라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연 것도 이브와 마찬가지. 그렇게 책 속의 여자들은 유혹에 약하다. 그 책을 읽는 여자들도 금지된 것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책 읽는 여자들도 그렇다. 손에 무언가 읽을 거리를 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모두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책, 잡지, 신문, 편지라도.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여자들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주눅들어보이지 않는다. 아니 바깥 세상과 상관하지 않는 무심함이다. 성녀와 왕후와 하녀가, 모든 여자가 손에 읽을 것을 들고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 무엇을 읽는지 훔쳐 보고 싶다. 카를 크리스티안 콘스탄틴 한센의(아, 이름도 길어라) "예술가의 누이동생들(1826), 책127쪽"처럼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읽고 싶은 충동에 싸인다. 병상의 할머니(앙드레 케르테츠, 본 지방의 병원, 1929년, 책43쪽)께서 열중하여 읽고 계신 책도 궁금하고, 애인의 청혼을 한 귀로 흘려버리며 읽고 있는(야코프 오흐터벨트의 "책을 읽고 있는 여인에게 하는 청혼, 1670", 책79쪽) 그 책이 궁금하다. 무슨 책을 읽고 있기에 저렇게 냉담하게 책만 읽고 있는 것인지! 어쩌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럴 수도 있지만 여자는 정말 책에 푸욱 빠진 듯 보인다.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꿈(1896), 책 169쪽"의 여자는 무슨 책을 읽었기에, 또 읽을 것이기에 이처럼 단호한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지.
이들의 삶은 책을 읽는 행위로 인해 달라졌음에 틀림없다. 그들의 얼굴이, 눈이, 태도가 말해준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더 사랑하고 더 잘 알게 되었을까? 그래서 전과 같지 않은 앎을 얻었을까? 그저 막연히 추측하고 바랄 뿐이다. 후회하지 않았기를, 후퇴하지 않았기를, 그리하여 조금은 더 행복했기를... 금단의 과일을 먹은 이브는 낙원에서 쫓겨나 출산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변화의 싹이다. 그렇게 믿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