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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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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읽는 것은 나무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내고 가지를 뻗으며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성장하여 나무가 된다. 그 나무를 바라볼 때 누구는 나뭇잎을 먼저 보고 누구는 줄기를 먼저 볼 테지만, 결국 한 줄기에서 뻗은 하나의 존재,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 나무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야기도 그렇다. 작은 이야깃 거리로 시작해서 싹을 틔우고 줄기가 굵어져 커다란 나무가 된다. 어떤 이야기는 작고 여린 나무, 어떤 이야기는 거목처럼 한 눈에 들지 않는 그런, 나무만큼이나, 혹은 나무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들.

 

 뜬금없이 나무와 책을 같이 보게 된 것은 좋은 추리소설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거목은 아니더라도 곧고 단단한 좋은 나무다. 작은 나뭇잎 하나하나가 결국은 굵은 한 둥치로 묶여서 한 뿌리에서 나온 한 나무임을 확인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

 

 프롤로그에 나오는 죽음의 공포 묘사는 강하다. 이 사람은 왜 죽음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지, 무슨 죄를 지엇기에 사형수가 되었는지 궁금하게 한다. 그러다가 다른 죄수의 이야기로 넘어가 '거 참, 왜 이리 범죄자가 많아? 추리소설에 범인은 하나면 충분한데!' 하고 불평하게 한다. 그래도 결국 사건은 돌고 돌아 두 범죄자의 이야기,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라는 가지가 서로 모아져 마지막엔 멋진 한 나무가 되어버린다. 이 이야기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이다.

 

 이 책은 또 오래 전에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0시를 향하여』를 생각나게 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섬뜩한 살인자도 아닌 '모든 별개의 정황이 한 지점을 향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정점으로 치닫는다. 그 정해진 시간이 0시다.'라는 취지의 판사의 말이다. 해문출판사의 오래된 버전을 읽었던 나로서는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무리지만 그 뜻은 지금도 기억한다. 꼭 책에 나오는 살인이 아니더라도 일의 클라이막스, 0시를 향해, 0시가 되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결정의 순간이 된다고 이해했었다, 열 몇 살의 나는.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의 정점, 0시를 향해 모여든다는 점에서 이 책 『13계단』과 『0시를 향하여』가 몹시 비슷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모여들어 0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끝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결국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줄기로 모여든다. 같은 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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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레시피 - 레벨 3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이미애 지음, 문구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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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영화 '집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외할머니와 서먹한 사이의 손녀가 오롯이 둘이서만 여름 방학을 보내고 나서야 할머니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주인공 서현이는 '집으로'의 주인공처럼 싸가지 없는 아이는 아니지만 여느 도시 아이처럼 푸세식 화장실을 두려워하고 도시의 생활방식에 길들여진 아이다. 그런 아이가 차츰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할머니와 생활하는 모습이나 할머니를 점점 더 배려하는 모습은 예정된 결과지만 따듯하다. 그리고 할머니의 레시피를 받아적는 기특함이라니.

 

  나도 할머니의 레시피를 받아 적었더라면 서현이처럼 할머니와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게 되었을까? 올해 94세 되신, 이제는 살짝 기억이 흐려지신 할머니는 서현이네 할머니처럼 손맛 좋은 분이었다. 철마다 해주시던 제철 음식들과, 오전 내 밀어서 만들어주시던 칼국수, 지금도 같은 맛을 찾을 수 없는 추어탕, 명절이면 만들어주시던 한과, 약과들하며. 나는 한번도 할머니의 요리법을 물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옆에서 거들면서도 내게 그건 그냥 '일'이었지 즐거움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게 할머니와 있는 시간은 항상 고역이었다. 할머니의 힘든 삶과 하소연을 듣는 사람은 나였기에 요리는 얼른 해치우고 벗어나야할 무엇이었다. 내가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더 이상 요리하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요리는 엄마에게, 나에게 레시피 없이도 전해졌지만, 할머니와의 기억에는 여전히 불편한 무언가가 남아있다. 얼마전 심하게 앓으신 뒤로 아이처럼 변해버린 할머니가 낯설다. 해맑게 웃는 할머니는 이제야 행복해 보이시지만...

 

  할머니와 진하고 행복한 기억을 만들 수 있었던 서현이가 부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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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물레 환상문학전집 33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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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 맞추려다 너무 나가셨어요. 꿈이 현실을 바꾸고 현실이 꿈을 바꾸다 어딘지 모를 곳에 떨어져버렸어요. SF와 판타지의 경계에서 길을 잃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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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을 먹는 나무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56
원유순 지음, 조수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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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가 도서관서 빌려와 재미있다며 후딱 다 보고는 돌려줄 생각도 않고 보고 또 보며, 내게도 심지어 권해준(!!!) 책이다. 

  정체성이 흔들리고,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린이에게만 보이는 걸로 추정되는 '색깔을 먹는 나무' 바벨. 바벨에게 자신의 색깔을 주는 대신 다른 존재와 완전히 통합되는 댓가를 얻는다. 

  영어를 확 늘리기 위해 영국의 시골마을로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떠난 태혁이와 스웨덴으로 입양간 한국태생의 소피아가 바벨을 만난다. 아이들은 자신의 색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만 또 완전한 하나됨을 바라기도 한다. 무리 속에서의 편안함을 말이다. 

  아이들의 마지막 선택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조금 억지스럽다. 해피엔딩이 조금은 낯선 이야기. 작가가 이 책에서 배경삼고 있는 영어 몰입교육이라든가 국제 입양 같은 여러 사회문제들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스텔라는 재미있다고 극찬을 했으나 내게는 쓸쓸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스텔라도 태혁이와 소피아의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이유를 물어보면 여전히 '그냥'이라는 무덤덤한 대답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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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 운영전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
조현설 지음, 김은정 그림 / 나라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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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라니. 그 한 줄의 제목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사랑 이야기임을 전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금지된 사랑이기때문에 더욱 가슴 떨리는. 

  이 책의 제목은, 정확히는 "운영전"의 부제는 이야기 속에 나온다. 운영이 비극적 사랑을 담담하게 이야기 할 때에.

  운영전은 안평대군의 궁녀로 있던 운영과 대군의 초대를 받고 시를 지으러 왔던 김진사의 사랑 이야기이며 동시에 시대의 신분과 상황을 뛰어넘지 못하고 죽음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보여준다. 또 한계를 통해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을 마지막에 강조하는 것이 다른 고전 소설들에서 많이 보이는 익숙한 구성이다.  

  사랑을 전하는 수단들은 한시이고, 사랑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다면 한시 또한 아름다우련만은, 내가 워낙 로맨스랑 거리가 멀어서인지 시가 좀 많은 느낌. 그래도 어쩌면 이 책이 주독자층으로 정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감동적일지도 모르겠다. 

  예쁜 그림과 친절한 시대 설명, 꼼꼼한 주석은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쉬어갈 수 있게 해 준다. 딱딱한 글자만으로 된 책을 볼 때보다 조금은 편안하게 고전 소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가슴 떨리는 로맨스 대신 그냥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보았지만, 제목만은 충분히 애틋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냥 제목 한 줄 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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