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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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케이크를 맛보는 느낌이었다."

 

책의 느낌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위와 같은 문장으로 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8개의 단편을 읽는 내내 계속 그런 느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자른 조각 케이크, 이 케이크의 전체 모습은 어떨까를 온종일 상상하면서 각각의 단편을 읽어 내려갔다. 이 케이크들은 색깔과 맛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부분은 '고난(혹은 재난)'이라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었는데 재난이 끼어든 삶, 그 이후의 인생, 상처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방식은 '특색'을 지닌 우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인물, 다른 상황, 다른 배경이 보여주는 스토리들은 나를 조각난 케이크 위에 덩그러니 놓아두곤 했는데, 앞뒤 상황은 모르는 상태로 던져졌지만 특정 사건이나 굴곡점에 대한 작은 조각만으로도 이야기 속에 쉼 없이 빠져들어 갔다. 단편들 속 존재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특정 사건에 집중하여 펼쳐지는 데 그래서 집중력과 열린 결말에 있어 무한 상상력을 더 발휘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은?',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을 번복하며 조각난 케이크들을 마음껏 음미했던 것 같다.

 

각자의 이야기들은 우리네 삶에서 익숙함을 담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고, 때론 동화 속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있었으며, 실험정신에 소망을 담은 이야기도 있었는데 읽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이 선연히 살아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떠나가는 사람들, 짙푸른 바닷속으로 추락한 여객기 속 딸의 시신을 찾기 위해 <다이버>가 된 남자의 이야기는 한동안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 공허함과 먹먹함 짠내가 들썩이는 황량한 바다가 절로 그려지는 이야기였다. 

 

<서재>와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개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 묶음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3세대에 걸친 한 가족의 종이책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작은방 한편에 둘러싸듯 꽉 채워진 책장, 쿰쿰한 책 냄새, 그리고 비밀스레 전해지는 종이책은 세대를 덧대어 이어지고 있었다. 넷(net)이 발달한 사회에서 금지된 종이책은 극단적 디지털화 시대의 유일한 아날로그처럼 느껴졌는데, 그 속에서 종이책은 아무런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일률적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을 입은 도구이자 기록이었다.

 

<다이버>와는 다른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폭수>에서는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보다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천재 수학자 아버지가 있다. 매일 아들을 잃어버린 호수로 동전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 어떤 계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그리움일까 아니면 직업적 호기심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잔잔한 호수와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내가 던진 쿼터가 펑 하고 호수에서 터지는 순간 비처럼 쏟아지는 물벼락과 흙냄새 가득한 커피향, 살짝 미소 짓고 있던 오 교수의 뒷모습, 그리고 연구실과 호수 사이에 선명하게 그려지던 무지개의 형상이 절로 그려지는 듯했다.

 

어딘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아바타 속 동떨어진 세계에 뚝 떨어진 것만 같던 <아일랜드>의 배경이 되는 가즈 섬은 실제 실존하는 귀여운 물고기 섬으로 밤새 아버지가 읊조리던 동화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애틀랜틱 엔딩>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그들의 절박함과 공허함이 그려지는 소설이었는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상실감과 허탈감이 절로 느껴졌다. 성공한 이민자라는 꼬리표 뒤의 모습은 지저분한 뒷골목을 전전하며 매일을 주사위 던지듯 사는 삶 그 자체였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는 다리를 건너는 두 남녀가 우연히 살아남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 911테러, 동일본 대지진까지 삶을 살아가는데 '우연히' 살아남을 확률과 매일 다리를 건너듯 위태하게 이어가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우리 모두는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 어딘가에 서서 다리 위를 걷는 사람이지 않을까?

 

현재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어떤 선물>은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잊은 한 대학 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읽는 동안 모두가 어김없이 얼굴의 반을 가린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오가는 모습, 약국의 한 면에 '마스크 없음'이라고 쓰여있던 글자, 그리고 비대면으로 하는 강의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대학강사가 어느 날 마스크를 깜빡 잊은 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은 잘려나간 페이지만큼이나 당황스러움을 안겨준다.

 

불행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의 고충을 안고 이겨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포기하는 사람, 혹은 그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사람 등 제각각 나뉘게 된다. 누구에게나 불행과 고난은 겪기 마련이고 이는 우리가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상태로 맞닥뜨리게 된다. 이 8편의 소설은 그런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 겪고 난 이후의 모습, 불행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이한 건 그 불행에 잠식당해 어둡고 캄캄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듯하게 잘린 단면처럼 인생의 한 단면을 깔끔하게 도려내어 보여주는 형태로 그려진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깔끔하고 담백하게 느껴진다. 인생을 사는 것은 무언가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 어딘가를 헤매며 위태로운 다리 위를 걸어가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불행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바닷속으로 뛰어든 다이버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희망 한자락을 가지고 기록하거나 싸워나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확률 게임 속에서 헤매며 살아갈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삶의 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한히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뒤 페이지에 평론가의 해설과 저자의 창작 노트가 함께 실려 있는데 책을 읽고 난 뒤 읽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와 해석, 스토리의 뒷이야기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혹은 내가 조각 케이크라고 느꼈던 것처럼 각자 떠오르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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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언제나 패턴이 깨지는 순간 찾아온다

 

26페이지 <서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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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외로운 선택 - 청년 자살,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김현수 외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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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급격하게 벌어진 세대차의 갭! 그리고 빈번하게 들리는 고독사와 청년 자살에 대한 소식들은 어느새 익숙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미 10년 전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던 인구감소에 더해 이제는 청년 자살을 걱정하고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에 떠돌던 '헬조선'이라는 말은 포기에 포기를 거듭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청년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나마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었기에 언급되었던 단어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무엇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워야 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외로운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자살, 특히 청년 자살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청년들을 자살로 내몬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해서 청년들이 불행한 이유, 청년 자살 현황, 외국 사례 소개, 면담을 통해 알아본 청년의 마음 글, 청년 자살을 세대론적으로 통찰한 글, 청년 자살 및 복지 현실에 관한 통계 자료,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수집한 생생한 상담자료 분석 등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분석하면서 청년 자살의 이유와 원인, 그리고 대책 방안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거나 피부로 느끼고 있던 사례나 내용들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도 있었는데 읽는 내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책에 실린 내용들이 청년을 대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나와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실효성이나 현재 정책들과 비교해 봤을 때 여자, 약자, 소외계층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과연 언제, 얼마나 혁신적으로 변화하여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자살을 택한다는 청년들의 죽음. 사람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하다고들 말하지만 실제 그들이 느끼는 현실은 냉혹하고 위태로웠다. 설자리가 없어 끝내 마지막 선택을 하고야 마는 청년들에게는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추억도, 좋은 친구도, 마음을 나눌 가족도, 공감과 배려 능력도, 사회적 제도도 그 무엇도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했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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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통의 키워드>

#헬조선 #이생망 #N포세대 #은둔형외톨이 #고독생 #고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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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는 기성세대의 잔소리와 충고, 높은 기대, 심각한 양극화,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마음고생,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쌓여만 가는 심한 스트레스, 반복되는 좌절과 절망, 고독감과 무력감, 고령화의 눈높이에서 자행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비난, 어리광으로 치부되거나 나약함으로 평가되는 인식 등으로 청년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적, 문화적 전환의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우선순위는 분명 존재한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붕괴되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 양극화는 심해지고, 더 외롭고 더 분노하게 되는 일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 간의 관계는 더 빈약해지고 있으며 청년들을 위한 정책들은 앞선 입시 정책, 출생 장려 정책과 더불어 반복 실패하는 정책들로 가득하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도 벅차다고 말하는 청년들에게 국가는, 기성세대들은 과연 어떤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여러 통계와 분석 자료를 통해 2020년 자살률을 살펴보면 30대 이하의 증가율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20대의 자살률이 전년대비 12.8%로 가장 많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거의 두 명 중 한 명꼴이다.

 

책에서는 20대~30대 청년 자살률이 특별히 높은 이유와 자살이 늘어나는 이유, 20대 여성들의 자살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전반적인 사회적 이슈와 문제점들에 대해 파악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이들의 자살행동이 단순한 감정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닌 복잡하고 복합적인 문제로 인하여 야기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환경적, 사회적, 국가 시스템에서 오는 불안과 기본적인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좌절, 합리적이지 않은 방식과 희생만 강요하는 사회시스템에서 그들이 느낄 우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청년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과 방안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는데 '맥고리 교수팀의 8가지 핵심 원칙'과 '개인심리학 가설적 접근'을 통해서 청년 세대의 특성에 맞는 '접근'과 '돌봄'의 중요성이 특히 중요하다는 점과 개인 치유적 차원에서는 해결이 어려우므로, 사회적 캠페인, 제도적 지원, 법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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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위'란 단순히 유전자 수준에서 행해지는 명령의 수행이나 생화학적 반응을 넘어서 인간의 인식과 행위 반응에는 다름 아닌 '의미 부여'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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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자살의 원인을 어느 하나의 문제로 꼬집을 수 없는 만큼 해결 방안 또한 특정 하나를 고치거나 내세워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일자리 정책, 주거 정책, 경제 정책, 양성평등 정책에 모두 녹아 전반적으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개선과 더불어 지지 체계가 필요하며 청년의 삶에 가닿을 수 있는 정책 마련을 통해 접근해 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복지 체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전달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기존의 전달 체계와 전달 방식에 대한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삶의 근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상상력을 보태야 할 때이다.

 

팬데믹은 분명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단편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살에 대한 국가 간의 차이를 비교 분석한 자료를 참고해 봐도 알 수 있다. 자살 사망은 단기간에 감소하고 '정신건강' 악화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앞으로의 선제적 관리 및 예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자살률은 상상이상으로 급증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청년 자살을 단순히 한 세대, 한 계층의 문제라도 단정 짓고 외면하기보다는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사회시스템을 보다 현실성에 근거해서 변화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의 기둥은 청년이며 이들이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의 우울과 불안은 지속성을 띠므로 단순히 그 세대에서 끝난다고 보기 어렵고 심각하면 사회 전반이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디 '살고 싶은 나라', '합리적이고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나라'로 대한민국이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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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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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은 괜찮은가요? 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왼손으로 그려나가는 마음 레시피!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저자의 1년동안의 그림일기를 통해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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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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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왼손으로 그려나가는 마음 레시피"

 

슬프거나 우울할 때 달콤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사르르 풀리는 마법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 밑바닥 깊고 깊은 어둠 속에 파묻히고 싶은 날, 달콤한 디저트는 누군가의 위로나 위안 없이도 불안과 우울한 마음을 단번에 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곤 한다. 그래서 왠지 그런 달콤한 것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을 전해주는 전도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수제 초콜릿 장인이 없던 시절, 거의 최초 혹은 1호 쇼콜라티에라고 칭하는 저자는 그런 '행복을 전하는' 쇼콜라티에다. 첫아이가 세 살 되던 해 벨기에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취미 삼아 이것저것 배우던 그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고민하던 중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하던 자신의 취향을 한껏 반영해 시작하게 된 것이 벨기에의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기술은 이혼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지금까지 20년간 좋아하는 일로, 직업으로써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무일푼으로 도착한 한국에서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쇼콜라티에라는 기술자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실전 경험 없던 그녀가 호텔을 거쳐 자신의 가게 '카카오봄'을 오픈하고,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할 인맥도 없었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티면서 헤쳐나갔다. 감정을 죽였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하며 버텨왔다. 그렇게 버텨온 세월이 20년이다.

 

힘겨웠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왔기에 괜찮다고 생각했고 괜찮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오른손이 고장 났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오른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녀에게 나타난 증상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시발점이자 저자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건 친구들과 함께 한 통영 여행에서였다. 예약한 숙소가 취소되면서 지인의 소개로 급하게 얻게 된 '밥장'님의 집에서 2박 3일을 머물게 되었고, 벽에 붙어있던 <몰스킨 그림일기 레슨>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보게 되면서 그림일기를 알게 된다.

 

자꾸만 '그림'에 마음이 갔던 저자는 덜컥 줌으로 강의를 신청하고 망가진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매일 그림일기 쓰기로 마음먹는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글씨와 그림을 왼손으로 쓰는 것은 처음엔 쉽지 않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는 마치 초등학생이 쓴 것 같았다. 하지만 설레고 재밌었다. 생각처럼 따라와 주지 않는 왼손이 답답했지만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그리고 써 내려갔다. 무엇보다 카톡으로 전송한 일기에 정성스레 코멘트를 달아주는 밥장님의 응원과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왼손 길들이기는 시작되었다.

 

지난 4년은 그녀에게 일적이든, 개인적이든 매우 스펙터클한 시간들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벅참을 넘어 혼란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겨우 현실적인 문제들을 수습하고 난 이후에는 코로나가 터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와 상관없이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여행도, 공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생긴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을 더 '응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몸도 챙겼다. 그렇게 조금씩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어디 가서 쉴까라고 생각하던 중 '제주 올레 한 달 걷기' 프로그램 신청하게 되었다.

 

20년 근속기념 제주여행에서도 왼손으로 쓰고 그리는 그림일기는 계속되었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익숙지 않은 왼손을 꾹꾹 눌러가며 쓰고 그렸다. 오른손만큼 능숙하지 않았기에 생각한 것을 모두 다 쓸 수 없었고, 그릴 수 없었다. 지우거나 수정도 쉽지 않았기에 더 깊이 생각하고 하루를 돌아본 후 그림일기를 썼다. 점차 설렘과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스스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기의 내용은 단조롭다. 본 것과 느낀 그대로가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심오하거나 어렵지 않아 그 당시의 저자의 상황이 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림은 왼손으로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세심하고 디테일하다. 초등학생이 쓴 것 같은 글씨체는 뒤로 갈수록 정리되고 다듬어진다. 그림은 일상 속 풍경부터 먹었던 음식, 레시피, 식재료, 상상 속 내용까지 다양하다. 펜으로, 선으로만 그렸던 그림에 색깔이 덧입혀진다. 그녀의 세상이 풍요로워지는 게 느껴진다. 

 

쉼 없이 달려온 20년. 코로나를 겪으며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1년 동안 왼손으로 그림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마주 보았고, 아픈 자신을 다독였다. 묻어두었던 감정도 꺼내보고 때론 정신과 상담을 통해 도움도 구했다. '쉼'이 빠져있던 일과 일상에서 천천히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남에게 다정하고 나에겐 가혹했던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면서 화해를 청했다.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갔던 일들을 반성하고 제대로! 자세히! 봐주는 연습을 하면서 이제는 몸과 마음에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는 저자. 그녀가 쓴 그림일기는 그녀 내면의 성장통인 동시에 마음 레시피인지도 모르겠다.

 

1년 동안 왼손으로 쓴 그녀의 마음 레시피를 엿보며 '나는, 우리는' 괜찮은지 돌아보게 된다. 살아가는 것에 버거워 나를 방치해두고 있었던 건 아닌지 혹은 익숙함에 젖어 낯섦이 필요할 때는 아닌지. 세상을 넓고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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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위한 고민과 조사는 깊게 하고, 끌리는 길에는 주저하지 말고 들어서 보자. 끌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헤매고 길을 잃어도 큰 지도 속에서 보면 사실 별것 아니다.

1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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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던, 사랑하는 사람이던 각자의 고독한 경계로 침범하지 않고도 서로 잘 봐주는 거 하고 싶다. 자세히 봐주고 싶다.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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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면 집중, 정성 그런 거 자꾸 깜빡하게 되나 보다. 모든 익숙함에 대해 한 번씩 낯설게 바라봐야겠다.

왼손 일기 8개월째 모든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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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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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순간 되돌아보면 강하게 끌리는 그리운것들이 있다. 그건 사람일수도 있고, 물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그리운것들을 통해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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