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츠나구 1 - 산 자와 죽은 자 단 한 번의 해후 사자 츠나구 1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정화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약 죽은자와 단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산자와 죽은자가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 이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종착점에서 얻게 되는건 삶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이다. 그리고 그 물음들은 산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가까운 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다면 한번쯤 해볼법한 상상속 죽은자와 산자의 해후. 상상속에서는 마음껏 반가움과 다시보는 기쁨을 누릴지언정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어떤 형태로 해후할지 도저히 가늠되지 않아 어쩌면 만남을 거부하는 이도 있을것이다.

 

<사자 츠나구>에는 산자와 죽은자의 해후를 소재로, 네 번의 만남과 츠나구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1편을 포함해 총 다섯편의 연작소설을 만나볼 수 있는데, 평생 딱 한번 만날 수 있다는 전제조건 때문인지 읽는내내 조바심과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보름달이 뜨는 단 하룻밤 허락된 만남 속 어렵사리 죽은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애틋하고 간절할까? 이들을 이어주는 '츠나구'의 존재 역시 궁금함을 넘어 신비함이 느껴지는데, 끝까지 읽다보면 이 존재에 대한 미스터리 역시 확인해볼 수 있다.

 

앞서 거론한 보름달, 산자와 죽은자, 해후라는 몇가지 키워드를 통해 혹자는 설화나 전래동화, 구전동화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장르는 미스터리 판타지라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적절히 현대적 느낌이 가미되어 있어 큰 위화감은 들지 않는게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츠나구'라는 단어도 뜻을 찾아보면, '매다, 묶어 놓다. 잇다, 연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의미처럼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주는 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니 비슷한 의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보름달이 뜬 날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만남에는 어떤 사연이 있고, 또 어떤식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들여다보자. 어쩌면 살면서 찾아 헤매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촘촘히 이어진 다섯가지 이야기를 통해 숨겨진 진실과 놀라운 사연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함께 파헤쳐보자. 한편 한편 읽어 나갈수록 엉킨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을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츠나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한다. '츠나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직접적인 만남을 주선해 주는 일종의 만남 중개인으로, 몇가지 규칙을 통해 만남이 이루어진다.

 

<규칙>
■첫 만남은 도쿄 도에이 신주쿠선의 역 3번 출구 앞에서 이루어진다.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종합병원의 정원으로 식당의 셀프서비스에서 차를 대접한다.
■보수는 일절 받지 않으며, 자원 봉사 형태로 진행된다.
■의뢰시 만나고 싶은 상대, 만나고 싶은 이유를 밝히면 상대와 교섭해서 만날 의사를 확인후 성사될 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전달한다.
■장소는 시나가와의 고급호텔로 의뢰자와 츠나구는 로비에서 만나 엘리베이터로 층까지만 안내한다.
■만남은 보통 보름달이 뜨는 만월에 이루어지며 보통 오후 7시정도부터 새벽까지 만남이 이루어진다.

 

<주의사항>
■만날지 여부를 수락하는 것은 오로지 죽은자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 단 한번의 기회밖에 가질 수 없다.
■상대가 의뢰를 수락하여 면회가 실현된 경우에만 계산된다.
■망자는 언제나 기다리는 입장으로, 망자는 산자를 지명할 수 없다.
■망자와는 딱 하룻밤만 만날 수 있다.

 

처음 의뢰할때 어떤 할머니와 통화를 해서인지 츠나구를 첫 대면한 이들은 예상치 못한 모습에 깜짝 놀라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매번 같은 것을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소년은 이렇게 답하곤 했다.

 

-----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창구. 제가 바로 사자 츠나구입니다."

9페이지 中
-----

 

소년의 모습을 서술한 장면을 살펴보면 독자 역시 미처 예상치 못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
고등학생 정도나 되었을까? 소년은 손때 묻은 노트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었다. 딱 '요즘 아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8페이지 中
-----

 

 


=====
첫번째 의뢰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인기 연예인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와 인연이 닿은 평범한 직장인 여성의 이야기
=====

 

▶의뢰자: 히라세 마나미(27살)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츠나구를 알게 됨
▶만나고 싶은사람: 미즈시로 사오리(유명 연예인)
▶만나고 싶은 이유: 많이 좋아했던 팬으로서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사망일은 석 달 전인 8월 5일로 서른여덟의 나이에 죽음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시각은 8월 5일 오전 10시쯤
▷사망추정시각은 새벽
▷사인은 급성 심부전

 

대대로 이어진 학자집안에서 혼자만 미운돌처럼 섞이지 못했던 히라세 마나미. 그래서인지 그녀는 혼자 남겨지는 것이 편했고 여럿이 이야기하는 것은 늘 불편했다. 특별히 원하거나 바라는것도 없었으며 피해 망상이 심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우연히 유명 연예인에게 도움을 받게 되면서 마음속 유일한 안식처로 자리잡는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고, 마침내 자살을 결심한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준 미즈시로 사오리를 만나고자 츠나구를 찾아 의뢰를 하게 된다.

 

보름달이 뜨는 그날 호텔에서 만난 미즈시로 사오리는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데, 그녀와 나눈 몇시간의 대화는 다시금 그녀를 삶으로 이끌어준다.

 

-----
"인간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니면 느끼지도, 슬퍼하지도 않아.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아도 딱 그것뿐이야. 오락으로서의 슬픔은 모두 가식이니까.
(...)
모두에게 금방 잊힌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어. 겸손이 아니라 그게 바로 사실이고 진리야."

60페이지 中
-----

 

가족조차 외면했던 그녀에게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 유명 연예인을 통해 히라세 마나미는 삶의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단 한번의 도움의 손길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
두번째 의뢰
츠나구의 도움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과 만난 어머니, 그리고 암으로 그 어머니를 잃은 까칠하고 무례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
=====

 

▶의뢰인: 하타다(50대)
▶만나고 싶은사람: 어머니
▶만나고 싶은 이유: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처분하기로 한 산의 권리증의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특이사항: 약 20년 전 하타다 씨의 어머니도 츠나구에게 의뢰한 적이 있음
▷소년인 츠나구에게 무례한 질문과 행동을 일삼음

 

자신의 가족들에게조차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하타다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유일하게 자신에게만 전해준 츠나구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면서도 내심 의뢰를 요청한다.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가문의 일들을 완벽하게 인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심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궁금증에 의뢰를 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어쩌면 유달리 강한척 하지만 내심 속은 무른 큰 아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머니는 큰 아들에게만 츠나구의 존재를 알려준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
세번째 의뢰
항상 친구를 치켜세워 준 쾌활한 여고생과 그녀의 사고사에 관한 비밀을 간직한 그녀의 친한 친구에 관한 이야기
=====

 

▶의뢰인: 아라시 미사
▶만나고 싶은사람: 미소노 나쓰
▶만나고 싶은 이유: 단짝과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싶어서.
▶특이사항: 츠나구인 소년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급생
▷둘은 단짝 친구로 죽기전에는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다.
▷연기를 좋아하고 연기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던 아라시는 기대하던 중요 배역을 미소노에게 뺏기면서 강한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끼게 된다.
▷미소노의 죽음에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자책과 후회로 이뤄진 마지막 만남은 또다른 회한과 의구심을 낳는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라시에 비해 사람들과 잘 어울렸던 미소노. 둘은 연극동아리를 통해 처음 만나 신기할 정도로 죽이 잘 맞았다. 항상 아라시를 칭찬해줬던 미소노는 그래서인지 아라시에게 더 특별한 친구였다.

 

그런 아라시에게 연극은 또다른 신념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였는데, 연극에 관련된 것은 국어시간에 교과서를 읽는것조차 역할에 몰입하는것으로 여겨 즐길만큼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극과 역할에 대해 꿈을 키워가던 어느날 그 배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 단짝친구인 미소노가 동시 지원하게 되면서 주인공역을 빼앗기게 된다.

 

-----
아사코 역.
우리 학년에서는 당연히 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155페이지 中
-----

 

-----
친한 친구인 미소노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배신자. 그게 제일 가까운 심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건방짐에 대한 맹렬한 분노. '왜?'를 생각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155페이지 中
-----

 

이로 인해 강한 배신감을 느낀 아라시는 미소노와 거리를 벌리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배신감은 확신을 더하게 된다. 신념처럼 믿었던 믿음은 깨지고, 배신감은 복수의 감정을 낳게 되면서 평소 그들이 함께 했던 언덕에서 배역을 맡지 못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게 되고 이를 마침내 실현하게 된다.

 

-----
아주 살짝이라도 괜찮다. 뼈가 부러지거나 어깨가 빠지거나. 무대에서 미소노만 사라지면 주인공은 내게 돌아온다.

163페이지 中
-----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단짝친구였던 미소노는 언덕에서 자전거가 미끄러지면서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아라시는 자신이 원했던 배역을 다시금 차지하게 된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묘한 자책과 불안에 마음이 불편하던 아라시는 츠나구를 찾아가 의뢰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의뢰를 위해 만난 츠나구가 자신이 아는, 미소노의 짝사랑 상대임을 알고 놀라게 되고, 미소노를 통해 들었던 말을 건넴으로써 이는 또다른 오해와 질투를 낳게 된다. 마침내 만난 아라시와 미소노. 

 

마지막 만남에서조차 이들은 진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끝을 맺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소노가 건넨 한마디는 아라시로 하여금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을 들게 하는데, 숨겨진 진짜 이야기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제대로된 속사정을 만나볼 수 있었다.

 

리얼하게 펼쳐지는 사춘기 소녀들의 널뛰는 감정의 변화와 감정의 끝에 치달은 이들이 행하는 무시무시한 일을 실제로 목도한 느낌마저 들어 섬뜩하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은 지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한가지를 서로 빼앗은 아이러니한 상황속에서 죽은이는 말이 없고, 산자는 시들어 갔다.

 

뒤늦게 알게 된 약간의 진실, 그러나 영원히 알지 못할 진짜 진심을 지켜보며 츠나구의 존재가 꼭 긍정적 의미로 다가오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야기였다.

 

 


=====
네번째 의뢰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비밀투성이의 여성과 그녀를 잃고 실의에 빠져 사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

 

▶의뢰인: 쓰치야 고이치
▶만나고 싶은사람: 약혼자 히무카이 기라리(본명: 구와모토 데루코)
▶만나고 싶은 이유: 갑자기 실종된 약혼자를 찾기 위해서.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사라지고 이후 7년이 지남
▷약혼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음
▷나와 오하시는 오사카에 본사를 둔 영상 관련 기기 회사에 다님
▷병원앞에서 한 인자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츠나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됨

 

바람이 강하게 불던 3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휘몰아치는 바람에 간판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는 그녀를 병원까지 함께 동행해주면서 인연은 이어지게 된다.

 

도움을 주고 받다 마침내 그들은 연인이 되고, 사귄지 2년만에 프로포즈를 하게 되면서 결혼전 그녀는 2박 3일 일정으로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말하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게 된다.

 

약혼반지로 건넨 백금반지와 함께 사라진 그녀. 정작 약혼자인 쓰치야는 그녀가 사라진 이유도, 그녀에 대한 정보도 정확히 아는게 없어 세월만 흘려보내게 되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오하시는 그녀가 도망친거라며 거짓말쟁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다 병원에서 만난 한 할머니를 통해 츠나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의뢰를 하게 되면서 마침내 그녀를 만날 약속을 잡게 된다.

 

-----
기라리를 만나 그녀를 기다렸던 내 7년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 무서웠다. 만약 소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오늘 나는 그동안 내 안에 살아있던 기라리의 죽음을 확인하고 내 안에서 그녀를 확실하게 죽이는 것이다.

256페이지 中
-----

 

하지만, 막상 만날 시간이 다가오자 쓰치야는 만나기를 주저한다. 실종으로만 두고 있던 그녀를 직접 만남으로써 마침내 죽음을 인정하고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텔앞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그를 찾아 나선 츠나구가 그를 설득하기에 이르고,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소년의 말에 마침내 이들의 만남은 성사된다.

 

그렇게 마주한 현실에서 그는 생각보다 큰 비밀을 접하게 되는데, 그녀의 존재에 대한 진실, 그리고 그녀가 담은 마음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마침내 멈춰있던 그의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실종으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슬픔과 고독에 빠져 살아야만 했던 그, 반대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떠난 여행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진심을 전할 수 없었던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은 츠나구 덕에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비록 현실에서는 함께할 수 없지만, 직접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제대로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비로소 산 자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보며 망자의 의미와 그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한편으로는 영화 '화차'가 떠오르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
츠나구에 대한 이야기
=====

 

앞서 이어온 네 가지 이야기의 구심점이자 츠나구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지막 이야기는 츠나구의 존재와 소년에게 숨겨진 가슴아픈 가족사를 전한다. 한날 한시에 부모님을 잃어버린 소년, 그리고 가까이에서 이를 지켜보며 지지해주는 할머니의 신비한 능력까지!

 

소년의 친가쪽은 대대로 내려오는 점술가 집안으로 할머니는 특히 아무도 모르게 숨겨온 또다른 힘을 남몰래 전승중이었는데, 그게 바로 츠나구였다. 몸이 좋지 않아 입원중이었던 할머니는 매일 꼼꼼이 자신을 챙기는 손자에게 이 사실을 전하며 후계자가 되어 달라 청한다.

 

이에 흔쾌히 수락한 소년은 꼬질꼬질 손떼 묻은 노트를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아 츠나구의 규칙을 숙지하게 되고 마침내 교육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앞서 확인한 네가지 의뢰였고 이를 통해 소년은 신비롭지만 철저한 관리와 비밀이 엄수되어야 하는 일을 수행하며 스스로 고뇌하게 되고 끊임없는 질문을 되뇌게 된다.

 

▷츠나구란 무엇일까?
▷망자는 산 사람을 위해 존재해도 괜찮은 걸까?
▷망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모두 산 사람의 이기적인 감정 아닐까?
▷잃어버린 누군가의 삶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속절없이 그 자리를 맴도는 벗어날 수 없는 상실감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앞선 이야기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소년의 솔직한 속내와 의뢰를 수행함에 있어 숨겨진 속사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첫 의뢰였던 히라세 마나미의 의뢰에 대해서는 유명 연예인을 만나고 싶다는 의뢰가 꽤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두번째 의뢰인에 대해서는 되게 별로였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세번째 의뢰인에 대해서는 소년 역시 깜짝 놀랐다고 이야기 한다.

 

망자를 불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청동거울의 사용법과 할머니를 대신해서 의뢰인을 만나고 대응하는 방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도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숨겨져 있던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다.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누명속에 친척집에서 어렵게 커야 했던 손자와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 츠나구의 힘을 물려주는 방식을 통해 아키야마 가문의 일원으로 만들어 보호해 주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 그리고 이를 깨닫고 순순히 따른 소년의 성숙한 마음들이 어쩐지 훈훈하게 다가온다.

 

-----
부모님의 죽음이후 나는 당당하면 안될것 같았다. 항상 누군가에게 사과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죄의식에 몸도 마음도 빼앗겨 버렸다. 
그런 나를 끊어지지 않게 지금 이 자리에 붙들어 맨 것은 할머니의 한마디였다.

 

"우리 친손자랍니다. 외손자가 아니라, 우리 친손자."
(...)
친손자는 부모님까지 전부 긍정해 주는 말이었다.

390페이지 中
------

 

이와 더불어 츠나구의 힘에 대해 알게 되면서 부모님의 죽음에 숨겨져 있던 진실도 마침내 깨닫게 되는데, 이는 할머니도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가장 근접한 사실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너무 사랑해서, 끔찍히 서로를 위하느라 벌어진 참사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마침내 소년은 앞서 고민했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
망자는 이 세상에 남은 산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버겁기도 하고, 때론 묻히기도 한다. 이로 인해 산 자들은 죽은 자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안타까워 하며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기도 한다. 어쩌면 그러한 바램과 염원이 '츠나구'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츠나구'를 통해 산 자와 죽은자가 만나는데는 특별한 몇가지 규칙이 있다. 더불어 '츠나구'를 행하는 대행자 역시 남다른 규칙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 한번뿐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신중한 고민을 해야 한다.

 

▷만약 나라면 누구와 만나고 싶은지?
▷내가 산 사람의 입장이라면 or 죽은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지?
▷나라면 단 한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그 티켓을 진정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

 

앞선 네가지 의뢰와 이야기를 통해 드러났을때 빛을 발하는 진실이 있는 반면, 오히려 묻어두어야 더 빛나는 진실이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를 통해 우리는 나름의 경각심과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통해 삶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또 삶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행동을 유도한다.

 

첫번째 의뢰자는 살게 했고, 두번째 의뢰자는 바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했다. 세번째 의뢰자는 반성과 후회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했으며, 네번째 의뢰자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

 

츠나구를 물려받을 소년은,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한편,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부모님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죄의식에서 풀려나 마침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에서 던지는 '단 한번의 기회를 잡을것인가?'하는 물음은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또다른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고 말하는 또다른 훈육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