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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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을 열지 마세요"

 

누구에게도 자기 세계를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던 작가
비비안 마이어에게 사진은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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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후로 오랜만에 읽은 전기문. 독특한 전개 방식과 사진을 소재로 한 내용은 어딘가 흥미롭고 새로움을 자아냈다. 특히 해당 전기의 주인공인 비비안 마이어는 알려지지 않은 보모 사진작가로, 우연히 한 경매에서 사진을 구매하게 된 이들이 그녀의 사진에서 매력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이 재조명되었다.

 

여태까지 전기문이라고 하면, 유명한 과학자나 음악가, 사회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전기는 어딘가 유니크함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모 사진작가라는 독특한 이력과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진'이라는 예술을 소재로 그녀의 삶과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전기로 엮었다는 점, 그리고 누구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삶을 사진을 통해 역추적하여 밝혀내었다는 점에서 여느 전기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수천 장의 사진이 있었다고 한들, 제대로 된 메모한 장 없었던 그녀의 행적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렇듯 속속들이 밝혀냈다는 점에서 가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책을 쓴 이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정도다. 특히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고 누군가와 깊게 인연을 이어가지 않았던 비비안의 행적을 쫓는 일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행적을 쫓는 여정에 대해서는 부록을 통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한, 법적인 다툼과 유산상속, 저작권에 대한 소송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고난을 이겨내고 행적을 파헤쳐 영화와 전기까지 펴낸 이들의 공과 노고에 감사를 전할 따름이다.

 

역사적인 사진작가이자 기록하는 사람, 영감을 주는 활동가였던 비비안 마이어! 이 책을 통해 지금부터 그녀가 그려나갔던 그녀의 인생이자 삶인 사진의 세계 속을 살펴보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부정당했던 자신의 삶, 불운한 어린 시절, 여성이었으며, 복잡한 가족사 속에서 방치되다시피 살아온 삶, 소외된 삶 속에서 피어난 예술은 사진에서 꽃을 피웠다. 한 평생을 감추고, 은둔하며 살았던 그녀의 삶에서 '사진'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래서 더 유난하고 찬란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전기는 그녀의 가족사를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에 대한 간단한 상황 설명,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녀의 삶과 사진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열의와 발전과정에 대해 세세하게 담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비비안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안정이면서도 애정 어린 힘이었던 외할머니인 외제니의 죽음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스물네 살 이후 보모 일을 하면서 그녀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담았던 세상을 사진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냥 흘리듯 지나쳤던 찰나의 거리의 모습들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담아냈던 그녀의 사진들뿐만 아니라 원샷으로 자신감 넘치게 담아낸 사진들은 당시의 그녀가 가지고 있던 사상이나 가치관, 관심사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특히 극히 제한적인 인간관계를 맺었던 비비안의 삶에 있어서 사진은 그녀의 삶을 살펴보는데 가장 좋은 자료이자 인생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녀의 고향인 프랑스와 미국을 무대로 전개되는데, 그녀가 보모 일을 하면서 기거했던 지역은 주로 미국으로 확인된다. 간혹 그녀가 해외여행을 하면서 찍은 여행지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지만 비중이 많지는 않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비안의 사진을 수집한 말루프와 골드 스타인에 의해 수집된 비비안의 사진은 약 14만 점에 이르지만 실상 대부분은 필름을 현상하지 않고 상자에 넣어 보관된 상태로 발견된다. 그래서 저자와 말루프, 골드스타인은 비비안이 어떤 의도로 사진을 찍었고, 어떻게 해야 원작자인 비비안의 의도대로 사진을 자르고 현상해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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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과 그의 전 생애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다. 나는 독자들이 비비안의 이야기 속에서, 작품 속에서, 그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이 전기가 끝날 때쯤이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이며,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관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24~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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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의 불운했던 삶>

 

비비안의 삶은 1897년 5월 11일 할아버지 니콜라스 바일이 외할머니인 외제니와 엄마인 마리를 거부하면서 3대에 걸쳐 가족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짓을 저질렀을 때 비비안의 운명은 고정되어 버렸는데, 이후 불운한 어린 시절은 비비안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에 대해 나열한 장면 대부분에서 비비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외제니의 생활력과 가족을 부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마리의 모습, 가끔 등장하는 오빠 칼, 그리고 거짓으로 얼룩진 문서들만 확인될 뿐이다.

 

비비안은 서류에 한 번도 정확하게 자신의 진짜 정보를 써본 적이 없는 어머니와 할머니처럼, 진짜 자신의 모습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불안정하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마약에 중독되고 조현병을 앓고 있는 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알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라는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은 조금이라도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면 가족들이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비비안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비안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입을 다물고 사람들에게 멀리 떨어지는 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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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시기와 모든 측면을 다룬 <인간 가족전>은 비비안의 아카이브에 비어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통적인 대가족의 삶을 묘사한 작품 같은 것은 비비안의 아카이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비안은 가족사진에 아버지를 끼워 넣는 법이 없었으며, 사실상 미소 짓거나 웃고 있는 남자, 아이들과 놀아주는 남자는 없었다고 봐도 된다. 이러한 부재는 잘 알려진 비비안의 어린 시절 경험과도 일치하며, 그 경험이 사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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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의 외할아버지인 바일의 거부로 3대에 걸쳐 '남자'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인 가족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아카이브 속 간혹 등장하는 남성의 모습은 그저 배경 속 피사체로서만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사진'이 비비안의 감정 배출구 역할을 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비비안에게 영향을 미쳤던 두 여자>

 

1. 비비안 마이어의 외할머니 외제니
'명사'들의 집에 입주해 요리사로서 입지를 다지며 점진적으로 놀라운 자기만의 삶을 구축해 나갔다. 누구나 좋아하는 근면한 일꾼이자, 의심할 바없이 탁월한 요리사였던 외제니는 그 뒤로도 40년 이상 변함없이 상류층 고객의 선택을 받았다.

 

2. 비비안 마이어의 엄마인 마리의 상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고 심란했다. 마리가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이고, 결국 두 아이 모두를 버린 자격 없는 어머니라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마리의 행동이나 마리가 남긴 편지를 보면 그 자신이 깊은 병을 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비안 마이어의 관심사>

 

사진을 바탕으로 비비안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그녀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는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죽음과 관계있는 의식과 활동
비비안은 특히 죽음과 관계있는 의식과 활동에 관심이 있었다. 비비안은 어디를 가든 꼭 묘지를 방문했던 것 같다.

 

2. 인종과 계급이 교차하는 지점 포착
비비안은 인종과 계급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하는 데에도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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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의 초기 네거티브 필름과 사진을 보면 그녀의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진다. 보통 원샷으로 피사체를 담았는데, 그것은 비비안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방식이 되었다.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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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이든 컬러사진이든 그녀가 담는 피사체들은 남다른 그녀만의 관점이 담겨있다. 추후 시간이 흐를수록 비비안은 하층과 중산층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점점 더 많이 찍었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 고된 일에 대한 믿음, 순수함에 대한 애정이 담긴 비비안의 알프스 지역 초상 사진은 사람과 장소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유효한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비비안에 대한 주변의 묘사 및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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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돌아온 비비안은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 중요한 삶과 가려진 삶, 깊이 사랑받는 삶과 비극적으로 버려진 삶이라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두 삶을 살아야 했다.

1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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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전환하고, 신체 접촉을 공공연하게 혐오하는 비밀스러운 사람이었다.

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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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이 그녀를 어딘가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자신의 내밀한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지극히 냉정하고 퉁명하며 비사교적이었다는 평이 많은 걸 보면 진정으로 마음을 나눈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보모 일이 주 업이었음에도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대하기 보다 자신의 성격대로 거칠게 대한 것은 물론, 사진 찍는 것에 더 집중했다는 주변의 평, 혹은 아예 사진 찍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평을 확인해 봤을 때 굉장히 비밀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공통된 의견인듯하다.

 

그럼에도 그녀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던 가족도 있었다. 

 

조앤은 뉴욕에서 보모 일을 하면서 맡게 된 아이로, 비비안의 뮤즈로 활약했으며 이상적인 피사체로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서주었다. 덕분에 수백 장이 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인화와 잘라내기를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그녀가 외제니를 잃고 보모 일을 하며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안정적인 생활을 누린 가정인 겐스버그 가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족들과는 11년을 함께 했으며 비비안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을 지켜준 것도 역시 겐스버스 형제들이었다. 11년을 함께 한 이후 그들을 떠나는 시점에 보인 비비안의 불안정한 여러 모습들을 살펴봤을 때 보모 일을 하면서 이들 가족만큼 그녀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겐스버그 가족을 떠나기 직전인 1996년 말부터 비비안의 작품 기류는 뚜렷하게 바뀌었는데, 방에는 신문이 쌓였고, 신문을 찍은 사진들이 비비안의 아카이브에 지저분하게 뒤섞이기 시작했다. 겐스버그 가족과의 결별은 비비안의 내면을 파괴했고 수집벽을 더욱 악화시켰다.

 

 


<사진을 활용한 상업적 수익창출 시도 및 기타 사진>

 

비비안이 수익을 내려고 가장 열심히 고민한 분야는 엽서 사업이었는데, 과할 정도로 풍경을 강조해 찍은 사진들은 비비안이 사진을 시작한 이유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수익 창출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비안의 첫 판매작

 

과할 정도로 풍경을 강조해 찍은 사진들

 

그해 여름 값비싼 최고급 카메라인 롤라이플렉스를 장만하게 되면서 사진은 정사각형으로 바뀐다. 비비안의 영감과 재능에 잘 어울리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 카메라, 롤라이플렉스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비비안의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처한 보편적인 조건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로 비비안을 설명하고는 한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

 


비비안이 관심을 보였던 특이하게 생긴 모자들

 

태국에서는 화려한 색을 칠한 뽀족한 모자를, 인도에서는 눈처럼 하얀 머리 수건으로, 예멘에서는 높은 밀짚모자를, 이집트에서는 야무지게 두른 터번을 찍었다.

 


빨랫줄 사진

 

일상에서는 빨랫줄에 시선을 줄 때가 많았는데, 빨랫감은 한 집단의 관습과 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널린 빨래를 보면 어떤 옷을 안에 입고 어떤 옷을 밖에 입는지, 어떤 옷을 아래에 입고 어떤 옷을 위에 입는지 알 수 있다. 소지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수면 습관은 어떤지, 심지어 그 지역 사람들의 미적 감각까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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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페미니스트였던 비비안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

아프리카 하우스에서 강연을 듣거나 시카고 인종 시위를 촬영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집회에 나가거나 낙태나 산아제한 운동을 지지하는 등, 상당히 많은 여가시간을 사회 정의 구현에 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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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의 여러 학대 징후 및 여파>

 

1. 저장장애
자기가 모은 수집품이 대체할 수 없는 정보와 만족감을 선사한다고 믿기 때문에 점점 더 강박적으로 수집품을 보호하고, 그것을 잃을까 봐 걱정하게 된다.

 

2. 강박적인 수집벽
사진과 신문을 수집하는 정도가 지나쳐 쫓겨나는 경우도 여러 번 발생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는 욕망보다 갖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컸음을 알 수 있다.

 

3. 분열성 성격장애
유명인과 영화 촬영 현장을 쫓아다니고 여행을 가고, 무엇보다도 역할 놀이를 하는 등의 현실도피 성향이 있었다. 비비안의 수집벽이 소유물과 맺는 외면의 관계 형식이었다면 역할 놀이는 그녀 내면의 관계 형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도 안전한 거리에서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는 또 다른 관계 형식이었다.

 

 


<자화상의 역할>

 

자화상의 사진은 600장이 넘는데, 자화상 사진은 소통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비비안의 욕구를 보여주면서도 작업 전체를 보았을 때 비비안의 자아상과 마음의 상태가 어떤 식으로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자화상 사진에서 비비안의 모습은 전형적인 프랑스 여인으로 시작해 점차 진지한 사진 작가로 바뀐다. 1960년대로 넘어가면 엄청나게 큰 코트와 커다란 플로피 해트를 쓰고 다님으로써, 자신이 지나간 곳이 어디든 독특하고 잊을 수 없는 실루엣을, 자신만의 인장을 남긴다.

 


 

사진에 있어서만큼은 깐깐하고 철저했던 비비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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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에게 사진은 그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세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촉진제였다. 비비안의 카메라는 세상을 향하는 문을 열어, 사회생활이 서툰 이 사진작가를 전 세계, 수천 명에 달하는 다양하고도도 흥미로운 사람들에게 연결해 주었다. 새로운 거리, 새로운 집에 들어갈 때면 목에 건 장비는 비비안에게 목적의식과 권위를 선사하고 안전한 거리에서 감정을 끌어낼 수 있게 함으로써 비비안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에게 세상과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고리였고, 비비안은 원할 때면 언제라도 세상으로 들어가 자신이 있어야 할 정당한 위치를 요구했다.

368~3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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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며 사진에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냈던 비비안 마이어. 사진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표현의 수단, 그 이상이었다. 사진은 그녀에게 세상에 섞일 수 있도록 해주는 촉진제였으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또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노력과 연습을 통해 투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불운한 환경과 가정사를 뒤로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의 삶을 이 책을 통해 추억하고 기억해 본다. 더불어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사진들을 통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녀의 삶을 다시금 회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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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우 시티 멜로우 팝 - KIMKIMPARKKIM’S KOREAN MELLOW POP LP GUIDE 100
김김박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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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백 투 더 00년'이라고 명명하며 방송가에서 드라마와 음악 혹은 가수를 한참 소환하던 때가 있었는데 늘 그렇듯 불꽃처럼 타올랐다 지금은 좀 수그러든 모양새다. 이후 방송가의 유행은 또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지만, 대신 유튜브를 통해 과거 음악이나 드라마를 보는 양상으로 새롭게 전환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을 보면서 검색해 본 가수와 노래 제목이 꽤 많이 검색 결과로 확인된다.

 


 

4명의 저자가 선정한 멜로우 팝 100곡이 담겨있는 이 책에는 8090시대의 멜로우한 감성의 곡들만을 추려 묶어놓았는데 그때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 시대의 낭만과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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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우 팝이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팝을 의미하며, 낭만과 휴식, 이완의 느낌을 더 담은 음악을 멜로우 팝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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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음악의 변천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는데, 음악을 듣는 방식이라던가 장르의 변화, 팬층의 흐름 등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가요 부흥의 시대라고도 흔히 말하는 90년대의 음악을 듣고 살았던 세대로써 좋은 음악, 좋은 가수들을 직접 현장에서 만나고, 듣고 함께 할 수 있었음에 자부심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양한 가수, 장르, 음악은 물론 카세트테이프, CD, LP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발매되던 8090시대의 음악들. 이제는 간간이 소장을 목적으로 구입하는 CD 혹은 몇몇 마니아층에서만 이루어지는 LP 구입들은 한편으론 어딘가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때 아니, 8090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은 이것들을 사기 위해 발매일에 맞춰 레코드점에서 긴 줄을 서며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만남의 장소이자 유행의 정점이었던 레코드샵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장소가 되었지만, 과거 유명 드라마나 뉴스에서는 흔하게 보던 장소 중에 하나였음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음악과 가수, 앨범을 살펴보면서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물론, 향수에 젖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때는 무심코 들었던 음악이, 겨울이면 흘러나왔던 음악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음악이 이제는 그 당시의 나, 그때의 사람들,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 것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앨범 속 가수의 모습이 현재는 알아볼 수 없는 세월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해도 그 음악만큼은 빛바래지 않고 영원히 또 누군가의 추억을 덧입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80년대의 곡들 중에는 처음 듣는 곡들도 꽤 많았는데, 앨범 자켓을 보면서 유튜브로 음악을 하나하나 찾아듣는 재미가 쏠쏠하니 혹시 여기 실린 음악을 잘 모른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가수 이름과 앨범 자켓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김현철, 조규찬의 앨범 자켓! 내가 아는 그 사람들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어 찾아봤는데 맞는다는 것에 더 충격을 먹었다. 오른쪽 현재 사진도 함께 첨부해 보았다. 현재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이미지의 모습들이다. 어린왕자 같은 컨셉의 김현철과 지금과는 완전 이미지가 너무 다른 조규찬의 헤어스타일. 이때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라 신선하고 새롭다. 이 외에도 임재범의 젊은시절 모습은 QR코드로 당시 노래부르는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상당히 낯선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땐 그랬지♬

 

반가운 음악, 지금도 좋아하는 곡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유명 드라마에 삽입되어 전주만 들어도 딱 생각나는 노래라던가, 가수의 목소리에 흥얼흥얼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래들, 그리고 겨울이면 여기저기 상점에서 자주 듣던 음악들이라 더없이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 드는 곡들이었다.

 

모노-넌 언제나
윤상-한 걸음 더
쿨-작은 기다림
이주원-아껴둔 사랑을 위해
제이-어제처럼
미스터 투-하얀 겨울

 


이 책을 통해 한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이 담긴 멜로우 팝들을 찾아 들으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더불어 오래 기억되는 명반뿐만 아니라 나만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간직되어 있는 다양한 음악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으며 또 다른 순간들을 음악과 함께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만에 추억 소환 음악들을 찾아들으며 흥얼흥얼 맴도는 노래 가사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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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
브라이언 크레그.애덤 댄트 지음, 이종필 옮김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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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독특한 방식으로 과학을 담고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과학'이라고 하면 으레 복잡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과학을 그림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놀이를 하듯 재미있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어 아이들부터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이 책에는 여타 과학 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복잡한 수식이나, 서술, 그래프 등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매 장마다 여러 공간들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는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을 통해서 과학을 보다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다.

 

부엌에서 시작해, 집, 정원, 거리, 교외, 지구, 태양계, 대우주까지 만나볼 수 있는데 온갖 과학법칙과 현상들이 가득 담겨있다. 

 

각 장은 '장소', '장소를 나타내는 그림', '그림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과학 법칙과 현상들을 짤막한 글로 설명'하고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서 각 법칙과 현상들을 파악하기 전 중요한 키포인트는 바로 '그림'이다.

 


 

마치, 예전에 즐겨보던 '윌리를 찾아서'를 연상시키는 각 장의 그림들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장소마다 다양한 포즈와 표정, 움직임을 담고 있어 한참 그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소를 나타내는 그림인 줄 알고 편히 보고 넘겼는데 다음 페이지에서 과학에 대한 법칙과 현상을 그림을 줌 하여 서술한 것을 보고 허투루 넘기지 않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줌'한 그림과 함께 짤막한 법칙과 현상을 서술한 부분을 읽다 보면 앞의 완전한 그림에 대해 한 번 더 반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림 속에 자리하고 있는 다양한 표정, 행동, 어떤 행위 등이 모두 과학의 어떠한 법칙과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이 유기적으로 다 담겨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림을 그린 애덤댄트의 의도인지, 아니면 글을 쓴 브라이언 클레그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무심코 넘겼던 우리를 둘러싼 일상에서부터 우주까지 어떤 과학이 적용되고,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에 대한 현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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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
■현상: 우주에서 뭔가가 일어나거나 존재하는 것
■법칙: 종종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상하는 것에 관한 수학적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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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법칙이나 설명은 간결하지만, 실생활에서 적용되는 현상이나 법칙이 그림으로 직관적으로 확인이 되고,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화학, 천문학, 기상학, 생태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담겨 있어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아이들에게는 흥미 유발을, 과학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한층 가깝게 다가올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과학을 친근하고 매력적이게 느끼게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이견이 없을듯하다.

 

내가 사는 일상, 내가 사는 지구, 내가 바라보는 대우주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구나, 과학적으로 이런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구나라는 걸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과학 법칙과 현상을 살펴보다가 보다 더 궁금한 점이 있거나 디테일한 부분에 관심이 간다면 해당 부분만 집중적으로 검색하거나 자료를 더 살펴보는 방식으로 공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방향의 시선이 아니라, 과학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방식을 제시해 준 책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과학을 설명이나, 수식, 이론적 복잡한 접근 없이도 이렇게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그저 놀랍고 또 놀랍다. 공부라는 개념보다 흥미로움으로 일단 접근하게 되어 관심을 유도하고, 그다음으로 짤막하게 설명된 법칙과 현상들은 깨달음을 전해준다. 그 깨달음 속에는 중고등학교 과학 책에서 배웠던 것들도 종종 발견되어 반가운 마음까지 들게 한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으로 이루어낸 독특하고 흥미로운 컨셉의 이 책을 통해 일상 속 사물이나 형태의 움직임을 색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뿐만 아니라 한방향으로만 바라보던 시야를 더 넓고 다채롭게 만들어준 것 같아 감사함과 고마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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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아름다움 사이를 나누는 선 따위는 없다. 과학적 이해 덕분에 우리는 자연의 찬란함을 감상할 수 있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느낄 수 있다.

7페이지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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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일상 속에서 이 책의 법칙과 현상들이 종종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냉장고를 보고 게이뤼삭의 법칙이 떠오르고 (냉장고에서 냉매는 압축되었다가 팽창하면서 열을 내부에서 냉장고 뒤편의 방열기로 전달한다) 형광등을 보면 형광 발광 현상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어떤 물질이 다른 광원으로 유도된 뒤에 빛을 내뿜는 현상으로 백색 LED 광에서는 그 속의 청색광이 형광 코팅을 자극해 백색광을 발산한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는 오스트발트 숙성 현상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작은 결정이 녹아 더 큰 결정으로 재형성되는 현상으로 녹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얼리면 오스트발트 숙성이 일어나 식감이 떨어진다) 이건 어떨까? 샤워를 하고 나온 후에 표면에 액체가 증발하면서 에너지는 빠져나가고 표면의 온도를 낮추면서 추위에 떠는 현상. 바로 증발냉각 현상을 생각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과학과 연관 지어 보니 과학이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과학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엉뚱 발랄한 그림과 과학법칙&현상들을 하나의 선상에 두고 확인하니 '과학' 참 재밌고 흥미로운 학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리를 명확히 알고 보니 더 정이 가는 것은 안 비밀!

 

이 모든 과학의 원리와 정답에 가까운 사실 확인을 위해 애써준 과학자들에 대한 내용은 부록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역시도 간략한 소개 정도만 표기되어 있다. 이후 관심이 가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도 책이나 자료를 통해 확인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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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들 땐 고양이를 세어 봐 - 토마쓰리 일러스트 에세이
토마쓰리 지음 / 부크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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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숫자를 하나씩 세는 것은 언제나 마법 같은 상황을 불러온다. 흥분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역할도 하고, 누군가를 살리는 소리이기도 하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스르르 잠들 수 있는 마법을 일으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숫자를 세는 행위는 잠시 멈춤의 시간이기도 하고, 집중의 시간이기도 하며,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가 문득 보이는 돌멩이나 꽃, 집 등을 하나하나 세는 행위도 마찬가지인데 <마음이 힘들 땐 고양이를 세어 봐>라는 제목 또한 같은 맥락에서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하나, 둘, 셋, 넷" 쉼이 필요할 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잠시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고요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찰나의 시간!

 

말랑말랑, 폭신폭신 솜사탕을 연상시키는 이 책은 일러스트 에세이 형태로 짤막한 글과 일러스트로 채워져 있다. 모든 것이 괜찮아지길, 힘들었던 마음이 말랑해지길 바라며 차곡차곡 모은 그림과 글을 엮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펼치는 순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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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혼자만 갖고 있던 마법 같은 말과 마음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은 그림과 글을 네모나게 엮어 보았어요.
모든 것이 괜찮아지길. 힘들었던 마음이 고양이 발바닥처럼 말랑해지길 바라요.

프롤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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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커버를 벗기면 귀여운 일러스트가 숨겨져 있다.

 

 

어딘가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림과 캐릭터, 해맑은 표정의 일러스트들은 작고 아기자기한 형태로 매 페이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데, 그래서인지 어릴 적 동화책을 읽는 느낌도 든다. 대단한 위로나 큰 수식어 없이도 말랑해진 마음으로 경계를 허물고, 그저 귀여운 캐릭터를 둘러보며 위로와 다정함을 건네받는다.

 

어느새 잊힌 어린 시절 반짝이던 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나, 순수했던 모습의 나를 연상시키는 일러스트들을 보면서 잠시 그 당시의 보송보송했던 마음으로 되돌아가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다채로웠던 그 시절의 우리와 티 없이 환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따뜻하고 포근한 감상에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삶의 방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 사는 것이 문득 힘겹다고 느껴질 때, 잠시의 심호흡은 안정과 다시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예쁜 말, 달콤한 말에 퐁당 빠져 일러스트들을 한 장 한 장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삶을 살아갈 여유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매 순간 행복과 기적이 옆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심호흡 크게 하고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어보자. 인생을 길게 보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자.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총 4개의 파트는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절별로 느껴지는 싱그러움, 따스함, 풍성함, 충족감들은 달콤 달달함을 싣고 짤막한 글귀에 실려 전해져온다.

 


 

머리가 복잡할 땐 곰돌이를 세어 봐
하나 둘 셋 넷
모든 게 사랑스러워지는 주문

 

 



주전자 가득 따끈한 홍차
생크림 듬뿍 바른 케이크에 톡 얹은 체리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어
아주 평범한 것에서 찾아내면 돼

 

 



때로는 그늘에서 쉬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지
저 멀리 무지개가 보여?
우리가 갈 곳이야

 

 



하루가 행복해지는 습관 하나
자기 전에 오늘 만난 꽃 이야기를 하기
(...)
얘기하다 보면 어디에나 꽃이 있다는 걸 알게 돼
네가 어디서나 무엇이든 피워낼 수 있는 것처럼

 

 



잔잔해서 행복한 날이야

 

 

슬픔은 오래된 눈처럼 쌓아 두지 않을래
(...) 진눈깨비처럼
나쁜 마음은 빠르게 녹여 버리자
(...) 서리처럼
울적한 마음은 따뜻하게 녹여 버리자

 

 


 

슬픔은 물에 녹는대
따뜻한 물속에 마음을 담그면
슬픔이 스르르 사라져
자, 이제 거품으로 슥삭슥삭
뽀득뽀득 빛을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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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행복, 이 다섯 글자는 그림 속에 한 글자씩 새겨 넣으려고 합니다. 힘들고 지치는 때가 오더라도 잔잔한 행복이 있다면 어떠한 일도 파도 타듯 넘어갈 수 있다는 걸. 강한 행복, 진한 행복, 싱거운 행복같이 다양한 것들을 여러 해 겪다 보니 역시나, 잔잔한 것이 오래오래 새벽까지 물결을 치게 합니다.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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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고 싶다는 말 - 공허한 마음에 관한 관찰보고서
전새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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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겪는 수많은 감정들은 때론 독이 되기도, 때론 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깊이 더 깊이 감정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그 감정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후자의 경우로 가족들의 애정과 관심, 사랑을 통해 잘 극복하고 현재는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삶을 보다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겪었던 일련의 감정 상태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이것을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들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무겁지 않게 서술되어 있어 오히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때는 뿌리 깊은 애정결핍 위에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리고 자기혐오, 자기 연민 사이에서 방황하던 저자가 그것들을 모두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인생의 진짜 중요한 가치와 진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은 건강한 삶의 태도와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극복 과정을 지켜보며 가족의 의미와 접촉(닿는다는 것)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과 위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각종 SNS 활동을 통해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문장들이 꽤 많았다. 타인에게 받는 인정과 관심 욕구,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얻는 좌절감과 우울증, 애정결핍, 심하면 공황장애까지 겪는 현대인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마음가짐과 다정한 인사말같이 건네는 위로와 용기는 사는 게 바쁘다고 미뤄두거나 잊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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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살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결론을 내기 위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 가만히 있지 말고 타인을 향해 손을 뻗자. 물론 그 행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의 모든 문장에는 진정 당신께 그 용기가 생기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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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인생은 살만하다고, 용기를 내어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이 책에는 흔한 '힘내'라는 말조차 담겨있지 않지만,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살만한 용기가 생긴다.

 

왜 그렇게 우울해했을까? 왜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을까?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적절한 조건들은 정작 그런 것들이 아니었는데 엉뚱한 것에 힘을 쏟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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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다는 건 그런 거였다. 몸 안에 눈물이 쌓인 상태, 그래서 눅눅하고 곰팡곰팡한 상태, 마음에서 악취가 날 지경인 상태. 그렇다면 할 일이 명확하다. 나를 활짝 열고 볕 속에 두는 것, 그저 볕이 치유하게 두는 것, 그 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

2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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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상태를 이토록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눅눅하고 곰팡곰팡한 상태. 마음에서 악취가 날 지경인 상태. 상태와 원인을 알면 치료방법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마음을 활짝 열어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내 안에 들여오는 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는데 어쩌면 잊고 살았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익숙하지만 낯선 문장들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들을 읽고 당장은 마음에 새기지만, 또 잊히거나 마음 저 한편에 미뤄둘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매번 또 꺼내서 다짐하고 되새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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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어. 초승달이니 그믐달이니 하는 것. 고작 우리의 시선 문제라는 것을. 달은 언제나 보름달이라는 것을. 뭐라고 불리든 달은 언제나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
이름이 너무 많아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
여자, 남자, 노인, 청년, 장애인, 비장애인 이렇게 나누지 말고 그냥 사람이라고 불렀으면 어땠을까?
(...)
이 모든 게 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가끔은 언어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해. 그럴 땐 음악을 들어. 언어의 잔혹성이 완전히 배제된, 아무런 가사가 없는 연주음악을 말이야.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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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완전한 형태의 무엇을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데로, 규정짓고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으로 명명하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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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성장, 그게 가능한 얘길까요(...)
사회든 개인이든, 어떻게 무한 성장을 할 수 있겠어요.
(...)
물론 성장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성장이 목표인 것과 그걸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에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
성장이 목표가 되면 자기 착취적인 행동에 빠지는 것 같아요.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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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우가 많다. 성장해야 해! 발전해야 해!라는 끊임없는 자기 주문을 외우며 끝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언젠가 끝은 있기 마련이다. 쉽게 지치지 않으려면, 즐거이 무언가를 이루려면 성장을 목적으로 두기보다 수단으로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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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잖아요. 실패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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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인간이 완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 1회차를 사는데 어떻게 완전할 수 있을까? 인간은 불완전하고 미성숙하기에 성장이 아름답고 성취의 즐거움을 알 수 있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 좀 더 실패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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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1음과 2음 사이의 거리다. 둘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의 소리는 밝다. 메이저 코드다. 간격이 좁아지면 슬퍼진다. 이건 마이너 코드. 아주 좁아지면 짜증 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걸 불협화음이라고 한다.

1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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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아름답고 밝은 소리를 낼 수 있듯이, 사람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옆에 있는 사람과의 사이가 편하지 않다면 조금 거리를 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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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좋은 때는 혼자 있어도 괜찮을 때다. 혼자서도 평온한 상태일 때 타인과 조화를 누릴 수 있다. 불안하고 심히 외로운 상태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을 그저 이용할 소지가 높다.

1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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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외로워서 누군가를 옆에 두려고 한다. 그런데 외로움은 외로움을 불러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내 마음이 평온해야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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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덧없이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버는 것,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 인연이 닿은 것들과 손을 잡는 것,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 그렇게 힘이 필요한 곳에 힘을 보내고 힘껏 연대하는 것, 인생에 너무 미련 남기지 않고 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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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크거나 위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적당하게 벌고 적당히 책임지며 가까운 사람과 오순도순 잘 지내는 것. 그리고 생이 다하는 날 미련 없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 제목 '닿고 싶다는 말'처럼 담겨있는 내용 또한 다정하고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초반에는 어딘가 애처롭고 안쓰러움이 들었는데, 서서히 자신만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곰팡곰팡한 우울증마저 경쾌하게 보인다. 격한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나열된 글들은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이고 단단해진 마음만큼이나 긍정적이고 유쾌하다. 참 잘 살았다. 잘 견디었다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밑바닥을 경험해 보았기에 더 이상 두려울 것도 견디지 못할 것도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읽는 독자도 그 용기와 에너지를 한껏 받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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