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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향수 - The Dreamer 향기를 따라
진노랑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8월
평점 :
기억을 추억하는 수많은 방법 중 향으로 추억되는 기억은 어쩐지 더 낭만으로 다가온다. 잊고 있다 무심코 느껴지는 향 하나에 당시의 풍경과 분위기, 기분, 느낌들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다가와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런 향을 기본 베이스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오픈될 때마다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특히 가족 간의 사랑과 용서, 화해를 담고 있어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데, 이미 흘러간 시간들을 후회나 상처로 남기지 않고 서로 보듬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여느 날과 같이 평범했던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여우비와 우연히 잘못 탄 버스로 인해 손에 넣게 된 작은 향수병 하나. 이것으로 인해 저마다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던 깊은 상처와 후회들은 각기 다른 향으로 다가와 용서와 화해를 구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가 되어 준다.
스토리의 시작과 전개는 시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실상, 이 에피소드들의 중심에는 덕훈이 있다. 덕훈은 작년 간암으로 투병하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의 죽음은 모두에게 꽤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는 덕훈이 형제들을 비롯해 자식과 조카들까지 가장 힘든 순간 곁에 다가와 위로와 힘을 건네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독 그의 죽음은 더 시리고 아프게 다가왔는데, 이제 곧 1주기를 앞두고 마음이 흔들리는 이들에게 향수를 통해 잊힌 기억을 다시금 마주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없는 대가족의 면면 속에서 잃어버린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현실 속에 향수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흩뿌려지며 잊어버린 옛 기억을 소환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등장하는 인물이 상당히 많은데, 관계가 얼기설기 엮여있어 소설을 읽기 전 미리 파악해 보면 좋을듯하다. 이와 더불어 기억별로 달라지는 향과 맞춤형 덕훈표 이야기는 색다른 재미와 매력을 더하는데, 읽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떠올리게 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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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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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유덕수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빚독촉에 시달리다 길거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왔으나 사망
▷성품이 온화하고 남을 잘 믿음
<아내>
▷남편의 보증으로 빚독촉에 시달리던 중 몸이 약해 남편보다 먼저 사망
<첫째 아들 유정환>
▷법무사 사무소 대표
▷추운 겨울 어려운 일들을 여러 번 겪어내며 덕훈에게 많은 도움을 받음
▶추억의 향: 화이트 머스크 향
<둘째 딸 유미현>
▷집안에서 가장 큰누나와 큰 언니를 맡고 있음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몇 번 낙방하자 지금은 영어학원에서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며 근무와 공부를 병행 중
■둘째. 유연주(개명전 이름 덕희)
▷의사이며 남편도 의사
▷형제 중 유일한 여성
▶추억의 향: 복숭아 향
<딸 주시아>
▷간호학과 휴학 중이며 현재 새 진료 탐색 중
▷엄마인 연주와 갈등을 겪는 중
<아들 주우주>
▷고3 수험생
▷애칭은 쥬쥬
■셋째. 유덕훈
▷3년 전쯤 갑작스럽게 간암이 발병하여 2년여 동안 굳은 의지와 노력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작년에 가족들 곁을 떠남
▷가족들의 정신적 지주
▷좋아하던 과일: 참외
▷품성이 온화하고 따뜻함
<아내 수진>
▷남편 덕훈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의 서재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음
▷연주가 인턴을 시작했을 무렵 같은 대학병원 새내기 간호사로 수진이 들어오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어 가족으로 이어짐
▶추억의 향: 국화꽃 향
<첫째 아들 재영>
▷시연보다 오빠로 온화한 성품
▶추억의 향: 짙은 나무 향
<둘째 아들 재민>
▷시연보다 동생으로 개성이 뚜렷함
▶추억의 향: 초코 바나나 향
■넷째. 유정진
<딸 유시연>
▷항공사 '플라이 제주'의 캐빈승무원으로 5년차
▷제주 베이스에 근무하다가 서울 베이스로 발령받음
▷발령 후 바로 장기 휴가 예정
▷부모님은 수원 본가에 사심
▷한동안 서울에 있는 지호의 자취방에서 함께 지냄
▶추억의 향: 핑크빛 살구 꽃 향
■다섯째. 유진영
<딸 유지호>
▷아나운서 지망생
▷카메라 울렁증으로 연습 삼아 유튜브 '유죠의 하루' 운영 중
<아들 유민석>
▷고3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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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향수 사용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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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연
핑크빛 살구 꽃 향
2. 정환(시연의 사촌 오빠)
화이트 머스크 향
3. 연주(고모)
복숭아 향
4. 수진(덕훈의 아내)
국화꽃 향기
5. 재민(덕훈의 둘째 아들)
초코 바나나
6. 재영(덕훈의 첫째 아들)
초록나무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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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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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훈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들 형제는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 시점에서도 모두 자주 왕래하며 꽤 가까운 사이로 지낸다.
어려울 때는 서로 돕고, 좋은 일은 함께 나누며 물심양면으로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모습은 약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럼에도 각 에피소드들이 전하는 진정성이나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서 감정에 앞서 후회와 자책했던 일들을 마주할 때면 누구나 겪을법한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에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가족들에게 절실한 화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지난날을 후회하게 되는 자책, 이제 희미해져 다시금 꼭 추억하고 싶은 소중한 기억, 부모가 되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지난날의 회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이에게 이정표 같았던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
이 모든 것들은 마치 환상처럼 향기를 싣고 하룻밤 단잠 속을 파고들어 찾아온다. 지친 마음을 훈훈하고 따스하게 데워주는 것은 물론 나만의 향기를 남기고 특별한 기억을 다시금 전해준다.
가까이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선뜻 향수를 건네며 마음을 나누는 이들의 치유 과정을 통해서 가족의 참된 의미와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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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청각만큼 후각도 기억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더라고. 가끔 외국에서 샀던 바디워시같이 향기 나는 제품을 한국 와서 다시 사용할 때 그날의 비행, 도착했던 목적지의 분위기, 인상 깊었던 손님들이 떠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런 맥락인 건가?"
"오.. 뭔가 굉장히 로맨틱한 기억법 같은데?"
(...)
시연이 선물한 향수 하나에 갑자기 향수와 있었던 일화들을 서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들을 나누면서 향기가 단순히 좋은 냄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이미지, 경험, 때로는 기억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 시연이었다.
23~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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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기억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들에서 후에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는 대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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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영상이나 음악 못지않게 향기에도 참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 같아. 그냥 좋은 냄새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기분전환이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와 기억이 되는 걸 보면 말이야."
3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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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리머에서 만든 향기를 통해 새로운 기억을 떠올린 이들에게 향기는 단순히 향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절망이 희망이 되고, 위로와 기쁨을 안겨준다. 과거의 기억을 엿본 덕분에 이들은 기분전환을 한 것은 물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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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차치하더라도 너를 위한다는 건 우리의 생각이었고 네 생각은 달랐을 수 있는데 마음대로 결정하고 그런... 결과를 멋대로 감내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
네게서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빼앗아서 미안했고, 엄마와 내 진심을 몰라준다며 제멋대로 이기적이라 치부했던 것도 사과할게. 동의 할 수 없는 마음을 널 위한 진심이라며 강요하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1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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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감정을 푸는 데 있어 유일하게 향수의 힘을 빌리지 않은 상황으로, 덕훈과 같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가 아닌, 가까이 있는 이들이기에 전할 수 있는 진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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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친근한 장소이기 때문도 있지만 시장에 가면 왠지 힘이 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다양한 소음들이 모여 뒤섞이며 만들어 낸 에너지가 따뜻하게 느껴져서. 가끔 무기력해지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아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 일부러 사람들 틈에 섞여 거닐다 가고는 해. 서로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기운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어서."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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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웠던 어느 겨울, 정환에게 있어 처음 겪는 빨간 딱지는 그저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그렇게 무기력에 빠져있는 정환에게 말뿐인 충고가 아닌 새벽시장 속 활기와 기운을 전해준 덕훈의 노력은 정환을 다시금 일으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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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이 너도 매사 열심히 성실하게 임하는 건 좋지만 열의에 차서 처음부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보다는 꾸준히 오래오래 한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부담 갖지 않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잘할 수 있지?"
1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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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겨울, 또 찾아온 위기 앞에 덕훈은 다시 한번 정환에게 필요한 최선의 맞춤형 조언을 건넨다. 이 기억은 후에 방향성을 잃어 방황하는 정환에게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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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두에 있는 게 뭐가 중요해. 레이스에서 낙오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완주하는 것, 그리고 달리는 동안 그 속에서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누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하지만, 나처럼 정말로 정반대의 사람은 이미 나가떨어졌을 거야. 지금 누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걸맞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해."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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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공부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연주는 부모가 된 후에는 이를 까마득히 잊고 딸 시아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 대하게 된다. 덕분에 가까웠던 모녀 사이는 틀어지기 일쑤였다.
향수를 통해 돌아본 과거 속에 덕훈이 건네는 이야기를 되새기며 연주는 진짜 중요한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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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잖아.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서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찾아낸 다른 무언가 덕분에 또다시 가슴 설레기도 하는 그런 게 삶 아니겠니? 더 기다리게 하지 않고 먼저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
3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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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오랫동안 가슴에 미안함을 품고 있던 아들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기억의 말은 어쩐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또 다른 선택마저 지지해 주는 아버지의 마음과 더불어 오랫동안 기다림 끝에 먼저 자신의 번복된 결정을 먼저 알려주는 아들에게 전하는 고맙다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덕훈은 모두에게 온기였고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살짝 엿본 향기 덕에 덕훈을 기억하는 향기가 각자 다름을 알 수 있었지만, 저마다 품고 있는 빛은 모두 따뜻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요즘 세상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이야기이기에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가족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요즘에는 우스갯소리로 가'족'같은 사이가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단단한 유대관계를 통해 기쁨과 슬픔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6~7번 정도 사용할 수 있는 극히 미량의 용량을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나누고, 또 믿기 어려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믿어주며 함께 나누는 삶.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가족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한 집안에서도 마주하기보다 문자와 톡으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가족'을 이제는 되찾아와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