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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ㅣ 책세상 세계문학 7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송기정 옮김 / 책세상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에 담긴 두 이야기는 저자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어쩐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잊혔거나 없어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하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강제적 혹은 시스템적으로 변화되었거나 혹은 산업화와 같은 문명의 이기에 따라 없어진 문화들이 떠오르며 더 그리움을 자아낸다.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양상의 극과 극의 느낌을 전하는데, 하나는 어린 시절 여름휴가차 잠시 머물렀던 브르타뉴 지방에서 보냈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 다른 이야기는 태어난 직후부터 약 5년간 겪었던 전쟁으로 인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가장 끔찍했던 시절을 담고 있다.
이렇듯 완전히 극과 극의 이야기 속에는 상황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동시에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여든 살이 된 작가가 70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썼기에 양립이 가능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 겪고 있던 당시에 썼다면 이와 같은 감정들을 엮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쓴 기억 속 파편들은 어느새 이야기가 되어 당시에 존재했던 인물과 장소들을 끄집어 내어 몽상적인 노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전쟁 속 당연한 듯 자리한 일상들을 덤덤히 그려내기도 한다.
기억에 의존했기에 모든 것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얼기설기 엮인 기억의 조각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마치 소설처럼 감동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자는 문장 사이에 이 책이 고백도, 추억담도, 자서전도 아님을 강조하는데, 분명한 건 저자 자신이 겪은 유년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연대순으로 진행되지 않아 추측으로만 시대를 가늠할 뿐이지만, 실상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저자가 추억한 유년 시절의 화양연화와 끔찍했던 나날들을 되짚어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속 가장 행복했던 날과 가장 끔찍했던 날로 기억되는 때는 언제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브르타뉴의 노래>에서는 유년 시절 가장 많은 감동과 추억이 깃든 장소인 브르타뉴 지역에서 있었던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태어나지도 않았고, 오랜 시간 살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꿈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그리움을 자아내는 그곳에 대한 추억을 풀어낸다.
<아이와 전쟁>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약 5년간 전쟁 속에 살아야 했던 저자의 끔찍했던 일상을 담고 있다. 전쟁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오로지 여성들 사이에서 자라야만 했던 저자의 당시 상황과 감정에 대해 담고 있다.
저자는 자전적 이야기이기에 변질된 기억일 수도 있다는 점을 수용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에세이 같은 소설의 느낌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이것을 문학의 분류 기준으로 보자면 레시(recit, 이야기)로 분류된다고 한다. 통상적인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 어떤 감동과 서사가 전개되는지 이제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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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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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부터 1954년까지는 그저 매해 여름 몇 달 정도만 보냈을 뿐임에도, 브르타뉴는 내게 가장 많은 감동과 추억을 남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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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그곳은 친숙했다. 가족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가,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브르타뉴 사람이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한 가장 먼 조상 때부터 대대로 그 지역과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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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지역에 대한 저자의 느낌을 알 수 있는 문장이다. 오랫동안 머물지는 않았지만, 친숙하고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곳, 그곳이 바로 브르타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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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생트마린으로 오지만, 멈추지 않고 마을을 그냥 지나친다. 여름이면 관광객이 너무 많기에, 계속 길을 달려 끝까지 가서 그저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바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나는 매년 여름 바로 이곳에서 매일매일을 살았고, 머릿속에 그 마을 이미지를 가득 담았으며, 바로 이곳에서 진정한 나의 유년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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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곳의 변한 모습은 왜 유난히 나를 슬프게 할까? 마음속에 무슨 이미지를 소중한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기에,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뒤흔들면서 마치 보물을 도둑맞은 느낌을 주는 것일까?
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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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를 떠올리며 서술된 장면들을 살펴보다 보면 옛 시골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하나하나 세세하게 떠올리며 묘사한 사람, 장소, 풍경들은 읽다 보면 저절로 눈앞에 그려진다. 더불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현재의 모습과 비교되며 슬픔과 그리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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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대 사람들은 아직 브르타뉴어를 쓰던 환경에서 태어났다. 공립학교에서는 브르타뉴 '방언'(당시에는 브르타뉴의 언어를 그렇게 불렀다)을 금지했을지라도, 여름방학이 되면 그들은 언어의 해방을 만끽했다. 그것은 밖으로 나가고, 고함지르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서로 욕설을 퍼붓기 위한 언어였다. 다른 언어, 즉 파리지아네들의 언어는 잊어버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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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부모나 조부모처럼 그들은 전부 브르타뉴 말을 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잃어버렸다. 언어를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그것은 어린 시절의 언어, 과거의 언어, 돈을 벌 필요도 공부를 잘할 필요도 없던 시절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
왜일까? 그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왜 브르타뉴어가 자신들을 열등한 계층으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 언어를 사용하면 가난이나 무지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믿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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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그 소년 소녀들은 학교에서 브르타뉴어를 사용하면 벌을 받았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그랬다. 그것이 국가적 차원의 교육 강령이었고, 자신은 브르타뉴 말을 하면서도 교사들은 그 강령을 준수했다. 프랑스어는 공화국의 언어였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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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진정한 원인은 브르타뉴 사람들 자신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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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현대적인 것에 대한 유혹을 출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착각했고, 조상들의 관습과 풍속을 계속 유지하면 후진성을 면할 수 없을까 봐 겁이 났으며, 수 세기 동안 시골 사람들이 감내했던 지긋지긋한 가난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국가는 통일에 균열이 생길까 봐, 그 기조를 유지했다.
2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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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들을 통해 저자가 특히 그 지역에서 사용하던 언어였던 브르타뉴어가 사라진 것에 대해 매우 슬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름방학이면 마치 해방을 만끽하듯 사용하던 브르타뉴어가 마치 열등한 계층으로 밀어 넣는다는 생각 때문에, 가난과 무지의 언어처럼 여겨져 결국 그렇게 프랑스어에 밀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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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그 시대는 모두 사라졌을까?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인가가 엉기고 움츠러들면서 뒤로 물러나고 사라져버렸다. 그저 나무로 만든 배들의 골격이나 그물들의 잔재 같은 몇몇 흔적만이, 그리고 모래사장에는 낚시찌로 사용하던 유리알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80년대에 모든 해안가 마을에 닥쳤던 어업의 위기를 말하곤 한다. 그 당시 전문지식을 갖춘 고위 관료들이 탁상공론으로 만든 유럽 연합의 법규는 과거 삶의 방식에 타격을 주었고, 브르타뉴에 살던 어부들은 자신들 소유의 선박을 버리고 통조림 제조공장의 노동자가 되었으며, 그렇게 활기차던 항구는 창고가 되어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그 당시 어부들은 강력하게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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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렇게 저항했던 그 사람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트롤선으로 대량 수확한 생선들도 사라졌다.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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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유년 시절을 추억하지만, 반대로 현재에는 그 아름다운 추억 속 그 무엇도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더 서글픔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아주 짧은 시간 모든 것은 순식간에 과거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약간의 흔적들로 그저 '추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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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트와 마리즈와 해변에서 장난치고 난 후 우리는 그 아이들을 농장까지 데려다주었고, 르 두르 부인은 우리에게 간식으로 크레프와 사과주 한 사발을 준비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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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도 버터도 없이 위에 부담을 주는 거친 밀가루로만 만든 크랑푸젱이라는 진짜 브르타뉴식 크레프였고, 사과주는 미지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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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먹던 크레프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연기 가득한 농가의 희미한 빛 속에서 느끼던 뜨겁고 깊은 그 맛, 도자기에 담긴 사과주의 탄닌, 뭔가 모르게 감미로우면서도 거친 그 맛을 기억한다.
35~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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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먹었던 추억에 대한 맛에 대한 서술 장면을 읽으며 나만의 추억 음식도 떠올려본다. 사실 제대로 된 재료가 없어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때 먹었던 맛, 분위기, 향 등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산물이다. 그래서 저자는 오랜 시간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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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퐁라베를 가로지를 당시에는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마을도 길도 광장도 보행자들로 가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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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전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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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전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걷기 힘든 노인도, 헝겊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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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전거를 묶어두지 않았다. 종종 집의 대문도 잠그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주머니 속에 열쇠를 넣고 다녔던 기억이 없다.
40~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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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을 대신해 줄 자전거가 많던 시절. 길거리에는 보행자들과 자전거로 넘쳐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전거를 묶어두거나 문을 잠그지 않고 다녔다. 우리의 80~90년대 시절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골목 어귀에서 한데 어울려 다니던 아이들, 활짝 열린 대문들 속 따뜻한 밥 냄새가 풍기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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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브르타뉴의 교회는 초기 기독교의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었다. 권위적이면서도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교회였으며, 신도들이 수도승 주위로 몰려들고, 사제들이 법을 만들고 문화를 선도하는 수도원 중심의 교회였다. 기도, 마귀 쫓는 의식, 교훈, 추도사, 그리고 병자의 쾌유를 위한 기도 등이 사제의 일이었다. 내 어린 시절에 사라지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세상, 특이한 풍경이나 관광객들의 호기심과는 아무 상관도 없던 세상이었다.
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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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있어서도 완전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윤을 추구하는 현 교회와는 다르게 당시 브르타뉴의 교회는 사람을 보호해 주고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정감이 느껴지는 따뜻한 교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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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달라진 것은 경제였다. 그때까지 독립국이었던 브르타뉴는 유럽의 모든 나라와 무역을 했다. 특히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와의 무역이 활발했다. 브르타뉴는 선박의 자재와 밧줄과 돛을 수출하고, 포도주와 향수를 수입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는 로크로낭 등의 브르타뉴 도시들이 누렸던 번영의 원천이었다. 생토뱅 드 코르미에서의 패배는 그 번영에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브르타뉴는 무역의 자유와 독립을 포기하고 식민지 상태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무역의 자유가 박탈되었을 뿐 아니라, 프랑스 국왕을 위한 세금과 소금이나 수입품에 대한 세금 징수가 추가되었다. 대혁명 직전, 과거에 번영을 누렸던 영토는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는 현대까지 이어졌다.
97~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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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지역이 쇠퇴한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를 꼽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라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선하게 그려지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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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다시 하고, 기억의 조각조각을 맞추고, 삶의 흐름을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향수에 젖기 위함이 아니다. 먼 옛날의 마술적 힘을 묘사하고, 현재의 모습에서 순간순간 비치는 그 과거의 마력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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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웅을 따르고, 땅과 바람과 물의 힘을 믿던, 순박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당시의 일들을 다시금 떠올리고자 쓴 글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절대 만나볼 수 없기에 더 소중하고 감동으로 다가오는 유년 시절의 그날들.
학교의 교육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문화는 어느 세대에서 끊기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조상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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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고백이나 추억 앨범이 아니다. 그저 단조로우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브르타뉴의 노래다.
1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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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끝에 스며든 잔잔한 향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리움을 담아 남긴 화양연화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본 느낌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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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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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우, 제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3일에 시작되었다. 나는 1940년 4월 13일 니스에서 태어났다. 인생의 첫 다섯 해를 나는 전쟁 속에서 살았다. 나에게 그 전쟁은, 아니 모든 전쟁은 그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나는 전쟁을 하나의 현상으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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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감정과 느낌, 태어나서 최초의 기억이 남아 있는 다섯 살에서 여섯 살까지의 아이가 겪었던 불안정한 감정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1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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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태어난 아이는 전쟁 속에서 성장한다. 저자가 그러했다. 이 이야기는 전쟁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오롯이 느낀 감정과 일상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쟁'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만나볼 수 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각종 전쟁과 테러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떠올라 더 먹먹했던 이야기였는데, 이것은 아이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잠재적으로 뿌리 깊이 남아있는 가장 끔찍한 기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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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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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전부 당연하며,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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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기에 아이들은 그런 것을 예상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한다. 아이들이 불안해 할까봐, "사람들이 그러는데...", "~ 인 것 같아" 등의 모호한 말만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침묵이 더 두렵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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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의 아이였던 나는 늑대나 마녀의 이야기가 주는 공포를 알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것은 얼굴도 이름도 이야기도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감미롭지 않았다. 한 번도 감미로웠던 적이 없다.
내 삶의 첫 번째 기억은 폭력에 대한 기억이다. 전쟁이 시작될 때가 아니라 끝나갈 즈음의 일이다. 그 기억은 너무도 강렬하고 생생해서, 실제로 그것을 경험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13~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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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약 5년간 겪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이라 완전하진 않다. 하지만 당시에 겪었던 감정이나 기분은 분명하다. 평화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과는 달리, 전쟁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이 모든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떤 어른들도 제대로 된 진실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침묵 속에서 묵묵히 공포를 견딜 뿐이다. 어릴 때 들었던 동화 속 캐릭터나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그런 감미로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저 남아있는 강렬한 기억은 폭력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임팩트 강한 이 기억은 아마 죽는 순간까지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저자가 그러했듯,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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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소리 질렀을 뿐이다. 그 소리가 너무도 날카로웠기에, 그때를 기억할 때면,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소리를 온 세상에서 튀어나와 나의 고막을 찢는 폭발음과 뒤섞인다. 그 소리를 내 몸과 하나가 된다. 소리치는 것은 내 목구멍이 아니라 나의 몸이다. 나는 그 소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 순간도 선택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에게 전쟁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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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선명한 기억이 몸에 각인된 듯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어떤 것도 선택한 적 없는 아이는 그저 그 모든 것을 겪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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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아버지는 적도 아프리카의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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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사이에서 전쟁을 겪는 것은 불안한 동시에 온화했다. 불안했던 이유는, 우리 할머니처럼 강인한 여성일지라도, 여자들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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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 아버지 없이 여자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는 양가감정 속에서 자란다. 불안한 동시에 온화함을 느낀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프리카에 발이 묶여 가족들과 합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할머니와 어머니를 주축으로 숨어서 전쟁을 겪어낸다.
아이러니한 이 감정이 어쩌면 아이를 성장시키고 견디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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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분명 밖에서 왔다. 왜냐하면 밖에는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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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 '죽음', '사망자' 같은 단어들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온화했다. 정말로 아주 온화했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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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들어서는 안되는 '죽음'과, '사망자'라는 단어가 아주 흔하게 들렸지만, 아이는 이 순간마저도 온화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위험한 밖에 아닌 안전한 안에서 아이들을 품어준 엄마와 할머니가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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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우리는 전쟁의 시기를 보냈다. 그 장소가 그토록 쾌적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여자들이 만들어낸 분위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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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고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나마 따스하고 안락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고치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자랄 수 있었다. 밖의 공기는 음산하고 축축하고 추웠지만, 집안 분위기는 활력이 넘치고 따뜻했다.
1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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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고치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처럼 느껴졌다는 문장에서 얼마나 여성들이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다. 험악한 바깥 분위기와는 다른 안락한 내부의 분위기에 대해 서술한 문장은 아이가 당시 피부로 느낀,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문장이다.
허기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육체적 허기를 경험한 사람이다. 나는 나는 몸 안에서 느껴지는 정신적 허기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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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허기, 나는 그것을 어린 시절 전쟁 중에 경험했다. 허기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속이 빈 것이 아니라 내 몸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언제나, 매 순간 느끼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공허함이다.
1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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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이 안 된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전쟁 중에, 폭력 속에서 태어났다.
나는 공허한 상태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결핍, 뻥 뚫린 구멍, 하나의 공간이다. 나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무엇인가를 원했던 기억이 없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풍부하게 가져본 적이 없다. 그뿐이다.
1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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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그것은 우리 몸 한가운데의 텅 빈 공간을 절대 채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다. 시간은 많이 흘렀고, 그동안 나는 다른 세계에서 자랐다. 우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던 곳, 음식도 충분하고 자유도 충만했던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그 후, 니스나 브르타뉴에서도 우리는 배급제 시절과는 거리가 먼 시기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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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내 뱃속과 머릿속에 파놓은 텅 빈 공간,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일부다.
138~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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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얻은 또 하나의 아픔은 바로 정신적 허기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얻게 된 산물은 그렇게 존재의 일부가 된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전쟁 통과는 다른 풍족한 상황에서 살아도 여전히 전쟁이 파놓은 텅 빈 공간은 메워지지 않는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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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무도, 우리 같은 아이들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그날 그날을 살았다.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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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는 전쟁의 종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 아이는 대문자 역사 속에 살지 않았는다. 이야기, 동화, 순간적으로 알아들은 말, 백일몽, 이런 것들을 알 뿐이다.
1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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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마찬가지지만, 해방 역시 아이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일뿐이다. 아이에게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전쟁이든 해방이든 아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두 이야기를 흐름상 살펴보면 <아이와 전쟁> 이후 <브르타뉴의 노래>가 순서상 맞는 듯하다. 이 두 시대는 아주 극적인 상황을 연쇄적으로 겪었기에 어쩌면 더 저자의 인생에서 도드라지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순간 겪은 전쟁 속 환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죽음'은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그 속에서 엄마와 할머니의 품속은 온화하고 따뜻했으며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아이들은 어떤 것도 선택하거나 사실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으며,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정신적 공허함을 쌓여갔고 그것은 곧 일상이 된다.
그렇게 궁핍과 불안 속에서 살던 중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게 된 이들 가족은 아버지와 다시 해후하게 되고 이전과는 다른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바깥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숨을 필요도 없게 된다.
그리고 여름휴가마다 방문했던 짧지만 평화로웠던 브르타뉴 지방은 마음속 고향처럼 저자에게 가장 많은 감동과 추억이 서린 곳으로 자리 잡는다. 혼란하고 공허했던 내면을 가득 차게 해주었던 곳이 어쩌면 브르타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방문한 그리운 브르타뉴는 어느새 과거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낯선 현재의 모습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쩐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유년 시절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며 찬가를 부르짖는 저자의 노래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어쩌면 자신이 꿈꾸는 마음속 가장 이상적인 곳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