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만담>저자와 의 독서만담...이란 주제로 서울숲에서 강연을,

'나는 글쓰기가 처음인대요'라는 주제로 상주도서관에서 강연을,

2017 국제도서전에도 참가하는데요. <북바이북 출판사> 부스에서 저자 사인회를 하게 되었네요. 

모두가 여기 알라디너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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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6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전 행사 일정을 방송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도서전 홍보뿐만 아니라 도서전에 소개된 서점을 알 수 있고, 유익한 강연까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도서전이 방송 콘텐츠를 활용하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박균호 2017-06-16 10:4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냥 뉴스로만 볼 수 있으니 아쉽네요

stella.K 2017-06-16 1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사진 잘 나왔는데요?
인상 참 좋으십니다. 국어 선생님이라 그러신가...?ㅋㅋ

모처럼만의 서울 나드리시겠습니다.
먼곳에서 오시는 길일텐데
평안히 다녀가십시오.
저는 그냥 응원만하겠습니다.^^

박균호 2017-06-16 15:41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근데 저 영어 선생이랍니다..^^

stella.K 2017-06-16 15:49   좋아요 2 | URL
ㅎㅎ 헉, 그러신가요?
근데 왜 전 자꾸 국어 선생님이라고...ㅠ
죄송합니다.^^

박균호 2017-06-16 15:5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괜찮습니다. 흔히들 그렇게 착각 많이 하시더라구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어느 추운 겨울밤 우리 가족은 굶주리고 있었다. 외출했다가 무슨 사정으로 식사를 못 한 채 늦은 밤 귀가를 했다. 우리 가족은 피곤해서 식사를 준비할 엄두도 못 냈고, 찬거리도 없었다. 피자를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피자 가게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주문했다. 


어떤 피자를 먹을 거냐고 내 의향을 묻는데, 모든 종류의 피자를 싫어하는 나는 애써 따뜻한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너희(아내와 딸)들의 취향을 따르겠으니 먹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시키라고 했다. 삼십 분쯤 뒤 현관 벨이 아닌 집 전화벨이 울렸다. 피자 배달원인데 우리 집에 도착을 했으니 ‘어서 문을 열어’달란다. 


당시 나는 내가 아끼는 땡땡이 잠옷 하의와 내가 자랑하는 ‘깔깔이’를 입고 있었다. 분명 집 밖으로 나가는 바람직한 50살 먹은 중년 남자의 복장은 아니었다.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배달원이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있으면서 왜 현관 벨이 아닌 집 전화로 연락을 한 것인지? 내가 이웃을 만날 수도 있는 사회적인 공간인 현관 밖으로 나가는데 적당한 의상을 착용하고 있는지? 는 1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추운 날씨에 최저시급을 벌겠다고 일하는 배달원의 안위가 걱정된 나는 맨발로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먹는 즐거움은 없고 나의 빈 위를 채워주는 역할만을 할 피자에는 관심이 없었고 피자 배달원이 걱정되었다. 현관문 앞에는 배달원이 없었다. 누가 봐도 노숙자의 행색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나갔다. 


그곳에도 피자를 든 배달원은 없었다. 배달원은 추워서 죽을 것 같았겠지만 나는 그 행색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집 안에 있는 아내는 ‘현관 앞에서 피자를 들고 있는데 왜 받으러 나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피자 배달원의 항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사정은 이랬다. 아내는 우리가 사는 김천에 있는 지점이 아닌 상주 지점에 주문했고 참으로 불행하게도 상주에도 우리가 사는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있어서 배달원은 ‘자연스럽게’ 고난의 배달을 나선 것이다. 상주에 있는 우방아파트에서 김천에 있는 우방아파트 주민인 우리에게 피자 수령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즉각 사과했지만 배달원은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굶주림을 참으며 잠자리에 들려는데 아내가 ‘다소곳이’ 피자 가게 직원에게 사과하는 것을 들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통화내용을 들으니 피자 배달원은 내가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호통을 쳤단다.


우리 가족의 굶주림 따위보다는, 내 체면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그 행색으로 현관으로 달려나간 나의 진심을 알아주기는커녕 나를 못된 사람으로 모함했다.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괘씸한 피자가게에 대한 응징 계획을 세웠다. 


마침 그 피자가게의 본사에 근무하는 사촌 동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그 지점의 불찰을 확보하였으며, 피자 가게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을 대비한 비장의 카드도 마련했다. (피자 회사 본사에는 고객 불만 센터가 있는데 그쪽에 항의하겠다고 하면 지점 직원들은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고) 또한 배달을 나설 때 어느 지역의 그 아파트가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직원의 약점도 파악했다. 


근무시간이 시작되자마자 피자 가게에 전화를 걸었고 당연히 점장을 찾았다. 전화를 받은 점장은 무슨 이유인지 풀이 죽어 있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자신들의 불찰을 이실직고했다. 아내가 애용하는 포털사이트에서 김천 지점을 검색하면 자동으로 상주 지점의 연락처를 안내해주는 오류가 있었단다. 


내가 알지도 못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알려주는 점장에게 나는 그의 높은 도덕성과 솔직함에 놀란 나는 힘없이 전화를 끊고 말았다. 종종 과도하게 이타주의적이고 치밀하게 자기중심적인 나의 행동이 나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갈매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를 읽으니 피자가게에 관련된 나의 행동이 금방 이해가 되었다. 


내가 깔깔이와 잠옷 차림으로 현관문으로 맨발로 뛰어나간 것은 피자 배달원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이타주의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나는 피자에는 관심도 없었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에 따르면 나의 아름다운 이타적인 행위의 근간은 치밀한 배려심이 아니고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한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곧 인간의 생존전략이며 이 생존전략이 우리 인간의 뇌 속에 상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베푸는 이타적인 행위는 사실 뇌 속의 생존전략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 교수는<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를 통해서 주장한다. 


내가 깔깔이와 잠옷 차림을 이웃에게 목격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한 것은 사실 피자 배달원을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의 발로가 아닌 뇌 속의 생존전략에 따른 본능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대신 내 아내를 억울하게 사과하게 만든 피자 가게를 향한 내 응징계획은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가 비록 우리가 숭고하다고 생각해왔던 이타주의적인 행동이 사실 뇌 속에 잠재된 생존전략의 소산일 뿐이며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행위가 계획에 의한 것임을 주장한다고 해서 불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는 뇌과학과 심리학이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의 원인을 명쾌하게 알려주는 학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노 룩 패스’로 자신의 여행 가방을 비서에게 넘긴 모 정치인의 행위는 분명 우리가 혐오하는 갑질의 전형이다. 


동시에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그 정치인이 피해자격인 국회의원들의 보좌진이 뽑은 ‘함께 일하고 싶은 의원의 1위’라는 사실이다. 그 정치인의 갑질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계층은 정작 그와 일하고 싶어 한다는 이 미스터리를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를 명쾌히 설명한다. 


그 정치인이 보좌진과 비서진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의리를 발휘하는 이타주의적인 행위와 가방을 밀어서 건네는 갑질은 결국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려는 ‘생존 전략’이라는 같은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것을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를 읽으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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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7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기꾼은 상대방을 유혹하기 위해 선의를 가지는 척하면서 접근해요. 사기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걸 단번에 알아내기가 어려워요.

박균호 2017-05-27 19:15   좋아요 0 | URL
네 그렇죠 속일려고 덤비면 당할 재간이 없지요.

커피를끓이는우디 2017-06-14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구입 욕구가 쑥쑥 솟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 내가 만난 초보 저자와 글쓰기 비법
한기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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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의 한기호 선생은 6살의 순수함을 가졌다. 출판계를 향한 쓴소리와 비판의 글에도 ‘애정’이 담겨있고, ‘책과 함께 잘 살자’라는 몸부림이 배어난다. 

그가 쓴 <인공지능 시대의 삶>에서조차 ‘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냄새만 난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쓴 그의 글에서는 배타성이라든가 공격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더라도 그렇다. 작년에 한기호 선생이 운영하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와 출판 계약을 맺고 올해에 <독서 만담>이 출간되었지만, 사실 독자로서는 훨씬 이전에 인연을 맺고 있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책과 출판에 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책을 읽고, 한기호 소장의 글을 접하기 마련이다. 내가 연구소에서 나온 이런저런 오래된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기호 선생의 최신작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를 펼치다가 반가운 대목을 발견했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쓴 ‘최성일’ 선생과 그 가족의 저작을 다룬 꼭지다. 내가 한참 절판 본과 희귀본 수집에 열중하고 있을 때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멘토로 모셨었다. 수집이라는 행위는 ‘광기’와 ‘탐욕’이라는 양념이 동반되기 때문에 희귀본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꼭 필요하거나, 읽고 싶어서 뿐만 아니라 ‘희귀본이기 때문에’ 무작정 사냥하고 보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는 왜 그 책이 많은 사람이 손에 넣기 위해 환장하는지도 모르고 비싼 값을 감수하기도 한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일단 내 손아귀에 넣고 보는 버릇이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그 책을 읽고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왜 내가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고, 이 책이 왜 귀한 대접을 받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책은 이런 책이냐고 한마디로 정의를 할 수 있어야겠더라는 것이다. 

명색이 책 수집가가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귀하고 비싼 책이야’라고 말할 수 는 없잖는가?<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들인 서양 사상가들의 저작들에 대해서 ‘그 책은 이런 책이고 그 책을 쓴 아무개는 이런 삶을 살았어’라고 알려주었다. 사상가 218명의 생애와 저작을 다룬 백과사전식의 책이지만 지루하지도 딱딱하지도 않다. 책에 살고 책에 죽는 한 독자의 흥미로운 탐험이 가득한 책이다.

무려 13년간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의 저술에 매달린 최성일 선생이 뇌종양으로 쓰러져 고생하고 있을 때 그를 돕기 위해 한기호 선생이 원래 5권으로 구성된 것을 합본호로 다시 출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판매 수입금을 전부 기증한다는 눈물겨운 소식을 접하고 나는 합본호를 기꺼이 구매했더랬다. 내가 한기호 선생을 기억하게 된 계기였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유가족으로 남은 최성일 선생의 아내 신순옥 여사가 <남편의 서가>를 집필한 과정과 뒷이야기를 포함해서 ‘초보 저자’ 20명의 삶과 첫 책을 낸 사정 및 그들만의 글쓰기 비법 등이 담겨 있다.

블로그 마케팅에 대한 한 편의 글로 인생을 바꾼 이수영 씨, 시간강사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된 저자 김민섭 씨, 글 쓰는 편집자가 된 이홍 씨,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사는 김민영 씨 등 평범한 사람의 감동적인 ‘책 쓰기’ 이야기가 펼쳐진다. 출간이라든가 글쓰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차라리 글쓰기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한기호 선생의 책이 딱딱한 주제이지만 감칠맛이 나는 이유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가 다루는 초보 저자 20명의 저작이 소중한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몰입한 경험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글솜씨는 부족하더라도 주제의 참신함과 내용의 진정성은 대가의 책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는다. 초보 저자의 책들은 저자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담은 것이고, 독자들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인생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누린다. 

편의점에서 18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온 경험을 토대로 쓴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의 성공을 보면서 ‘대한민국 편의점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김도균이 ‘편의점 생활’에 관한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편의점에서 1억 원을 썼다면 분명 그만큼의 재미난 경험을 보유하고 있을 터이고, 나만 해도 기꺼이 그 경험이 담긴 김도균의 책을 냉큼 살 것이다.

한기호 선생은 한 가지에 몰입하는 평범한 사람과 출판의 가교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누구나 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와 저자가 되는 비결을 잘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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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5-14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한기호 선생님의 글을 기다리게 된 독자 중 한 명입니다. 신간 소식이 무척 반갑습니다. 보관함에 넣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균호 2017-05-14 18:31   좋아요 1 | URL
아...그러시군요. 열정이 넘치는 분이시죠. 소장님..

2017-05-14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4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6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5-16 09:15   좋아요 1 | URL
앗...소중한 오타 지적 정말 감사해요.
 
음식과 요리 -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해럴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 이데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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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욕심이 많다. 탐나는 책이 있으면 일단 지르고 본다. 자연스럽게 종종 내 독해력으로 감당이 안 되거나 내 인내심으로는 완독할 수 없는 책이 배송 되어 온다. 그런 책들이 도착하자마자 그 책을 보유한다는 자부심만 챙기고 서재의 로열석에 모신다. 돈을 썼으니(어려운 책은 대개 비싸다) 내가 그 책을 읽은 것처럼 자랑해야 할 것 아닌가?

양심은 있어서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정신승리 거리를 남기는 편이다. 가령 <우아하고 낭만적인 일본 야구>를 읽다가 금방 포기하지만, 일본야구팬에게 권할 만한 책은 아니다는 정도의 손바닥 지식은 챙긴다.‘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이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1,260쪽짜리 <음식과 요리>가 내 책상 위에 올려졌을 때 ‘정신승리 거리’를 찾는 것조차 만만찮겠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책장을 넘기는 것도 운동인데, <음식과 요리>를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은 100kg짜리 역기를 드는 것과 진배없어서 책상에 모신 채 힘겹게 구경했다. 어서 이 괴물을 내 책장의 한가운데에 모셔두고 나의 서재 방문객들의 찬사를 받고 싶다.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고시공부를 하는 자태로 ‘나, 이 책을 읽었소’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 나섰다. 정가가 무려 8만8천 원인 명저답게 금방 나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누구도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하고 공생적인 파트너십의 결과물임을 쉽게 망각할 수 없었다. 또 누구도 돼지와 소가 죽은 덕분에 우리가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낯익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것을 지켜보았고, 정기적으로 마구간을 들었고, 자신의 일상 식사를 위해 그 동물들이 목숨을 읽게 될 도살장을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 세월이 흘러 이제 고기를 먹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들이 씹고 있는 그 살의 주인이 살아 있는 생명체 일 때의 모습을 본 사람은 매우 드물다. 자신들이 그 동물들을 실제로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 포장의 세계에서 먹는 행위가 죽이는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도덕적 의미를 지닌 것임을 떠올리지 않기란 아주 쉽다. (....) 고기란 이제 마켓에서 산구입한 깨끗이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다. 자연은 그것과 별 관계가 없다.” -월리엄 크로넌 <음식과 요리> 201쪽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때 닭과 소는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 어머니는 농사일하다가 끼니때가 되어서 집에 돌아오시면 ‘말 못 하는 짐승이라 배고파도 말도 못 한다’며 소여물을 먼저 챙기고서야 식사를 하셨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 살던 소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우리 집 소들은 우리 집 소처럼 생겼었다. 송아지가 팔려나가면 어미 소는 여물을 내팽개치고 며칠간 목이 터지라 울었다. 소와 함께 살았지만, 실수로라도 소들은 내 발을 밟은 적이 없고 꼬리로 내 뺨을 때린 적이 없다. 

겁이 많고 도망 다니기 바빴던 암탉들은 병아리를 거느리면 그 어떤 맹수보다 무서웠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희생되었다. 송아지는 팔려나갔고 닭은 제사상에 올려졌다. 그들과의 이별은 사람이 늙어 죽는 것과 다름없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닭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서기 2000년생인 내 딸아이도 내가 ‘닭고기’라고 불렀던 ‘치킨’을 좋아한다.

닭고기라는 말에는 ‘닭의 희생과 미안한 감정’이 스며있지만 ‘치킨’이란 말에는 닭이라는 생명체는 배제되어 있다. 치킨은 콜라와 과자처럼 ‘공산품’이 되었고 닭이라는 모성애가 강한 생명체와는 별개의 먹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고기란 이제 마켓에서 구입한 깨끗이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다”라는 ‘월리엄 크로넌’의 한탄이 19세기의 것임을 아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무자비한 사육환경’에 고통 받는 소와 돼지 그리고 닭을 연민하여 고기를 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좀 더 인간적인 사육환경을 의무화한다면 ‘치맥’은 어쩌면 상위 1% 귀족들만의 음식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고기에 환장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사육환경이 잔인하게 된 것은 인구의 증가로 인한 대량소비에 기인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채링크로스 84번지> 개정판이 나와서 얼른 샀고 다시 읽었다. 무명작가와 헌책방 주인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끼는 책은 책 속의 주인공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같은 책을 두 권 가지고 있는 사치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뉴욕의 가난한 작가와 궁핍했던 영국의 헌책방 직원의 인연을 이어준 것은 ‘헌책’과 ‘고기’다.

“친애하는 한프 양. 달걀과 혓바닥 고기 통조림 두 상자가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을 아시면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모두 당신의 매우 자상한 마음씨에 다시 한번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62쪽

대량소비를 위한 잔혹함과 ‘좀 더 인간적인 사육환경’의 간격은 줄어들 수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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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9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05-09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돼지와 닭의 사육 환경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까이서 이 동물들을 접할 기회가 없던 저로서는 착찹한 충격이었죠. 그때까지 돼지는 고기였고, 닭은 백숙이나 삼계탕의 재료였거든요. ‘고기가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라는 한탄에, 그럴 수 있겠다 공감합니다.
간혹 있는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을 환장한 듯 흡입하는, 음, 모순투성이 채식주의자가 거리낌없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존재들이 한 때는 나와 마찬가지로 숨쉬던 생명이었음을 종종 생각합니다. 인간, 참 잔인하고 욕심많은 존재다 하며.

박균호 2017-05-09 19:29   좋아요 1 | URL
네 그렇죠 인간의 이중성요 ㅠ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2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이봉지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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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그분들이 하는 말이나 운동 따위에도 관심이 없고 동조도 하지 않는다. 여성혐오도 남성혐오도 다 혐오한다. 솔직히 토로하자면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군인들의 백일휴가를 ‘백일 동안의 휴가’로 생각하고, 군대를 ‘가고 싶고,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학점을 딸 수 있는’ 캠핑쯤으로 여기는 여자들을 연상하게 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담보하지 않듯이,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그의 실생활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부합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의 강간을 돕기 위해 돼지 발정제를 구해준 모 정치인처럼 ‘스트롱맨’은 아니다. 그 양반처럼 스트롱맨 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도 이유도 없다. 

여성의 지위나 남성의 지위를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인권’이라고 통틀어서 다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린 모두 여자를 엄마로 두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한 가족이고 같은 인간일 뿐인데 여성의 지위가 높네! 남성의 지위가 높네며 싸우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가족일 뿐이다. 사회가 발달할 수록 어차피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별은 완화되기 마련이 아닌가? 현재만 해도 여자가 모든 면에서 남자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나에게 눈에 띄는 페미니스트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지 엘리엇’이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작가의 책>을 읽는데 지금까지 읽은 독서에세이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지 <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장이 영미의 작가를 찾아 그 양반들의 독서와 책에 관한 문답을 실은 책이다. 다양한 작가들이 등장하는데 질문은 비슷하다.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 질문들이 오롯이 ‘독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면면은 대충 이렇다. 

“지금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책을 한 번에 한 권씩 읽으시는 편인가요”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끌리시나요? 피하는 이야기 종류는요?” 
“당신의 책장에 잇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자기계발서도 읽으시나요? 추천할 만한 책이 있다면요?” 
“가장 최근에 당신을 소리 내어 웃게 만든 책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눈물을 자아낸 책은요? 가장 최근에 당신을 화나게 만든 책은 무엇이었나요?” 
“대통령께 단 한 권의 책을 권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권하시겠습니까?” 
“아이들과 함께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좋아해야 마땅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책이 있습니까?

                                                              


고인이 되었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가운데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이런 종류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또 다른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는 것인데 <작가의 책>은 훌륭히 그 기능을 다 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인터넷 서점에 검색하게 된다. 언급된 책이 국내에서 번역되었고,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수십 권의 책이 장바구니에 담기는 수확을 일궈냈다. 

그중의 한 권이
 <미들마치>라는 책인데 다른 작가에 의해서 두 번 정도 언급될 때까지는 지나쳤다. 제목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세 번째로 이 책이 언급되었을 때 참지 못하고 이 책의 서지사항을 검색했다. 놀랍게도 러시아 문학의 <전쟁과 평화> ,프랑스 문학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고전의 하나였다. 출판사의 소개는 이렇다.‘지방생활의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작품은 영국의 작은 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지주, 목사, 제조업자, 전문인, 상점주인, 선술집주인, 그리고 농부와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19세기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분량이 놀랍다. 국내에는 완역본이 아닌 169페이지짜리 축약본만 나와 있는데 원작은 이 책의 15배 분량이라니 거저 놀라울 따름이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미들마치>의 저자 ‘조지 엘리엇’을 흠모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에 뜨악한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페미니스트가 바로 ‘조지 엘리엇’이다. 1819년에 태어난 ‘조지 엘리엇’은 이름이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 남자가 아닌 ‘메리 앤 에번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다.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에 맞서려고 일부러 남자 이름을 사용했고 당시 독자들은 물론 ‘조지 엘리엇’을 남자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유부남인 ‘조지 헨리 루이스’와 동거를 해서 영국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루이스의 격려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루이스가 사망하면서 그녀는 더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루이스가 사망한 2년 뒤 20살 연하의 ‘존 월터 크로스’와 결혼하지만, 그해 세상을 떠났다. 

어쨌든 아래의 소개를 읽고 있노라니 <미들마치>의 완역본이 국내 독자를 위해서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또 다른 소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은 완역되어 국내 독자가 읽을 수 있는데 이 소설 또한 ‘조지 엘리엇’의 자전적 소설이고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이라니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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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5-07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만담>을 읽으며 저도 수없이 검색을 했지요^^ 저도 갖고 있고 읽은 책을 발견하면 반가웠구요. 그 중 한 권이 허구연의 <여성을 위한 친절한 야구교과서> 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호호^^
작가의 책도,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도 사놓고 못 읽은 (수많은-_-) 책들 중 하나네요.ㅠㅠ;

박균호 2017-05-08 08:52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ㅎㅎㅎ 근데 작가의 책은 외국책이라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드문게 아숴웠어요 ㅠㅠ 그나저나 달밤님 댓글 참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