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주말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 친구가 놀자고 해서준비 중이라고. 대학 졸업을 앞둔 나이에 논다라고 하면 모름지기 술 한잔하고 무도장 정도는 가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딸아이가 논다라는 것은 그저 맛집에 가거나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서 수다 떠는 정도다. 23살 난 딸아이와 그 친구에게 동심을 느끼다니 좋아할 일인지 걱정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종일 잘 논 다음 저녁에 전화를 걸어왔다. 제 엄마랑 한 이십 분 통화를 하더니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단다. 군대 졸병 시절 군기를 담당하는 고참에게 호출받은 기분이다.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했으며 어떤 훈계가 기다릴지 무서워하면서 전화를 건네받았다. 대뜸 속상한 일이 있다고 한다. 주제가 나의 비위가 아니니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요새 매일 야근하고 있단다. 이제 근무한 지 두 달 남짓한 인턴이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아서 야근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 대답은 영상편집. 딸아이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자신은 정직원도 아닌데 왜 야근을 매일 해야 하며 더 화가 나는 것은 정직원은 야근을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을 비롯한 인턴들만 야근하고 있다고.

 

야근한 첫날 동기 인턴은 화가 나서 술을 한잔 걸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 물었다. 딸아이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 아빠랑 통화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 “그런데 직장 상사 욕은 하지 말고 내가 하는 말에 공감만 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딸아이는 제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받고 그다음 차례로 나와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의무를 다한 아내는 무거운 짐을 나에게 인수인계한 다음 마음과 육체의 고향이자 휴식처인 안마의자로 갔고 나는 돌덩어리처럼 무거운 전화를 받은 것이다. 딸아이의 하소연을 듣고 공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위로랍시고 자칫 말 한마디를 잘 못 했다간 딸아이의 불쾌 지수를 대폭 상승시키고 그 불똥은 나에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20분을 보낸 다음 드디어 마무리 멘트가 떨어졌다. 전화를 끊고 싶다는 뉘앙스가 들키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니 특히 유념해야 한다.

 

긴장감이 갑자기 풀어지니 나도 모르게 정작 내가 궁금했지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야근 수당은 주니? 얼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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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20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니 자식 눈치를 보게 되어 말도 가려서 하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박균호 2022-09-20 15:23   좋아요 0 | URL
네 그럼요 그렇게 되더라구요 ㅠ

서니데이 2022-09-2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중요한 걸 잊지 않으셨군요.
야근수당 많이 나오면 좋겠네요.
박균호님 좋은밤되세요.^^

박균호 2022-09-20 22:3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나요. 언제나 따뜻한 인사 정말 감사합니다.

다섯 2022-09-27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의 호출에 경기를 일으킬 나이가 되셨군요. 세월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경처가에서 경녀가로. 동감이라서 댓글에 얹어 봅니다.

박균호 2022-09-27 10:29   좋아요 0 | URL
네 요샌 아내보다 딸이 더 무섭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