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전화가 왔다. <소명출판>이라는 이름이 뜬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미안하다는 말을 준비했다. 왜 이런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인가.
예상대로 소명출판에서 낸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읽고 강연이나 연재 부탁을 전달하는 용건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아서 미안한데 올해 들어와서 갑자기 늘어난 강연이나 연재 부탁의 대부분이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덕분이다.
무척 바쁜 출판사인데 이런 일로 자꾸 나에게 연락하게 해서 송구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동네 이장을 지낸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익숙한 <농민 신문>에 <이 책 이 문장>이라는 대문을 달고 매주 연재를 하게 되었다.
종종 악덕 출판사 이야기는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이렇게 제 살을 갉아서 저자를 빛나게 하는 출판사 이야기는 드물다. 천 쪽이 넘는, 문학 사료가 가득한 간행물을 일 년에 두 번 꾸준히 내는 출판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소명출판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는 소명으로 책을 내는 출판사다. 그래서 소명출판에서 책을 내는 저자들은 출판사의 피와 땀의 열매를 누린다. 내가 소명출판에 감사하고 미안한 이유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나온 <근대서지> 23호를 냉큼 주문한다. 작지만 가장 확실하게 이 좋은 출판사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