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세 식구인데 교사가 2명이고 학생이 1명이다.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우리 집은 방학 때가 가장 행복하겠고 개학이 되면 뿔뿔이 흩어질 운명이다. 근무처가 너무 멀어서 주말부부 신세인데 딸아이는 그 와중에 멀리 서울로 대학을 갔다.
우리 부부는 방학 때 요란스럽게 교육활동을 하지 않는 학교에 근무하다보니 아무래도 방학은 사이버연수라든가 다음 학기 준비를 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코르나 때문에 재작년 겨울에 본가에 내려온 딸아이는 어제까지 집에서 지내다가 이제야 서울로 올라갔다. 겨울방학 내내 우리 세 식구는 집에서 같이 보냈다. 지나고 보니 참 행복했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좀 더 재미나게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우리 부부의 루틴은 변함이 없겠지만 대학 3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이제 방학이 되어도 집에 내려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취업 공부도 해야겠고 인턴 활동도 필요하단다. 취업을 하고 결혼도 할 테니까 올 해처럼 몇 달 동안 우리 식구가 모여 사는 시절이 또 올까 싶다. 가끔 교육대학에 가서 교사가 되라는 우리 부부의 조언을 거절한 딸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본인의 인생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하겠다는 결심은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한다.
이번 겨울 우리 세 식구가 함께 보내는 마지막 평일, 주말을 기념하고 소풍을 다니며 외식을 했다. 마지막 날에는 딸아이가 오늘은 세 식구가 같이 자자고 보채는 바람에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주책을 부리기도 했다. 서울에 올라간 딸아이는 다행히 좋은 친구와 선배가 있어서 환영을 받고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또 혼자 사는 곳으로 내일 새벽이면 떠나야 한다. 그래봤자 금요일이면 다시 돌아올 텐데 마음이 아프고 혼자 남은 아내가 안쓰럽다. 큰 집에 아내 혼자 남겨두고 가려니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된다. 혼자 남은 아내는 얼마나 쓸쓸할까.
오랜만에 책을 꺼내들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인데 건축가의 이야기다. 한 참을 읽다가 거추장스러운 외지를 벗겼는데 세상에! 내지 디자인이 건축가의 중요한 소재인 목재다. 겉표지는 주인공 건축사 사무실의 여름 별장이 자리 잡은 풍경을 연상케 하고 내지는 그 건축가가가 즐겨 사용한 건축 자재를 담는 천재성이라니. 이런 출판사는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으면서 우리 세 식구의 추억도 오래 우리 집에 남기를 희망해본다.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