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녹색 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이런 저런 만담을 자주하셨다. 그러니까 <녹색평론>과 인터넷이 동시에 태동하던 1990년대 초반, 강의 도중 바둑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러시면서 “거참, 요새 컴퓨터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라면서 한탄을 하셨다. 이어진 말씀이 이랬다. “바둑은 바둑알을 만지는 재미로 두는 건데 말이죠”



나에겐 연필이 바둑알 같은 존재다. 사실 집필을 하면서 키워드를 메모할 때를 제외하고는 손 글씨를 거의 쓰지 않는 편인데 연필은 무척 좋아한다.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을 때, 회의를 할 때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킬 때, 책을 읽을 때 등 연필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모양이 예쁘고 좋은 향이 나는 연필은 모두 내 손을 거쳐 갔다.
좋다는 연필은 다 써봤지만 한 번도 몽당연필을 만든 적이 없었다. 연필은 거의 만지작거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연필은 그저 만지고 선물하는 용도였다. 내가 한 가지 연필에 탐닉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으면 모름지기 내 사무실 동료라면 내 연필 한 두 자루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일 년이 지나도록 말 한 번 섞는 경우가 드문 동료조차 내 연필을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아껴 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새로운 연필을 들였다. 미국에서 목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개인 공방에서 십자가를 비롯해 목공예 제품을 만드는 분의 작품이다. 원목을 깎고 기름칠을 한 연필인데 수공예로 만들다 보니 모양도 굵기와 길이도 다 제각각이다.



연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윷에 가까울 정도로 큰 것도 있고 작은 내 손에 맞는 것도 있다. 규격화되지 않은 이 연필은 오로지 칼로 깎아서 써야 한다. 붓글씨를 쓰기 전에 먹을 가는 것과 같은 아날로그 감성이 하나 더 추가 되는 셈이다. 원목과 기름향이 묘하게 섞여서 아날로그 감성을 제대로 발휘한다. 이 연필과 함께 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아울러 모양이 하도 특이해서 예전처럼 내가 모르는 이 연필의 새 주인은 생겨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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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09 2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볼록렌즈로 찍은 것처럼 제 눈에는 두툼해 보이네요..^^ 연필 잡아본지 참 오래되었는데, 저렇게 예쁜 연필이라면 소장각입니다^^

박균호 2021-02-09 20:37   좋아요 2 | URL
실제로 두툼합니다 홓

바람돌이 2021-02-09 2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필이 아니라 예술작품 같은 느낌이네요. 저거 칼로 깎을 때 손 떨릴듯 합니다. ^^

박균호 2021-02-09 23: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게요

2021-02-09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2-10 00:11   좋아요 2 | URL
아 저 갑자기 어린왕자의 여우가 된 기분이에요. 네가 올때까지 난 계속 설렐거야. ㅎㅎ 미리 감사인사 드리고 이 설렘을 계속 만끽할래요. ^^

2021-02-10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2-10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저런 연필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저도 연필 좋아해서 연필 꽂이가 몇개인데 ㅜㅜ 아 완전 탐 납니다 ㅎㅎㅎㅎㅎ

박균호 2021-02-10 00:09   좋아요 2 | URL
https://www.canacreation.com 미국에 계신분이라 카톡으로 연락하시고 입금하시면 됩니다.

초딩 2021-02-10 10: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21-02-10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작품이네요~ 규격화된 사회에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애정이 돋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2021-02-10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1-02-10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제연필은 처음보는 것 같아요. 신기합니다.
만드는 사람의 애정과 수공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예요.
오늘부터 연휴가 시작되어 명절인사 드립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세요.^^

박균호 2021-02-10 23:58   좋아요 2 | URL
근데 너무 굵어서 실용성은 그닥 없습니다.ㅠㅠ 서니데이님도 항상 건강하시고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언제나 고맙습니다 !!!

하나의책장 2021-02-13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쓰는 것을 좋아해 펜말고도 연필쓰기를 좋아해서 제 책상 위에 연필만 잔뜩 담겨있는 연필통이 하나 있어요! 사각사각, 연필은 연필만의 매력이 있어 예쁜 연필은 모으게 되는 것 같아요ㅎ 행복한 명절 연휴 보내세요🌻

박균호 2021-02-13 17:09   좋아요 2 | URL
네 하나님도 즐거운 휴일 되시길

2021-02-17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7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7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7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8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8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