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르나 때문에 집콕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작년에 집을 떠나 서울로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던 딸은 코르나 이후로 쭉 집에서 지낸다. 아마도 이토록 오랫 동안 온식구(그래봐야 3명이지만)가 함께 지내는 시절이 또 오지는 않을 것이다. 딸아이는 다시 서울로 떠날 것이고 취직을 할 것이며 결혼을 하겠지. 우리 가족에게는 지금이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딸아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워낙 입시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으니까.
아내와 딸에게 서재는 ‘가서는 안될 무섭고 지저분한 곳’인가 보다. 사실이 그렇다. 책벌레도 있고 먼지도 수북하니까. 서재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와도 최소한 열흘은 지나야 모녀는 겨우 알아차릴 정도다.
워낙 집콕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우연찮게 딸아이가 서재를 방문했다. 찬찬히 둘러보더니 새 노트북과 블루투스 키보드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과소비에 대한 훈계가 20분간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책장에서 관심이 가는 책을 발견했다. 대뜸 뽑아간다. 아마도 딸아이가 내 서재에서 책을 뽑아 가서 읽겠다고 한 첫 책이다. 감사하고 따뜻하고 뿌듯한 일이다. 딸아이와 내가 같은 책을 좋아하고 읽는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그 책은 바로 <박찬욱의 몽타주 오마주 세트>다. 딸아이가 그 책을 한 눈에 좋아하게 된 이유를 대충 알겠다. 대학 선배가 쓴 책이며 미디어를 전공하는 딸아이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에 나온 책인데 출간하자 마자 샀었다. 기억하기로는 박찬욱의 오마주가 절판 되었는데 비싼 값으로 중고로 거래되다가 마침내 재출간되었었다. 먼지를 닦아주니까 새 책처럼 반짝거린다. 그러니까 딸아이가 아침마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떼를 쓰고 엉엉 울며 놀이방에 다닐 때 산책이다.
딸아이가 비운 책장의 공간을 다른 책으로 채울까 생각하다가 그냥 비워두기로 했다. 저 빈 공간을 보면 딸아이가 생각나겠고 그때마다 행복할 것이다.
딸아이에게 자전거를 처음 가르친 날과 장소 그리고 그날의 날씨가 생생하다. 딸아이가 남겨준 책장의 빈 자리도 나에게 큰 추억을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