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삶과 전설 1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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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러니까 읽고 난 결과 제목은 나에겐 이런 뜻이 되었다. ;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너희의 말이 아닌 우리의 말이 필요하다.


작년 <녹색평론>에서 다룬 사파티스타에 대한 글에 의하면 ;

마르코스가 정글에 도착하여

“봉기하라!”고 말했을때 원주민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물러가라. 우리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우리의 땅은 당신들이 말하는 생산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트랙터 공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말에 귀기울여 달라는 것이며,

당신들 같은 대도시의 배운 사람들이 우리더러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당신들의 변증법은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좋다. 언제 유용하게 쓰일지 모르니까.“

젊은 혁명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웠는데 예를 들면,

민중 민주주의, 전통, 토지 경작, 자연과의 친연성, 오래된 토착적 세계관에 대해 배웠고

이런 것들은 현대세계의 경직된 정치적 용어로는 분류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명징성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의 저 주장은 무척이나 독특하고 자신감넘쳐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그러니 마르코스도 그들에게 홀딱 반해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웃음)


자주 하는 얘기지만 대부분의 논픽션에 흥미를 잃은지 꽤 되었고 그건 논픽션이 어떤 기술적인 면외에는 이제 내게 그다지 많은 감동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픽션을 대하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것은 kbs1 tv에서 방송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였다. 당시까지 내가 접해왔던 무엇에서도 나는 그같은 감정을 경험해본적이 없었다. 안타깝고 모골이 송연한 느낌과 감동, 불타오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굳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지를 느꼈다.

이후 나는 나를 포함하여 한 개체의 내면에 관한 것들환희, 불안, 고독, 우울, 근면, 성실,..., 당시 나는 그게-내면을 들여다 보고 분석하는게 매우 지루해져있었다. 지칠정도로 끝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었고 또 자신이 특별하다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주체적인 것들과 실천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이 30, 40세가 넘어도 자신의 내면에 과도하게 침잠해 있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보다는 원래 불완전하고 끝까지 불완전할)내자신이 어떻게 생긴 환경에서 사회적 동물이 되어가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나의 내부에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좀 더 명확히 알게 된 계기가 그 다큐멘터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외부의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나는 많은 놀라움과 분노와 사라질것 처럼 너무 적은 희망과 그럼에도 식을줄 모르는 순수하고 꼿꼿한 열정이 세상에 널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대부분 고통스러웠지만 고통 때문에 등돌려 버리는 경우가 생기지 않게 하는 강력한 힘이 나를 잡아 끌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중부아메리카에서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자신들의 말을 해오고 있는 사파티스타 운동이었다.

배달되어온 제법 두꺼운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한국이 아닌 타국의 비극을 전하고 있지만, 글자 그대로만 보고서 사파티스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갖는 정도로 그치는 것은 곤란하다. 멕시코 사회에서 일어난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봐서는 언뜻 달라보이지만 저변에 깔린 부정의한 기운은 보편적으로 바로 여기에서도 스물스물 세력을 뻗쳐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객체의 내면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올바른 태도와 생각정직, 신뢰, 친절, 용기, 관용, 사랑,...)이 악한것들을 치료하고 인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려는 고민은 당장은 숭고하다고 생각되어질지 모르나 잊으면 안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문제는 그런 고민과 실천이 사회에서 존중받고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냐는 것이다.

지금같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10억 만들기등 돈버는 법에 관한 책들이 불티나게 출판되고 팔리는 분위기라면 과연 그 숭고한 생각과 실천들이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만일 이 사회가 속물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한다면 그런 숭고한 정신과 실천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부정적인 사회에 굴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낱 생산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사람의 가치, 파괴되어 자본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신세로 몰린 생태계, 기득권층이 다루기 편리하게 통합되고 단일화되어 가는 문화....

사파티스타는 단지 땅의 소유권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만이 아님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투쟁이 다른 투쟁들과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대세계의 경직된 정치적 용어로는 분류가 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명징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투쟁의 목적이다. 우주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지구는 그러나 매우 크고 다양하다. 이런 세계에서 어떤 문제의 해결방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놓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함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방법, 즉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그 효과를 인정받은 방법은 이미 과거이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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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천우학 범우 사르비아 총서 505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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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유수처럼 흘러간다.

아름다운 풍경(근데 정말 아름다웠나), 평범한 행동들과 평범한 대사들,

그러나 뭔가 개운치 않게 걷히지 않는 안개...

나는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그 풍경과 그 행동과 그 말과 그 묘사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보여주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라는

책하고는 전혀 관련없는 고민만을 [설국]은 나에게 던져주었을 뿐이다.

리뷰도 별점도 나는 결정할 수가 없다.

슬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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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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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희망이 끔찍한 걸로 변하는 순간은

희망이 미래의 뒷문을 삐끔 열고 현재라는 좁은 방에 들어섰을 때이다.

그리고 그 순간 희망이라는 것은 사라진다.

그것이 미래에 위치해있지 않은 이상 이미 희망이라고 명명되어 질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망이 끔찍하다니 그리고 구차하다니...

작가를 믿을 수 없고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의심스럽다.


책의 줄거리는 봉순이 언니의 순탄치 못한 일대기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자체는 왠지 별 감흥이 없다.

사람의 일생이란 어느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역경과 어려움을 경험하며

누가 누구보다 덜하고 못하고는 측정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의 혹은 여러분의 아픔과 고뇌와 역경을 믿는다. 그러나 나의 것을 내 스스로가 비웃거나 무시하며 살기 때문에 타인의 그것들에도 위로하거나 동정하고 싶지 않다. 난 단지 여러분의 “감정”-아픔을 믿을 뿐이다.)

즉 어떤이의 불행한 이야기라는 줄거리는 흔한 이야기이다.

그럼 이 흔한 이야기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과 독자가 받는 정서와 감흥이 무엇일까.

나는 책 중간정도에서

봉순이 언니는 바보네... 라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 봉순이라는 이름이 병신이란 단어를 유추케하는 의도적 작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의심한다 - 작가는 자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없으며 그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어떤 진실같은것도 없을 거라는....

봉순이 언니가 세탁소 사내와 헤어져 중절 수술을 했을때

주인공은 그녀와의 조화가 깨어진 것-타인이 되었음을 느꼈다고 했지만

주인공은 봉순이 언니에게서 한솥밥을 먹는 식솔로서의 물리적 친밀감을 느꼈을지언정

처음부터 마지막 지하철 이별장면까지 애정이나 연대감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주인공 짱아가 영민한 꼬맹이 설정이라는 자체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봉순이 언니라는 캐릭터가 마지막에서 품었을 희망은

(작가가 말하거나 혹은 독자들이 과잉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희망과는 다른 아주 단순한 종류의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짱아는 자신에게로 향한 봉순이 언니의 그것을 끔찍하고 구차하게 느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소설이 “희망에 대한 해석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남는게 없는, 말로 떠들어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게 자연스러운 수다거리를

종이에 옮겼을 뿐인 것이다.

인생 철학 혹은 문장의 독창성이나 표현의 참신함 같은 것도 맛볼 수 없었던 이 소설은

내가 아끼는 동생으로부터 선물받은게 아니라면 몇장 읽지도 않고 덮어 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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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무얼 보고 이걸 느낌표 도서로 선정한 건지 모르겠어요-_-;;
 
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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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작년 월드컵에서 4강을 했을때는 놀라움때문에 관심을 가졌었다.
히딩크 감독(역시 관심없어서 여전히 성만 알지 이름도 모른다.)에 대한 언론의 평가중 가장 내 눈에 띄는 것은,
"학연과 지연등에 얽매이지 않고 실력으로만 출전 선수를 선발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한국 스포츠계가 어땠을지 짐작이 되는 저런 멘트를,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리가 당연한듯 방송해대는 한국언론의 뻔뻔스러움과 무신경에 대해선 두손두발 다 들었다.)
여하간에 , 박노자의 이 책이 주목을 끄는 요소는 사실 그 문체, 내용, 한국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함 보다는
어떤 특정한 사고방식, 의견과 생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저자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배경을, 내 입장에선 두 가지 정도로 본다.
하나는, 진실과 불의를 마음과 몸으로 느낄 줄 아는 저자의 도덕과 양심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가 한국에 어떤 연고나 지연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홍세화씨는 서평에서 "이방인의 눈을 가졌으나.."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 문장에 피식하고 웃었다.
이방인의 눈을 가져야만 한국 사회의 황당함을 보고 깨닫고 캐내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그런 인물은 많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과거의 군부독재하에서야 목숨부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내키지 않는 너그러움으로 봐주더라도) 대통령을 국민의 직접투표로 뽑는 1990년대 이후에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외침과 실천을 대할 수 있는 장면은 별로 없었다.
저자는 "한국을 사랑하지만 떠나야 한다는.."것을 고백하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저 말에 무척 동감이 갔다. 그리고 저자는 한국국적을 취득한 채 노르웨이로 갔다. 그 역시 아무런 연고가 한국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거나 말리는데 대부분 [연고]의 이유를 댔다. 정말 고루하고 갑갑하다. 그 숨막힘은,
이 책에서 지적한 모든 전근대적 체제가, 이 빌어먹을 놈의 단일민족 국가에서는 전복될 가능성이 너무 요원하다는 절망만 내 안에서 더 커져가게 할 뿐이었다.
살기 좋은 사회는, 구성원 하나하나의 마음, 머리, 행동이 만들어 나갈수 있다고 본다.
체제나 제도는 그 구성원들의 결정과 실천을 돕는 수단이나 전략일뿐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추스릴 수 있는, 그리하여 자율적이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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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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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이 진지하게 쓴글을 접할수 있는 기회는 같은 학급 친구간에도 하늘에 별따기.
이러는 와중 다른 친구의 글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이 때 받은 충격으로 생전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경외로 바뀌면서 저 너머 기억의 다락방으로 쳐박혀 평생 먼지만 뒤집어 쓸 상황으로 돌변. ㅠ.ㅠ
그 친구의 글은 너무 독창적이고 아름다왔던 것이다.
그리고 내 글들은 너무 건조하여 어떠한 감성도 묻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내 글에 대한 교사들의 칭찬은 구라였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스며드는 배신감.
이후 10대를 지나 20대에는 문학이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당연히 쓰는것도...
문학은 너무 어수선하다? 사람에 대해 여전히 할 얘기들이 그리 많단 말인가.
하늘아래 더이상 새로운게 있겠느냐.
이제서야 스스로 그 이유를 밝혀냈는데, 난 너무 건조해졌던 것이다.
그런 내가 다시 찾아 읽기 시작한 문학의 장르는 "앙티 로망"
(뭐 그렇다고 이 책외에 다른 앙티 로망은 읽은게 없다.)
속물적 근성으로 피터 정을 동경하면서 그가 좋아한다는 작품을 그의 소개를 읽고 구입해버린 것이다.
이 작품과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책 자체에 소개되어 있는 역자 민희식 교수의 해석이 전부이다.
책의 말미로 가면서 느끼는 새로움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전율이다.
문학을 읽으면서 그렇게나 지겨워하던 작가와 인물의 너저분한 주절거림은 철저히 배재되고
오로지 행위와 시간과 대화만이 사건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오랫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읽고 싶었던 글이 아니던가.
내 건조함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글에 대한 희망을 준다.
장르 "앙티 로망"이 가리키는대로 이것은 문학이 아니라
형사들이 쓰는 보고서에 그칠수도 있지만, 거기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것은 천만개나 되는 독자 각각의 개성이다.
혹은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
고루한 인간 정서를 표현한 흔한 수사에 질린 독자들은 한번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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