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수정 옮김 / 더클래식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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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이 적..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간은 객관적 존재로서는 한낱 미물이며 동시에 주체적으로는 위대한 생명체라는 점이다.

인간의 모순된 여러가지 특성에 대한 표현들이 경이롭게 어우러져 있어서

이 소설이 다소 마초적인데가 있을지라도 좋은 작품이라는 것에 수긍이 된다.

 '과연 인간들이 저 고기를 먹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아니야물론 자격이 없어저렇게도 당당하고위엄 있는 저 놈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거야.'

"함께 놀고 장난치고샘날 정도로 사랑도 하지저 녀석들은 날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형제나 마찬가지야."

 노인은 고독과 불안의 기나긴 시간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현실을 인정하며,

자신 외의 나머지 자연에 대하여 경외와 동시에 극복의 의지를 내비치며 갈등한다.

갈등은 풀렸다 묶였다를 반복하며 노인을 힘들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지는 아름답게 결정화되어 간다.

작품에서는 자연도 노인도 모두 숭고함 그 자체이다.

자연은 존재 자체로 숭고하며노인의 경우는 갈등 속에서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어하여 불안 속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라는 유한의 존재는 불안과 공포 앞에서는 초연하기가 매우 어렵다.

불안과 고독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대상(바다 속의 커다란 어떤 고기)에 대한 분석을 침착하게 할 수 있는

노인의 초연함을 뒷받침하는 것은 평생 어부로 살아온 노련함이었겠다.

그럼에도 노인이 처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열악하여 침착하고 초연하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빈약하고 불균형한 영양 섭취상처와 피로 그리고 외로움 속에서도 고기와의 사투를 빨리 끝내려고 조바심내지 않고 인내한다.

싸움을 빨리 끝내고픈 성급한 마음에 고기를 험하고 가혹하게 다루면 엄청난 힘의 고기가 격렬하게 반응하여 노인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오로지 때를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는 상황임을 노인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이 장면은 우리 인간들이 탐욕의 성취나 고통의 해결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을 자제해야하는 근원적 이유를 제시한다.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다뤄지지 않으며멋대로의 취급은 자신에게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노인의 갈등은 자신의 직업인 고기를 잡고 결과적으로 죽여야만 하는 것에 대한 성찰의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다른 포식자들처럼 주변의 것을 파괴하여 생명을 이어갈 수 뿐이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파괴행위를 정당하게 여겨 몰염치하기 보다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복합적 숙고의 과정을 신의 시험처럼 거쳐야 하며

그 결과자신이 파괴한 존재들을 경외하며 겸손한 답을 얻어야 천박한 생명체로 그치지 않고 노인처럼 홀로라도 존엄해질 수 있다

생각하고 철학을 할 줄 안다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고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고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노인과 바다외에  생태주의 작품 몇 개  이면서 매우 좋아하는 작품들

마지막 유니콘 미국 애니메이션 밴드 아메리카의 the Last Unicorn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거신병이 타노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독일 영화 엠마는 착한 타노스?

청의 6 종말을 획책한 타노스 캐릭터의 박사 등장

환경전사 젠타포스 못 봤으나 재미있어 할 것 같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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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 시대를 앞서간 천재 버트런드 러셀의 비판적 세상 읽기 아포리아 5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석봉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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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책을 읽으면 쓸데없는 텍스트는 하나도 없고 거의 대부분 줄을 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매우 잘 읽힌다, 책 읽을 맛이 난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철학의 유용성은 우리가 정해진 시간 내에 과학으로 확인되거나 반박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추측 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이 밝혀 낸 것에 너무 감명을 받아 과학이 밝혀 내지 못한 것을 잊어버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과학이 밝혀 낸 것보다 밝혀 내지 못한 것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아서 과학이 이뤄낸 성과를 과소평가 한다. 과학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만과 확신에 차서 과학 연구에 필요한 명확성이 결여 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비난 한다. 그들은 실용적인 문제에서 기술이 지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최신 기술로 서로를 죽이는 것이 낡은 방법으로 서로를 살리는 것보다 더 진보적이고 더 낫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과학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고대에 해로운 미신으로 되돌아 가며, 과학 기술이 널리 사용된다면 인간 행복이 증진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두 가지 태도 모두 개탄스럽다. 과학 지식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올바른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날씨가 궂은 날 아이들과 소풍을 가려고 한다면 아이들은 날씨가 좋을지 나쁠지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할 테고, 만약 여러분이 확실히 대답 하지 못하면 실망 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든 후에도 약속의 땅으로 이끄는 사람들에게 같은 종류의 확신을 요구한다."

"증거가 없다면 판단을 유보하도록 훈련 받지 않는 한, 인간은 독선적인 예언자들의 의해 잘못된 길로 이끌릴 수도 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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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 일반판 (1disc)
토드 필립스 감독, 호아킨 피닉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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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극장 관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보아야만 언급을 할 수 있기에 '내키지 않아도' 상영 기간에 관람한 두 작품은 [나랏말싸미]와 [조커]이다. 


[나랏말싸미]는 불교계 자본으로 불교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비난 받았는데, 

내가 보기에 감독은 불교계에 잠입한 X맨이며 자신이 비난받는 것을 억울해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감독이 신미창제설을 진지하게 주장하고 싶었다기엔, 

신미와 승려들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아이디어-마치 4차원으로의 모험을 꿈꾸는 초딩 5학년이 만들어 낼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장면들을 한글 창제의 과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가야금 소리에 착안한 가획의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등의 장면들 ㅡ,.ㅡ). 

영화는 세종을 슬픈 바보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미와 승려들을 바보개그맨으로 만들어 놓았더라. 


따라서 진정한 문제작은 [조커]라고 할 수 있겠다.  

[조커]가 서구에서의 반응과 달리 한국 관람객들에게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다지 큰 충격은 아니었던 이유는, 

조커의 문제는 진보적인 인사들을 물론 포함하는 WASP들의 가치관을 흔드는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민족구성원이 비교적 단일하고 집단주의 문화로써 상황귀인에 익숙하므로 아서 플렉이 반사회적 인물이 된 결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2020년 현재 미국이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백인 상류층이 ‘정치적 올바름’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인종적이거나 계급적 문제들이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되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들이며 이 문제들 관련 갈등이 진행중이라는 것의 

반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아서 플렉은 분명히 범죄자다. 

아서 플렉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하는 것이 서구문화인들의 중요한 가치관이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서구문화에서 개인은 자기 행동의 분명한 주체이며 행동에 대한 책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경구가 아동과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코믹스 [스파이더맨]에 교훈처럼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서의 범죄행위를 놓고 미국인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상황귀인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들도, 영화에서 아서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된 결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서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잭 니컬슨 조커와 히스 레저 조커를 단죄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매우 지당한 것이었다. 

잭 니컬슨은 폭력을 유희로 삼는 전통적이며 종교적인 관점에서 형상화된 악이었고, 

히스 레저는 반사회적인 소시오패스였기 때문이다(영화관객들이 히스 레저 조커를 매력적으로 느낀 이유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선망이라는 인지상정 때문이다. 소시오패스 특성을 가진 히스 레저 조커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나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종교적 악이나 반사회적 악하고는 다르다. 

우리는 아서 플렉의 과거를 보면서 그의 현재를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이것은 아서 플렉에 대한 용서나 처벌 여부와는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이 ‘주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에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 존재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가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그들 존재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난감한 상황이다. 


영화 [조커]는 그들의 문화에서 큰 문제작이 아닐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OWS시위의 배경과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된 배경이 많이 닮아있다. 

WASP들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경제문제(분배와 복지)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않고,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도구로 99%의 심기를 건들지 않도록 조심하여 폭력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삐딱한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한국의 평론가를 포함한 대다수 관객들이 [조커]를 논란의 작품으로 여기는 데에는, 

우리가 보기에 별로 혼란스럽지 않은 이 영화를 서구인들의 도식에 동조되어 동화하지 못하고, 

조절을 통해 자신들 고유의 도식을 바꾸려 하다보니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족 ===========================

이 리뷰에 한정하여, 

동조, 동화, 조절, 귀인이라는 용어는 심리학의 정의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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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는 역사가 있고 그것은 우리 육체에 흔적을 남긴다. 소뿔에 들이받힌 투우사의 상처는 일종의 지식을 나타낸다. 출산 이후 생긴 튼 살은 인간의 몸이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들을 상기시킨다. 또한 ‘눈 밖에 났다‘, ‘앓던 이가 빠졌다‘, ‘손을 씻었다‘, ‘입이 무겁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육체는 은유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수학자 아이작 밀너가 1794년에 남긴 말처럼, 계몽주의 시대의 걱정거리가 "높은 자리에 있는 위대한 자들이 자신들에게 영혼이 있음을 잊은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들에게 몸이 있음을 잊어버린 것이다.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신체적 한계에서 벗어나 자아를 표현하고 자신을 추적·수량화할 다양한 방법(오늘 나는 X걸음을 걸었다!)을 갖게 되면서 우리는 신체를 무시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아니 최소한 자신의 신체적 특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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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Netflix 시리즈



매튜 매커너히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도 재미 있었지만 매튜의 연기에도 매료 되었다.
여하간에 주말을 게으르게 보내고 있는 나는 머리가 멍해서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드라마를 보려고 Netflix를 뒤졌다. 동명의 시리즈물이 있었다. 평가도 좋은 것으로 안내되어 있기에 시즌1 에피소드 몇 편을 시청을 한 결과 재미는 있었지만 유치한 부분이 많다. 
이 드라마의 장르는 일본식 만화나 게임 분류에 따르면 남자 변호사의 하렘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 주변에 여러 아름다운 여자들이 있고 이 여자들이 주인공 변호사를 돕는 좋은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시마과장의 컨셉을 표절한 범죄수사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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