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인간화-가장 극심한-수준의 대상화의 한 유형이며, 대상화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비인간화의 결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 P36
대부분의 아동은 타인의 내면세계를 협소하게만 인식하다보니 공감 능력도 제한적이며, 이렇듯 미숙한 감수성을 성장시키려면 수년 동안의 지속적인 조언과 모범 및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실제로 대상화의 주체나 나르시시스트처럼행동하고 있어도 그들이 대상화를 하고 있다거나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보면 타인을 대상화-타인의 내면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하는 행위는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온당히 나타나는 감정적 미성숙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자기중심성과 공감 능력의 결여가 성인기까지 이어질 경우 가장 흔하게는 자기애성 성격장애(8장에서 다룬다)로 발현되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격이 나타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수행해야 할 주요 과업 중 하나는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마음을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상태에 불과하겠지만) 초월하는 역량을 함양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열중하고, 타인의 내적 경험이 갖는 타당성을 더욱 충실히 인식하는 것에 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온전히 살아 있는 더욱 온전한 인간이 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마태복음 16장 25절)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준다. 성인이 된 누군가가 다른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이와 같은 역량을 합리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도덕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P47
비인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는 상호연관된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작용한다. (1)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인간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인, 즉 해당 개인이나 집단이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가정과 (2)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확신이다. 다시 말해서 비인간화가 발생하려면 비인간화를 수행하는 주체가 반드시 두 가지 정신적 행위에 관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의 인간성을 부인하고 이와 더불어 그 사람이 사실은 인간 이하의 어떤 것이라고 확신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와 같은 나치의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들은 단순한 비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한-쥐나 잇과 곤충 같은-해충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르완다에서 집단학살을 벌인 후투족의 시각에서 투치족은 단순한 비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퀴벌레였다. - P62
이렇게 타인에 대한 비인간적인 묘사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덕적 잣대-영국 역사학자 조너선 글러버가 ‘도덕적 자원‘이라고 일컬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 품위, 존중, 연민 등-는 왜곡되고 방향성을 잃게 된다. 또한 자기(self)의 심리적 경계 자체가 무너지고 그상태로 굳어지면서 협소해진 범위 안에 속하지 못하게 된 이들은 고려할 가치도,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인식이 촉진된다. 비인간화가 지니는 이처럼 음산한 측면은 비인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도덕적으로 비난 받았을 만한 행동을 정당화 하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 불리고 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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