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우리 시대의 질문 2
윤보라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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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책과 연관해서 감자캐듯이 줄줄이 이어져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리스 신화가 그랬고, 자본론이 그랬다. 이번에 페미니즘 관련한 책들도 그러하다.

 

처음에 '정희진 처럼 읽기'를 통해 정희진이라는 작가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에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과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언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밑줄 그으며 한 번 읽고, 두 번쩨는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적으며 읽었다. 서평을 쓰고 싶지만 좀 더 읽고 깊이 공부해야 할 책 같아서 서평 쓸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읽고, '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고 한다'를 읽고, 이번에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를 읽게 되었다. 공저자 중에 정희진이라는 이름의 영향이 크다.

 

이 책에은 '여성 혐오'라는 제목이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혐오'의 문제에 대해 다룬다. 가장 큰 맥락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혐오이고, 그외 여성들 또한 트렌스젠더나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혐오'가 어떻게 형성되고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언던 두 저자는 '임옥희'와 '정희진'이다. 임옥희는 '주제화. 호러, 재마법화'라는 글에서 다양한 제재들을 언급하며 여성에 대한 혐오의 근원을 탐색한다. 그리스 신화의 '이아손'이야기에서 '메데이아'를 통한 외부인, 외국인, 여성에 대한 혐오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혐오가 좌절된 쾌락의 폭력적 드러남이라는 언급또한. 쾌락이 좌절됨으로써 혐오가 된다는 것. 사랑이 좌절되면 결국 혐오의 감정이 된다(-p81)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참 슬펐다.

 

그리고 정희진의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에서는 기존의 '페미니증의 도전'에서 보았던 '여성에게는 여성을 표현할 언어가 있는가?'라는 문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회적 약속이라고 믿는 언어는 서구, 백인, 중산층. 남성, 이성애자, 젊은 사람, 비장애인의 언어(-p106)'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위의 계층에 속한다 생각하고 서술하면서도 그것을 꺠닫지 못한다는 것. 언어를 전공하고 가르치면서도 언어의 의미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깊이 사유하지 않은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외에도 남성들의 역차별에 대한 연세대학교 논지당 사건을 바탕으로 한 '른 목소리로, 여성 외의 성소수자들, 트렌스젠더, LGBT 등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사회전반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작용하고 있는가를 서술한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등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일반 학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그저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고, 사랑하며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의 언어로서 기득권의 가치관을 서술하고 있는 교과서로는 지금의 '혐오'를 그대로 재생산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언론과 미디어들과 학교에서 부터 이러한 것들을 이슈화하고, 끊임없이 논의하고 토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We are one, but we are not same'이 뜻하는 바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쁜 여자와` 착한 여자`라는 판본을 만들어내고 각 사회 주체들을 배치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첨예한 젠더 정치가 된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나쁜 여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여성을 참조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이다. -p5

혐오 발언 안에는 주목을 통해 자신이 행위 주체임을 인정 받으려는 `주체화의 열정`이 들어 있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에서 주목받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혐오는 격렬한 열정 중 하나다. -p56

이처럼 인간의 조건을 구성하는 것들을 여성성과 결부시킴으로써 남성 주체의 불멸성, 초월성,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안의 타자성을 억압하는 것, 그것이 가부장적 사회를 유지하는 젠더의 정치경제다. -p70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데 가장 위험한 두 가지 도덕 감정이 혐오와 수치심이다. -p73

니체와 프로이트는 평등한 것을 정의로운 것으로 보는 발상의 이면에는 시샘(선망)의 감정이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이으며 그것을 즐기는 타자의 쾌락에 대한 시샘이다. 모두가 즐길 수 없다면 즐기는 사람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서로 평등하게`라는 것에는 나보다 더 많은 쾌락을 차지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경쟁의식과 시샘과 질투가 깔려 있다. -p80

가부장적인 국가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성적 은유에 바탕을 둔 `혐오의 합창`을 생산해왔다. 여성의 자리를 모성으로 간주해 숭배하다가도 여차하면 혐오감을 부추기는 국가를 길들여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p87

깊은 혐오는 깊은 공포와 매혹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p87

민주주의는 타자 없는 사회를 말한다. 주체와 대상의 구분이 없는 사회. - 자신의 형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다. 우리는 타자the others와 타인different person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p96

문제는 이분법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정하는 권력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차이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p100

성별이 당연하기 때문에 차이나 차별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성sex를 기준으로 구별gender해야만 가부장제 사회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p101

"인간에게는 명명define하고 명명당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인식은 기본적으로 투사다. 아는 과정에는 자기 의견, 희망, 욕구가 반영된다. 아전인수는 `아전인수식 해석`의 문제라기보다 언어의 본질이다. 모든 사물에 관한 정의에는 그 대상에 대한 이해관계와 원망이 포함되어 있다. 말을 만드는 사람의 경험이 곧 말을 구성한다. -p101

언어는 곧 철학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그 생각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가은 무엇으로 생각을 하는가? 생각이라는 노동은 언어라는 경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언어(개념) 없는 생각은 불가능하다. -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구조와의 관계를 사고하지 않는 언어는 폭력과 폭력적인 체제를 재생산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며, 폭력이란 생각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동시에 언어를 생산하며 언어에 의해 형성된다. -p102

표현의 자유는 모든 이에게 동등한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인것은 가장 중요한 정치학이다. 인종, 젠더, 계급 간의 위계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표현의 자유는 혐오 범죄일 뿐이다. -p104

민주주의는 완성이 아니라 추구의 과정이다. -p105

언어는 자기 탐구에서 시작된 행위다. 앎/삶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기 탐구다. 그것이 시작이자 끝, 전부다. -p113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해결하기 어려운 권력은 `몰라도 되는 권력`이다. 최근에 나온 헤릴린 루소의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마라]에는 "무지한 사람들과의 달갑지 않은 조우"라는 장이 있다. 나도 매일 듣는 레퍼토리다. 무지clueless는 지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영어의 `클루`는 단서, 실마리이므로 클루가 없는 인간은 `게념이 없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들은 대화는커녕 접촉에서부터 폭력을 발산하는 사람들이다. 즉 본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분들 말이다. 권력이 부여한 무지는 국가도 구할 수 없다. 그들을 밟아줄 (상상속의) 코끼리가 필요할 뿐이다. -p114

감정은 여전히 이성적이지 못한 비합리적 행동, 본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감정이 사회적 삶에 관한 것, 사회문화적 구성이라는 논의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상당히 축적되었다. - 감정은 개별 주체에게서 기원하거나 그것으로 수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흐메드는 감정의 사회성을 제안하며 감정이 대상 및 타자의 접촉을 통해 어떻게 몸의 표면과 경계를 형상하는지를 질문한다. 이 작업을 위해 아흐메드는 감정을 논의하는 질무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데. "감정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감정은 무엇을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감정이 몸과 사회에 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감정의 작용을 통해 형상되는 모습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 아흐메드의 문제의식이다. -p 176

감정은 단순히 사회문화적 현상이 아니라 `내`가 세상 혹은 타인과 접촉하는 방식이자 `내`가 세상과 조우할 때 받는 인상이자 형상이다. -p176

혐오라는 괴물이 노리는 것은 단지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또 다른 소수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길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혐오가 파괴하는 누군가의 존엄은 나의 존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함꼐 답해야 할 때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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