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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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 주로 작가 위주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신문이나 주간지에 소개된 책소개나 리뷰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고미숙의 이번 책은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글 덕분이기도 하고, 고미숙이라는 저자 덕분이기도 했다. 이번 책도 참 재미있게 읽었지만 무엇보다 큰 소득은 책을 통해 읽어야 할 책들을 다시 소개 받았기 때문이다.


장정일, 정여울, 고미숙, 강신주 등 몇몇의 저자들은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맛깔나게 소개한 책들을 펴낸다. 그 책들이 때로는 내게 지도처럼 작용해서 재미난 책들을 찾아가게 해준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오승은의 '서유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니코스 카잔차기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아주 재미나게 소개되어 있다. 한 책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읽지 않고서는 못배길 정도였다. 덕분에 집에 묵혀 두었던 ''열하일기'를 꺼내 들어 읽었고, 다른 책들도 어디 출판사 책이 좋나 하고 살펴보게 되었다. 


참 재미난 것이 위의 책들 모두 '여행'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재미와 교훈을 준다는 것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북벌'을 주장하던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북학'을 해야 한다고 깨우치게 된 연암의 인식의 변화가,오승은의 '서유기'에서는 여행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결국에서는 구원과 구법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와 산초를 통해 풍자하는 현실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교육과 윤리, 제도, 법 등에서 자유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는 과정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조르바라는 인물을 통한 만남의 충격과 깨달음의 과정이,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다양한 시점을 통한 인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를 맛볼 수 있었다. 


원작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설서(?)를 읽은 것이기에 원작을 읽을 때 보이지 않던 것,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스포일러가 담겼다고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덕분에 도서 구입 목록에 몇 권의 책이 더 추가 되었다. 


그리고 책 속의 길 위의 재미를 맛보았으니, 책 밖의 길 위에 서는 재미도 맛보고 싶다. 이 책 읽는 중에 신혼여행을 제외한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정말 가보고 싶었던 일본이었는데 짧은 시간에 패키지 여행으로 친정 엄마와 아들을 데리고 간 여행이라 마음껏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매일 보던 것과 다른 것, 다른 곳을 경험하니 생각이 조금 더 확장되는 느낌이다. 앞으로 다시 직장생활 하느라 해외여행이 쉽지 않겠지만 그리고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말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 


길 위에 서는 재미를 맛보고 싶은 자, 이 책을 읽으라. 

근대적 이분법이 해체되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혜는 다름 아닌 자연과의 소통이다. -p19

상이한 방향의 힘들이 각축하고 서로 다른 윤리들이 좌충우돌하는 것, 무엇이든 실험할 수 있고 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유목이다. 유목은 유랑이나 편력이 아니다. 관광이나 레저는 더더욱 아니다. 어디에 있건 그 시공간을 전혀 다르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유목민에겐 돌아갈 고향도, 도달해야 할 종착지도 없다. 오직 자신이 서 있는 그 시공간이 삶의 전부다. 하여 온전히 누리고 즐기되 시절이 바뀌면 훌훌 털고 떠나간다. 비움과 채움, 머묾과 떠남의 이중주! -p25

홀로 갈 수 있는 자만이 함꼐 갈 수 있다는 것, 고독이야말로 친교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p44

연암의 시선에서 보자면, 인생이란 `길 없는 대지 위를 걸어가는 여행이다.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길이 되는 그런 여행! -p51

중요한 건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과 맺는 관계에 있다. -p66

결핍의 재생산이 윤회의 수레바퀴다. 그 수레바퀴를 박차고 나올 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 -p87

법이 감시와 처벌을 통해 작동하고, 도덕이 인정욕망의 발로라면 윤리는 철저히 `자기배려`에 기초한다. 즉, 자신의 내적 명령이 핵심인 것. -p111

사람들은 사랑과 소유를 혼동한다. 하지만 소유는 사랑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사랑과 소유는 공존하기 어렵다. 사랑하되 소유하지 않기. 그게 가능해?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사랑과 소유를 혼동한 채 미쳐버리는 것, 아니면 사랑과 소유를 동시에 포기하는 것. - 미치거나 자유롭거나! -p148

`보면 알게 된다`가 아니라 `아는 대로 본다`는 경지에 도달한 것. 가히 전도망상의 진수다. - 비상과 추락은 한 쌍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잇다고 했다. 뒤집으면 비상을 꿈꾸는 자만이 추락하게 된다. 높이 날아오르거나 아니면 깊이 침몰하거나, 그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 것이 광기다. 그래서 한 번도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한다. 삶은 비상도 추락도 아니고, 걷는 것이다. 한 걸음씩 앞을 향해 걷는 것, 그것이 삶이요 길이다. -p161

돈키호테가 광인이 되고, 산초가 바보가 된 건 화법 자체가 아니라 그 화법이 놓인 배치에서 비롯한다. 광인과 바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 어떤 관계를 만나느냐에 따라 광인이 되고, 바보가 되는 법이다. -p184

언어는 권력이자 용법이고, 배치의 산물이다. -p189

규칙과 예법, 기도와 회게, 친절과 배려 등등에 짓눌려 헉으로선 "어찌나 서러운지 딱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엿다. 이것이 바로 미셸 푸코가 말한 근대 `규율권력`의 실상이다. 욕망과 신체이 곳곳을 세밀하게 터치하고 조작하는 `생체권력`말이다. 가족과 학교, 교회야말로 그런 권력이 작동하는 핵심 거쳐다. -p202

쾌락은 `생산이 멈춘 욕망`이다. 욕망이 창조와 생산의 라인을 벗어나는 순간 삶은 쾌락에 종속당한다. 조르바의 위대함은 욕망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되 결코 거기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p243

여자란 누군가가 자신을 욕망하기를 욕망하는 존재다. -p244

순간에 충실하라! 인류의 모든 멘코들이 전하는 메시지다. 삶에는 어제도 내일도 없다. 오직 `지금, 여기`가 있을 뿐! 이것은 쾌락주의나 향락주의가 아니다. 쾌락과 향락, 고통과 괴로움의 경계가 사라져야 비로소 가능한 경지다. -p250

핵심은 결국 자유다! 자유란 타인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도, 타인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 둘ㅇ르 모두 벗어나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수평적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왜? 그것만이 인간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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