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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크기는 오로지 그가 품고 있는 슬픔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크기에 다름 아닙니다. 슬픔이 정신 속에서만 자기를 발견하고 반추할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정신도 오직 고통을 통해서만 깊어지고 넓어지며 또한 위대해지는 것입니다. -p44
무릇 모든 것의 크기는 한계에 의해 규정됩니다. 어떤 것의 한계가 곧 그것의 테두리이며 이 테두리가 바로 어떤 것의 크기를 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체 없는 정신이 어떤 테두리가 있어서 그것의 크기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한계를 통해서입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장애물을 통해서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끝없이 자기를 확장하려 하면 할수록 보다 더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의지가 저항에 직면할 때 왜소한 정신은 그 저항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처럼 의지가 저항에 굴복하는 지점이 정신의 테두리요 한계입니다. 그러나 강건한 정신은 저항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앞의 저항을 초월해갑니다. 그리하여 장애물을 초월하는 정신은 바로 이 초월을 통해 자기의 크기를 부정적으로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 그런 정신은 자기가 어떤 장애물에 의해서도 한계 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자기의 광대무변한 크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중략>
오직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만이 정신의 크기의 표짓돌이 됩니다. 의지는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 앞에 설때 시험받습니다. 굴복하느냐 아니면 넘어가느냐. 굴복한다는 것은 장애물 앞에서 자기의 욕구를 꺾고 그것의 요구와 타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정신이 추구하는 가치들 가운데에는 어떤 장애물이 앞에 선다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강건한 정신은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정신은 끊임없이 장애물을 넘어감으로써 자기의 크기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p64~65
우리가 참된 의미에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언제나 사회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사는 나라의 법칙을 따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사회 내가 사는 나라의 법칙과 질서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나에게 강요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라야 한다면, 그때 나는 내 삶의 주인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전한 의미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가 나랏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와 나라의 법과 질서를 스스로 형성하고 다스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 자신이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입니다. 그리스인들의 자유는 단지 소극적인 자유로서 누구에 의해서도 억압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외적 강제로부터 멋어나 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치적 참여를 통하여 세상을 능동적으로 형성해나가는 것에 존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도 그리스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였습니다.즉 그들에게 있어서 개인의 자유는 종교적, 학문적 수양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p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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