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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이계삼 지음 / 녹색평론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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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열려 있는 '무위의 시간'이다. 흔히 교육의 중요한 하위요소로 인정하는 학습, 노동, 사색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무위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 구성하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구성되는 비율이 한 존재의 정신적 외양을 결정한다. -p27
저는 폭력의 근원을 먼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폭력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수많은 성현들이 거기에 답했고, 저 또한 그분들의 말씀을 붙잡아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폭력은 '무지'에서 옵니다. 개별 존재에 가해지는 구체적인 폭력은 개별 존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아이들 세대 전체에 가해지는 사회의 폭력 또한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집단적 몰각에서 옵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논리도 성립합니다. 폭력의 대칭어는 아마도 '비폭력'-사랑-이겠지요. 비폭력 혹은 사랑의 바탕은 그 대상에 대한 '앎'입니다. 잘 아는 존재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상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설사 폭력이 행사되더라도 거기에는 반성과 구원의 계기가 이미 내재해 있습니다. '자기가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p46
진정한 의미에서 교양이란 책을 많이 읽는 것, 논리적으로 우수한 글을 쓰는 것과 별 상관이 없다. 이 시대의 우수한 교양인은 이 타락한 말과 글의 지배에 더욱 깊이 감연된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살아있는 세계를 믿지 않고 말과 글을 존중하는 도착된 의식, 현실적인 쓸모밖에 볼 줄 모르는 유치한 계산속, 쓸데없는 엘리트의식으로 양 어깨가 빵빵한 가련한 허수아비가 될 가능성이 훨씬더 높다는 말이다. 교양이란, 실제적인 쓸모가 없고, 값없이 주어져야 하며, 그 값없음, 쓸모없음으로 제 쓸모를 찾는다. 교양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이 자신의 사회적 성취를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 되는 그 순간부터 교양은 타락한다. -p63
몰락이란, 사물의 기초에 도달하는 일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아스팔트 위에 내던져진 자신을 한탄하며 주저앉아 있을 때 청년은 그 아스팔트 위를 목발도 없이 뛰어다닌다. 아무것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음을, 결국 제 손으로 대지를 짚고 일어서야 함을, 몰락해본 사람은 안다. -p120
내가 바라보았던 정겨운 일상 속의 저 민중들과 지금 한미FTA를 지지하는 민중은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불을 보듯 뻔해 보이는 미래를 향해 한발 두발 다가가는 이 현실을 되돌려야 한다는 강파른 당위만이 남아있을 때 누구나 외롭고 아득하다. 그러나 어떻게 되든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바라보지만 말고, 직접 말을 걸어 호소하고, 투쟁해야 한다. 희망의 다른 근거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 속에서, '대동'의 세상을 만나고 싶다. -p238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울고 있는 그 사람은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울고 있는데,
나를 우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웃고 있는 그 사람은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웃고 있는데,
나는 웃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거닐고 있는 그 사람은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거닐고 있는데,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죽어가는 그 사람은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이 무거울 때> -p27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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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교육희망, 한겨레 신문 등을 통해 알게된 이계삼 선생님. 그의 작은 사진과 글만 보았을 때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이번 여름 밀양에서 받은 독서 연수에서 만난 이계삼 선생님은 내 생각과 다르게 푸근한 모습이었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다정다감하였다. 연수 뒷바라지를 위해 부산 떠는 모습을 보며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냉철한 글들을 썼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녹색평론에서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허승 선생님께 이야기했더니 냉큼 사준다 하신다. 덕분에 좋은 책 좋은 기분으로 받아 읽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책을 덮는 순간 눈물이 났다. 양심이 찔려서, 저분과 같이 열정적으로 살지 못하고, 아파하지 못해서, 언행일치 하지 못해서, 스스로의 가증을 견딜 수 없어서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힘들었다. 죽비같은 말들 잊지 않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