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인가 하는 책이 있다는 걸 본 것 같은데 지금 나에게 그 책이 필요할것 같다. 지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한바탕 떠들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책이 있다한들 어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책의 소개글과 출판사와 책의 목차를 보고 판단을 하는 것 뿐이다. 누가 책에 대해 비판을 하려거든 무조건 일독 먼저 하라고 한다면 정확히 말해 이 글은 책 제목과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 대한 비판이라는 말로 답을 하겠다.  물론 목차를 통해 책 내용에 대한 것도 기본은 알고 하는 소리기도 하고. 나름 다른 곳의 리뷰도 참조했다.   

 

1. 책 제목에 대하여 
'복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된지 한 참 되었고 내년 대선도 아마 '복지'가 화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는 만큼 그렇게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점을 노린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원제가 'While America Aged' 이고  이미 불거진 몇몇 미국 (사/공)기업의 연금 문제를 다룬 책인 반면, 우리나라의 복지 문제는 공교육과 저소득층,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고 있는 만큼 사실상 완전히 다른 분야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마치 이 책은 우리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처럼 예쁜(?) 화장을 하고 있다. 낚시질이라는 인상을 주기 충분하다. 경영경제분야 알라딘서평단의 5월 주목신간으로까지 추천된 페이퍼가 벌써 여럿인걸 보니 그 낚시는 성공한것 같다.
 물론 부제로 연금에 대한 이야기임을 밝히고 있긴하다. 하지만 이 또한 제목만 본 일반독자는 책에서 다루는 연금을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동일시하기 쉬운만큼 역시 나에게는 짜증이 나는 부제다. 
(우리가 기대하는 복지는 welfare이고 이 책이 말하는 복지는 pension, 즉 연금이다. 아마존의 33개 독자 리뷰중 welfare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2.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 대하여 
 짧지 않는 책소개글에서 책 내용에 대해 일부 다루고 있는데 그걸 읽어보면 책 제목이 낚시라는 걸 더 뚜렸하게 감지할수 있다.  우리로 치면 회사에서 직원에게 제공해주는 일명 '복리후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일괄로 '복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사기업이 아닌 도시재정문제도 나오기는 하지만 미국의 특성상 사기업의 문제와 구조는 같은 경우다.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복지(복리후생)가 재정문제를 가져왔다는 내용의 책인데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읽어볼만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정말로 '남의 나라'이야기일 뿐이다. 노조가입율이 10%도 안되는 나라, 퇴직하면 바로 삶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나라에서 웬 과잉복지문제를 갖다 붙이는 것인지....   다만 책의 내용(강성 노조, 과잉복리후생)에 가까운 노조가 하나 정도는 생각나긴 했다.  바로 현대자동차노조. 

 

3. 출판사에 대하여
한국경제신문사(이하 한경)에서 나온 읽을 만한 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닌것 같다. 내가 알기로 한경의 1대 대주주는 현대자동차다. 그리고 그 회사 노조는 강성이기로 유명하다. (고장난명이라고 그 회장이란 사람도 여러모로 싼티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사회봉사명령 수행한 적도 있고, 아들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회사 재산을 빼돌린 상속수법은 뭐 거의 업계 표준인듯)  그런데 그 회사 노조가 얼마전 노조원의 자녀에 대한 특채를 회사측에 요구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그 뒤로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장에 그 직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런 상황에, 노조때문에 망한 미국 자동차회사 이야기는 얼마나 딸랑딸랑, 딸랑이 소리가 나는 책인가!  회장님이 감동먹고 기업PR광고 넉넉히 하사하시는 모습이 떠오르는 걸 어쩌나.... 명색이 신문사지만 광고로 먹고 사는 회사니, 그것도 대주주 기분에 맞는 책이라 신나게 만들었으리라...

 

 이러저러한 이유로 책을 비판하긴 했지만 사실 그런 이유를 시시콜콜 들것도 없었다. 미국이 복지를 이야기하는 건 일본이 원전안전을 홍보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원서는 연금부담으로 망한 회사들 이야기니 죄가 없다. 그 책이 멀리 물 건너 와서 욕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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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1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절대적으로 페이퍼 쓰신 의도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책 자체는 훌륭하지만, 책 표지와 전혀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지요.
그때그때의 흥미거리에 맞추는 경우도 다반사구요.

귀를기울이면님, 즐거운 한주되세요.

귀를기울이면 2011-05-15 19:05   좋아요 0 | URL
그때 그때 이슈에 맞는 책을 내는건 좋지만 아닌걸 그렇다라고 우기거나 그런척 하는건 책소비자로써 기분이 않좋더라구요. 책소개가 좀 편향성도 보이고.. 좀 정직하게 갔으면 없는 시간 쪼개서 이렇게 페이퍼까지 쓰진 않았을텐데요.

날씨가 너무 좋군요. 마고님도 즐거운 한 주 되시길~

아이리시스 2011-05-17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반갑습니다!

저도 비슷한 이유로 이 책 읽을까말까 했는데 한 번에 정리해주시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 읽지말자로 가닥이 잡히네요. 복지라는 주제를 제대로 짚어내줄 괜찮은 책으로 기대했는데 아쉬워요. 이슈는 좋은데 우기거나 그런 척 해서 한몫 잡으려는 건 역시 보기 안좋군요. 고맙습니다.^^

귀를기울이면 2011-05-17 09:39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갑습니다.^^

퇴직자에 대한 부담으로 휘청이게된 GM이야기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걸 우리나라의 '복지'와 연결시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경이 놀라운 상상력(또는 화장술)으로 해냈더군요.
따로, 원자력발전이나 높은 집값 처럼 현재를 위해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전가시키는 정책결정과정의 문제점을 알아보는 거라면 가치가 있을수 있겠지만 '복지'에 대한 관심에서라면 이 책은 '아니다'라는 결론입니다.
 
복지전쟁 - 연금제도가 밝히지 않는 진실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손성동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실소를 금할수 없는 책제목과 책소개. 한경은 책도 신문과 같은 정신으로 만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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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 100미터 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장점만 보였던 대상을 자세히 보니 흠이 보인다는 뜻이다.  '제1권력'이라는 책을 보면 러셀에 대한 짧은 언급이 나오는데 거기에 나온 레셀이 바로 100미터 미인같은 존재였다.  엄청난 저서와 다방면의 천재적이며 왕성한 활동은 일종의 '영웅'같은 이력를 보여주지만 영국같은 열강의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찬동하였기에 나에게는 100미터 미인에 불과해 보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엔 100미터 밖에서도 바라볼 일 없긴했지만.

 식민지 경영 찬성론자라는 말을 반신반의했으나 러셀의 이 책을 읽고나서 그러한 내용이 사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슨 의도였는지 공공연히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그의 글이 베스트 모음집이라는 이 책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인 통치자들이 아프리카인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중략)....  아프리카인들이 행정적인 훈련을 받고 책임감 있는 습관을 기르기 전에 갑자기 자유를 획득하게 되면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이식한 문명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p.37)

-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 (1951)

미개한 사람들은 스스로 질서를 유지할수 없으니 자신들이 개입해야한다는 그런 뉘앙스의 이야기들...  바로 조선을 강점한 일본제국주의의 신봉자들이 했던 그런 이야기다.  소위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행적을 미화할때나 쓰던 논리가 러셀의 베스트중 하나라니 참 씁쓸한 일이 아닐수 없다.

 100미터 미인이라는 말이 좀 억울할수는 있겠다. 러셀이 살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야하니까. 우리가 세종대왕을 반천을 구분한 인권파괴자에,  남녀차별을 당연시한 마초로 부르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의 논리가 인종주의적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가져온 주장과 동일선상에 있다는것만으로도 '미인'의 한 꺼풀은 벗겨주는게 옳을듯 싶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니 뛰어난 사회활동과 반핵운동을 펼치기는 했지만 우리가 생각했던(?)만큼 결함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알고보면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할것이다.) 

 사람은 그렇다치고, 이 책은 어떠한지 한 번 볼까?  이 책은 기존 러셀의 40권의 저서와 10여 편의 연설문 등에서 추려 뽑아낸 베스트라고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그렇게 됐겠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은 없고 주로 한 쪽 미만의 짧은 글조각들이 책 전체를 채우고 있다. 이 글 속에서 러셀은 시종일관 기존 사회의 불합리한 통념과 가식을 꼬집고 조소한다.  특히 종교(주로 기독교)에 대한 내용이 적지 않은데 기독교에 대한 러셀의 인식을 한마디로 표현한면 이렇다  

"말이 안된다" 

 베스트 선집 편집자는 이러한 러셀의 종교관에 대해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라고 변호(?)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러셀의 입장은 불가지론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인의 허위와 모순된 성경해석 등에 대한 비판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했던 것으로 보아서는 최소한 기독교에 관해서는 신은 없거나, 있다해도 성경을 통해 우러러 보았던 그런 존재는 아닌것으로 본듯하다. 

 책 내용은 그닥 베스트다운 특별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음식으로 치자면 좀 싱겁다고나 해야할까? 가끔 통쾌한 이야기도 있고 따분한 이야기도 있고 신선한 발상도 있고, 지금은 상식이 된 이야기도 있다. 그런 글들이 이것 저것 섞여 있어서 전체적인 인상은 아주 아주 평범한 글모음집이 되어버렸다.  
 이 책으로는 러셀의 대강만을 느끼고 책 머리에서 권하듯 원출처로 제시된 40권의 책 중에서 관심가는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이 책의 좋은 활용 방법이 아닌가 싶다.  도저히 이 책으로는 러셀이 뭘 봤는지 모르겠다.  실은 저 식민지 옹호 입장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좀 꺼림칙할 정도니까.

 

사족.  책 목차를 보면 각 장 제목 아래에 주저리 주저리 글씨가 많다. 처음엔 해당 장에 대한 개요쯤인가 해서 열심히 읽었는데 알고보니 그냥 그 장 본문 내용중 일부를 중복 게재한 것에 불과했다.  그럴꺼면 목차는 그냥 목차를 알아 보는데 충실할수 있게 단순화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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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연애를 하거나 함께 살거나 할때 가장 힘든 일중 하나가 감수성의 수위를 맞추는 일이 아닌가 싶다. 기실 많은 오해나 다툼이 거기에 기인하기도 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어떤 사람은 심드렁하게 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충격을 받기도 하곤 하니 말이다. 이런 감수성의 차이는 으레 남녀차이로 치부하기 쉬우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살아온(살아가고 있는) 환경의 차이가 더 영향을 주는것으로 보인다. 

서경식 교수는 그의 조부때 한국(조선)에서 일본으로 이주해간 재일교포 3세대(때론 2세대라고도 이야기한다)이다. 일본에서 나서 자라고 살았기에 일본어라는 가해자의 언어로  피식민지인의 아픔을 이야기할수 밖에 없는 남다른 감수성의 인물이다. 그런 그의 감수성은 본토(한반도)인의 둔감함을 헤집고 다니고 아우슈비츠의 유태인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과 베트남의 농민들과도 연대한다.  

   
 

로시 감독의 영화가 제작된 것은 1996년이었다. 대략 프리모 레비 사후 10년의 일이었다. 대중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진 그 오락영화를 보고, 나는 불과 사후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프리모 레비도 이렇게 화석화 되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유태인학살에서 살아남아 증언을 남긴 프리모 레비에 대한 영화를 보고 쓴 글의 일부인데 '화석화'라는 말이 마음에 와서 '탁'하고 박혔다. 원본은 간데없이 변질된 각질과 뼈만이 남아 해석하는 이가 재단하는대로 평가받는 과거의 유물.  어쩌면 우리는 매일 매일 화석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언어의 감옥
 '언어의 감옥'이란 표현은 꽤 의미심장하다.  어느 시인이 '꽃'을 통해 인식(이름 부르기)하기 전후의 존재는 전혀 같지 않음을 이야기했듯, 그런 '인식'의 과정을 우리는 '언어'를 통해 항상 체현하며 살고 있다. 공기 같아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사랑'과 '愛'와 'Love'와 'Amour'는 같은 '사랑'일까?
언어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렇지 않음은 충분히 안다. 마치 무지개를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정확히 7가지 색깔로 구분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경계와 경계사이의 그 수천가지 오묘한 색깔이란... 그 경계를 나누는 방법은 언어의 수 만큼 다양하기에 나의 언어로 타인의 언어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존재하는 것은 알지만 표현할 언어가 없을때, 나의 언어를 타인의 언어로 온전히 변환할 수 없을때 그것이 바로 감옥이 되는 것이다. 나같은 범인에게도 그러한데 그것이 모어(母語)와 모국어(母國語)가 다른 사람에게야...  

 저자는 일본에 사는 조선민족으로의 불편한(?) 위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언어는 감옥이 되었고 일본은 그들을 타자로, 한국은 일본인으로 인식한다. 분단된 현실때문에 애초부터 돌아갈 고국이 없었던 조선인들은 그래서 3세대가 태어나도 4세대가 태어나도 안착하지 못하고 부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피곤한 현실을 아무도 바로 보아주지 않는다. 한일 협정때 김종필은 아예 이랬다지?  
"저들(일본)과 동화되라."  

 

개인의 죄, 국민의 책임
책의 상당 부분은 일본이 자신의 과거사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비평으로 채워져 있다. 이 글들을 통해 정기적(?)으로 터지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나 '통석의 념'같은 사죄같지 않은 사죄의 표현, 새역모 교사서 등으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일본 내의 과거 식민지배와 전쟁책임에 관한 평가의 흐름을 새롭게 배운다. 
현재 대세는 알려진 대로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데, 그런 흐름의 현장 분위기와 내용을 자세히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들 논리의 빈곤함과 허약한 인식에 통렬한 반격을 가한다. 

하지만 그 논리적인 반박에 오히려 한국인인 나는 점차 주눅이 들었다. 일본인의 자기중심적인 논리(라기보다는 억지)는 실은 한국의 경우라해서 그닥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 덕에 이만큼 발전했다고 하질않나, 취약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급히 한일협정을 하면서 자국민과 동포의 식민지하 피해 파악과 보상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일괄 사면시켜준 정치인과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있고, 지금은 그런 자들의 혈연적 정치적 (그런게 있다면)사상적 유산을 물려받은 이가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오르기까지 하니 어찌 고개를 들수 있을까.
저자가 일본의 책임을 물었던 논리의 결론은 "개인의 책임은 물을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일본(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은 피할수 없다"는 것이므로 이것은 곧 나의 책임이기도 한 것이다. 내가 직접 수행한 일이 아니라 해도 한국 국적자로서 그 역사의 공과를 모두 누리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를 휘감고 있다고 느낀 그것을 아마 '경험의 감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참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왠지 쓸쓸하다. 듣는 이 없이 공중에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아마 소수자의 목소리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소수라는 말인가?  그건 경험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감옥에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우리)다. 그는 경험을 했고 나는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저자가 '언어의 감옥에서' 받은 것들을 '경험의 감옥에서' 그대로 돌려 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의 '서시'가 온전히 일본어로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 그의 경험은 나에게 온전히 오지 못하고 있다.  더 가까워질 여지는 있지만 아마도 절대 건너지 못하는 선은 영원히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쉽지 않게 읽었다. 그 사유의 깊이가 깊어서, 그가 겪는 불편함이 느껴져서, 그리고 그가 우리를 찔러서...
 리뷰를 쓰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인것 같다. 책의 깊이를 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수많은 오해와(오해는 연인사이나 대통령과 국민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표피적인 이해로 상처를 줄까봐서다. 그러나 변명처럼 항상 외우고 다니는 이 말 '三人行 必有我師'를 도피처 삼아 못난 것은 못난 대로 쓸모가 있지 않을까 나름 가치를 부여해 본다. 

뭐, 어차피 내일이면 화석화될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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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에 대한 동경을 품어본적 없는 이가 있을까? 그러한 우주를 표현할때 흔히 '무한한 우주'라 부르곤 한다. 정말 무한한지 유한한지는 모르지만.  그 '무한'하다는 인식은 신비로움, 뭔가 탐구해야만 할일이 남아 있을 것 같은 호기심 등을 불러일으킨다. 우주는 무한할까? 우주의 밖엔 또 우주를 감싼 우주가, 그 밖엔 또 그러한 우주가 있진 않을까?
 한편으론 '무한'이란 너무 허무한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한히 살 수 있다면 삶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진다. 오늘 일은 내일 하면 되니까. 오늘은 무한히 연기되고 일상은 무기력으로 가득찰지도 모른다. 

무한에 관한 많은 사유와 사고실험, 그리고 역설을 만나볼수 있을것 같아 기대 되는 책이다. 

  

 

2.  인지자본주의  

 책 소개글 중 일부분이다. 
"현대 첨단 과학이 주목하는 ‘인지’라는 말과 정치경제학 용어인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결합시킴으로써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규정한다."   
자본주의가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를 거쳐 3기 인지자본주의 시대로 넘어왔다고 진단하며 이것은 이제 신체뿐 아니라 지적인 능력(심지어 꿈까지)을 포획하고 조종한다는 개념임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이해하는 단어로 바꾸면 화이트칼라 자본주의라고나할까? 세상은 확실이 기계화 자동화, 그리고 창의성이 필요한 일의 종류와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마르크스시대의 환경과는 확연히 다르게 바뀌고 있다. 몽키 스패너 대신 키보드와 마우스 노동자들이 대세가 되어간다.  노동 형태가 다른만큼 자본의 지배방식도 다를 것이며 당연히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너무 앞서가는 개념은 아닌지, 아니면 불필요한 개념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읽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3. 희망을 찾는가
 대안 노벨상(이른바 바른생활상)이란게 있다는 것을 이 책 소개를 보고 처음 알았다. 매년 스웨덴에서 환경, 평화, 인권 등의 분야에서 업적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한다.
이 책은 수상자들의 연설과 인터뷰, 근황 정보등을 엮은 책이다.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희망'이 있음을 느낀다. 터무니 없는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세상 어디에선가는 실천하고 또 실현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게된다면 그게 곧 희망이 아니고 무엇이 될수 있을까. 

 작지만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건 '연대'라고 생각한다.  과장일지라도 이 책 소개의 마지막 문장은 믿고만 싶다.

"경제성장과 개발, 물질만능주의의 신화를 극복하고,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책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4. 마이크로 코스모스
 "미생물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으며 우리의 일부분으로 존재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그들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 중략.. 지구에서의 생명의 역사 바로 그것이다" 
책 서두에 있는 추천사의 일부다.

 김영사에서 이번에 나온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하나다. 클래식이란 단어가 붙어있는 것으로 짐작가능한데, 이 책의 원본은 최근작이 아니라 1986년 작이다. 인간중심의 오만에 가까운 인식을 넘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오류가 많고 어쩌면 지층에 얇은 화석층만 남기고 멸종할지도 모르는 미약한 존재임을 알고 겸손해질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아마 당시에는 획기적인 개념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충격효과는 없을테다. 그러나 (비교할 능력은 없지만) 그 이후로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겸손해졌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확인할 길 없다. 여전히 이 책의 주장이 더 크게 울려퍼져야 한다는 뜻이다.

  

목록에 넣지 못해 아쉬운 책들..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는 분류가 예술이라 포함시키지 못했다.
<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는 (규정은 없으나) '언어의 감옥에서'와 같은 출판사라 제외.
<하버드 경제학>은 분류가 경영경제라 제외. 자본주의는 인문분야인데 경제학은 경제분야라..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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