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널'에는 한국인의 '일상'에 대한 은유가 자주 보인다.
물론 이 영화 자체는 매우 극적인 사건과 극적인 순간들로 가득하지만 그게 따지고 보면 한국의 일상보다 더하지 않다는 점에서 웃픈 영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은유가 아니라 묘사가 맞겠다.)
문제해결보다는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과 공무원들,
인명보호보다 비용절감과 이익수호에 안달이 난 기업인들,
국민의 생명보다 국가경제가 더 걱정인 65%의 국민들,
그리고 화룡점정, 쓰레기 기자들.
특히나 나는 문제 해결시에 벌어지는 관료주의적인 행태들이 더 공감이 갔는데
그것은 아마도 하루의 대부분을 관료주의가 횡행하는 직장에서 보내는 일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하다보니 일로 상대하는 상대방이 대부분 금융회사들이라 금융권의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으며 일을 한다.
대충봐도 알고 겪어보면 더 잘 알겠지만 금융계라는게 매우 보수적 관료적이다.
모든 금융회사, 금융기관, 금융공무원들의 수장을 할아버지들이 돌려막기하며 도맡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와 거의 동급의 전통과 힘을 가진 산업이기
때문에 자부심은 높고 변화에는 둔감한 공룡같은 조직인 탓이다.
(미국 대통령을 미국금융계의 이너서클에서 낙점한다는 식의 음모론도 이해가 간다)
암튼 '보여주기'를 위해 하는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앞으로도 당분간 근본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 상품의 가짓수나 인터넷 홈사이트나 TV광고는 세련되어지겠지만.
금융계만이 아니라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게 상당수의 노인 세대들인데
노인 세대가 한국전쟁과 그 이후 가난했던 시절의 고생을 겪었다는 점은 참작해야 하지만
그들 스스로 성조기를 몸에 휘감고 인정하듯 미국(미군)덕에 쌓은 부인데
마치 자신이 이룩한 업적인양 착각하며 독재자들을 찬양하거나
세월호 문제에 혀를 차거나 건국절 개념으로 친일매국을 용인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젊은 세대를 아이 낳는 기계요 일하다 병들면 버리는 노예로 취급하며
다시 나라를 망국의 길로 몰고가는 꼬라지를 보자니 한심하다는 생각만 든다.
이미 노인세대에 대한 존경심이나 존중감은 떨어버린지 좀 됐지만
내가 점점 더 그들의 (내가 예전에 바라봤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이 그때
나이들어 어쩔수 없었던게 아니라 그냥 X같아서 그랬다는 걸 느껴가기에
마지막 가진 인간적 연민마저도 마지막 잎새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전에는 "너도 나이 들어봐라"라든가 "나는 어려봤지만 넌 늙어봤냐?"라는 말에
대꾸할 말이 없었지만 이제 나는 "그때 왜 그랬어요?"라고 반문할 수 있을것 같다는 말이다.
영화에서는 자재를 빼돌려 부당이익을 챙기는 부실공사가 터널 붕괴 원인으로 암시된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실제 2010년 이후 백수십 곳의 터널에서 부실공사가 이뤄졌다는
보도가 나온다.
상당부분 '보여주기' 탓이다.
보여지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
필요하지만 보여지지 않는 것은 삭제되거나 축소되고
필요없지만 보여주기가 필요한 것들은 불필요하게 자리를 잡는다.
사람도 마찬가지.
필요한 사람은 사라지거나 제거되고 쇼맨들만 남아서 불필요한 일을 반복한다.
어두운 터널이 끝나지 않을 것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