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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언 - 전3권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지음, 조영학 옮김 / 김영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난 웬만해선 몇권으로 나뉘어져 나온 책을 한꺼번에 구매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그 책을 다 살거라는 예감이 팍팍들고, 달랑 2권짜리로 나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히스토리언'은 예외에 속한다. 3권을 한꺼번에 구입해 쌓아두고 읽었으니...
드라큘라. 지금도 가끔가다 한 번씩 심심찮게 듣게 되는 그 이름. 참 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름이다.
먼저 무엇보다도 작가가 10년 가까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며 공을 들였다는게 맘에 들었다. 그 정도의 내공이 쌓인 소설이라면 구성에 약간 문제가 있더라도 충분히 눈감아 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구성 미흡에 대한 불안은 어느새 달아나고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아버지의 뒤를 쫓는 딸 이야기, 그보다 먼저 로시교수가 드라큘라의 흔적을 따라갔던 이야기 등. 이런저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뒤섞이며, 그 가운데 서로의 이해를 돕고 지침이 되기도 하는 편지가 등장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탄탄한 구성에 역사적인 사실, 다양한 인물들을 잘 버무려넣은 괜찮은 소설이라는 게 내 전체적인 평이다.
그런데... 별5개 주기엔 2%가 부족하단 느낌.
우리의 드라큘라공께서 아주 늦게 등장하셨다는 거? 굳이 앞부분에 나오지 않아도 소설을 이끌어 가기에 충분했으니 이건 상관없다. 정작 불만은 로시 교수가 남긴 편지에 등장하는 드라큘라의 모습 때문이다. 먼 옛날에 실존했던 인물을 재해석해서 지적인 고서수집가로 만들고, 야심가로 그린 것 까진 좋았다. 솔직히 그의 서재는 몹시 탐나기까지 한다.
작가는 잠시 이게 소설이란 걸 잊었던 걸까? 아니면 감당을 못해서 아예 손을 대지 않은 걸까?
이왕 동유럽 왈라키아 지방 역사이야기 하는 김에, 왜 그렇게 수도원장을 비롯한 여러 수사들이 드라큘라를 헌신적으로 도왔는지 설명을 더 해야 했다. 단지 드라큘라가 기독교 울타리를 부수고 있는 투르크족에 대항해 용감히 싸우고 영토를 수복한 인물이라서? 그래서 별로 내키진 않지만 영생의 비술을 시술하고 그의 일을 목숨걸고 도와줬다? 영생과 관련해 '세상이 변하니 나도 변해야겠지. 곧 이 모습도 필요없게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럼 어떻게 변한단 말인가? 드라큘라 전설의 기본 모티프 중의 하나가 변신인데, 그 변신과 관련해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더 꾸밀 수 있지 않았을까? 2% 부족하단 느낌...
거기다 그 오랜 세월동안 드라큘라가 계획한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안 나온 것도 옥의 티다. 물론 로시교수의 편지속에 대강 어떤 방향으로 일을 벌일 건지 언급돼 있긴 하지만,그래도 그 긴긴 세월동안 짠 계획의 일부를 노출시키면 안되나?
흡혈귀들의 보스로서 똘마니 관리가 허술해 보이는 것도 좀 마뜩찮아 보인다. 끈질지게 따라다니는 흡혈귀가 고작 사서 한명? 분위기상으로 드라큘라가 조직원 관리를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워낙 능력이 출중한 탓인지 신경안쓰고 내버려둬서 조직 자체가 좀 시원찮아 보이는 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서깊은 조직(?)인데...
이 것 말고도 아쉬운 점이 더 있다. 중간에 언급됐던 '아미월단'과의 관계나 마찰에 대해서 조금만 더 상세히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또 드라큘라 살아 생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포악해졌을까 더 자세하게 에피소드를 늘어놓았을면 좋았을 것 같다.
아, 로시교수가 편지를 좀 길게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쓰고 나니 아쉬운 점, 못마땅한 점만 잔뜩 늘어놓았군. 이럴려고 한 게 아닌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성도 좋고 캐릭터도 괜찮고, 소재나 배경도 괜찮다. 큰 기대하지 않고 읽는다면 적격일 듯. 드라큘라에 관한 지나치게 가볍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은 소설을 원하는 독자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