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 이야기 조선시대 회화사 1
조정육 지음 / 고래실 / 2002년 4월
절판


<풍죽(風竹)>

혹독하게 부는 바람에 휘날리는 대나무는 심하게 잎사귀를 떨고 있다.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움직일 수도 없는 처지에 바람이 분다고 해서 어디 숨을 구석이 있겠는가. 그저 온몸을 바람에 내맞기는 수밖에. 기왕 바람을 맞을 바에야 기꺼이 맞겠다. 그러나 굴복하지는 않으리라.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아프다고 엄살도 피우지 않으리라. 바람에 춤추듯 흔들리고 있는 대나무는 옆은 그림자까지 드리우고 있다. 아무리 심한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꺾일 수 없는 그의 의지를 댓잎 끝에 손톱처럼 꾹꾹 눌러 찍은 점으로 표시했다. -20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달팽이 > 인간 존재의 심연에서 피워올린 꽃
꽃들의 웃음판 -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정민 지음, 김점선 그림 / 사계절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한시는 한자로 쓰여진 시다.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한시가 주는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어야 비로소 그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표현언어가 다름으로써 생기는 미세한 맛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번역문을 실어놓았다 하더라도 원문을 따로 실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한자로 쓰여진 시는 우리말로 옮긴 것보다 더욱 간결하고 운율이 살아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따라서 한시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한문에 빨리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한시를 읽으면서 시와 한문 둘 모두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물론 욕심만큼 책을 덮고 난 후 만족스럽지는 않다. 아직 문맥속에서의 한자를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고 있고 옛 사람들이 자연을 보고 대하며 느낀 시정 역시 단번에 내 가슴을 파고 들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룩들지는 않았다. 비록 수백년 수천년 전의 시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슴속에서 느꼈던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봄꽃이 만발한 숲에서 한잎 한잎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느낀 감정들, 바람불어 잎새는 떨고 있는데 대지위로 무수히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느끼는 가슴떨림은 비록 그것이 언어적 표현으로 바뀌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이전의 가슴떨림의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즐거움과 행복함을 어찌 다 말로 하랴. 늘 그대로 있던 세상이 어느 순간 별안간 내 마음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뀌고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때의 느낌을 어찌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가슴떨림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고는 해도 어찌 글조차 남겨두지 않고 떠나보낼 수가 있겠는가?

  모든 대상은 마음 속으로 반영되고 그 마음의 빛깔을 통해 다시 가슴 속으로 들어간다. 가슴 속으로 들어가서 이루어진 일들은 때로 다시 어떤 마음을 만들어내고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며 음악과 그림 등 예술적 형태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마음에 있다. 우리가 격물하는 순간의 마음포착이 이후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온갖 감정들과 느낌들이 빚어내는 결과물로서의 세상을 대하면서 우리는 다시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내 젊은 날의 마음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변하지 않은 정서가 하나 있다. 그것은 기쁨과 행복감, 즐거움에서 느끼는 가슴떨림도 물론 좋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 속에서 애잔하게 울리는 떨림을 더욱 선호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새디스트나 매조키스트가 아니다. 쓸쓸함과 애처로움이 그 자체만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만드는 마음의 작용이 내 가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쓸쓸함과 고독함이 방울방울 혈관을 타고 굴러 내 온몸을 그것으로 채우는 동안에도 그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의 내성은 삶의 슬픔 밑바닥에서부터 깨닫게 되는 삶의 비밀의 문을 찾게 한다.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여유와 지혜를 추구하게 되고 그때에야 비로소 누구나가 꼭 거쳐야만 하는 그 문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표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게 됨을 알게 된다.

  한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뼛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외로움, 쓸쓸함, 그리움, 슬픔, 눈물없이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을 울리는 문학양식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인간 존재의 심연 그 보이지 않는 바닥에는 어쩌면 슬픔의 강이 흘러 그 물로써 삶의 기쁨과 행복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구판절판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갇르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상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1권 117쪽

"암기하는 것 말입니다."
골고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건 질문이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왜 다른 자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가 하는 겁니다."-2권 31쪽

"주석들이란 서가 맨 아래에 있는 책들과 같습니다. 몸을 굽혀서 봐야하므로 아무도 그것을 즐겨 읽지 않습니다."
"한 명의 시인이 표절하면 절도이지만, 많은 시인들이 표절하면 그것은 탐구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지은이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두꺼워진 겁니다."-91~92쪽

"부흐링 족은 원래 어디에서 왔습니까?"
골고는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아주 자세히는 우리도 모릅니다. 추측하건대, 알 속에서 병아리가 자라듯이 우리도 책 속에서 생겨 자란 것 같습니다. 지하묘지 아주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파손되기 쉬우며 해독 불가능한 룬문자들로 쓰인 책들 속에서요. 어느 때가 되면 책은 마치 알껍데기처럼 꺠집니? 그러면 도룡뇽처럼 작은 부흐링 족 하나가 그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지요. 그는 가죽 동굴까지 찾아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아마도."

"맞아요. 우리는 운하임의 악취나는 쓰레기장에서 나왔거나 아니면 악명 높은 잔인한 책 연금술사들의 증류기에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망가지도 부패한 오래된 책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깁니다."-96쪽

이곳은 태곳적에 쓰인 문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일까? 종이도 없고 인쇄도 없었던 시대에 쓰인 문학의 흔적일까? 이것들은 과연 장식이 아니라 문자들일까? 그렇다면 나는 아마 아주 초기 형태의 책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리라. 걸어가면서 읽을 수 있는 예술 형식이자 거대한 동굴 책 속을. 각각의 굴속에는 어쩌면 거대한 책의 각 장면들이 써 있을지도 몰랐다.-159쪽

책 위에 책들이 쌓여 있고
버려지고 저주받은 채
죽은 창문들로 장식되고
오직 유령들만이 사는 곳
가죽과 종이로 된
짐쨉茸錤?습격당하고
광기와 음향이 난무하는 곳
그곳은 그림자의 성이라 불리는 곳-160쪽

호기심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 그것은 우주 안에 있는 두 개의 가장 큰 제동력인 이성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호기심 때문에 결국 차모니아 공포소설들 속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이 어딘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안으로 들어갔다.-164쪽

우리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위(胃)인 것이다.-171쪽

"그 흐느끼는 그림자들이 누구 또는 뭔지 아십니까?"
................
"오래 생각해본 끝에 아주 오래전에 묻혀 잊힌 책들의 영혼이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슬픈 운명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239쪽

"별들의 알파벳이라니요? 문자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것은 알파벳이지만 리듬이기도 하다. 음악이고 감정이다."
................
"........만약 네가 별들의 알파벳을 마음대로 다룬다면 오름에 도달했을 때 거기서 우주의 모든 예술적인 힘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267쪽

처음에 아주 비약적으로 한 장면을 쓰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다가 언젠가 네가 피곤해져서 뒤를 돌아보면 아직 겨우 절반밖에는 쓰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앞을 바라보면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만약 용기를 잃으면 너는 실패하고 만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일을 끝내기는 어렵다.-33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미네르바 > 무겁다, 그러나...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터키를 서양이라고 해야 하나, 동양이라고 해야 하나? 유럽과 아시아 경계에 있어 어디에도 소속되기 힘들어하는 나라. 그래서 그럴까? 터키는 그만큼 자기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나라다. 유럽의 변방, 아시아의 변방인 터키. 대부분 유럽 국가의 종교는 기독교가 많지만 터키는 이슬람 국가다. 이 책은 그런 이슬람 문화와, 세밀화라는 예술, 남자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 세큐레의 사랑이 얽혀있는 추리소설이자 역사 소설이다.

소설은 1591년, 눈 내리는 이스탄불의 외곽에 버려진 우물 속에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가 말을 한다. 작품의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소설이다. 죽은 자뿐만이 아니다. 말(馬)이 이야기를 하고, 나무가 이야기를 하고, 죽음이, 금화가, 빨강색이, 개까지 나와서 말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화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그렇게 시점이 바뀌다 보니) 처음엔 누가 얘기하는지 헷갈린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읽다보니 몰입하는데 힘겨웠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시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지식의 폭이 깊지 못한 데서 오는 힘겨움이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살인사건의 원인은 사랑으로 인한 치정사건도 아니고, 돈이나 명예 때문도 아닌,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동양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 가치관의 갈등이 빚어낸 사건이다. 16세기, 터키의 전통 화풍인 이슬람 세밀화가 서양의 화풍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슬람 세밀화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즉 신이 인간을 내려다보는 예술이어서 인간의 시각인 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원근법을 사용하여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서양의 화법은 이들에게는 위험한 신성모독 행위이다. 그들은 평면적이고 투시적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신의 관점에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신성을 모독하면서까지 예술이 우위일까? 아님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가장 위대한 세밀화가는 자신이 일생을 걸고 얻은 화풍과 기법을 새 주인이 된 샤의 권력이나, 새 왕자의 기분, 혹은 다른 시대의 감각에 복종하려고 포기하는 일이 없다고 했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그림의 화풍이나 기법을 바꾸지 않으려고 스스로 용감하게 눈을 멀게 한다고 했네...”(p255)
그들은 자신의 화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는 것조차 거리낌없이 행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베네치아에서 초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에니시테는, 술탄에게 서양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종용한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술탄의 세계를 서양화풍으로 그릴 것을 명을 받은 밀서제작 책임자인 에니시테는 궁정화원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 넷을 뽑아 일을 착수한다. 그 일을 시작하면서 네 명의 세밀화가, 엘레강스, 황새, 나비, 올리브는 서양화풍에 흔들리게 되고 여기서 갈등과 불안을 느낀다. 결국 그 갈등은 살인 사건으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에까지 확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이 책은 세밀화뿐만 아니라 밀서제작책임자인 에니시테의 딸 세큐레와 살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12년 만에 고향에 온 카라와의 사랑이야기에도 흥미를 더해준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세큐레는 세상이 인정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남편이 전쟁에 나가 4년째 돌아오지 않은 미망인이다.(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세큐레를 열렬히 사랑하는 시동생 하산, 12년동안이나 한시도 잊지 못했던 카라. 이 두사람의 사이를 저울질하는 세큐레는 자기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 카라를 택하고, 카라는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살인 사건의 중심에 빨려 들어간다.

이 책은 알라딘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대대적인 광고 때문에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각 언론에서도 이 책에 대한 찬사는 뜨거웠다. “오스만 제국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을 놀라울 만큼 생생하고 정밀하게 재현해 낸 이 시대의 고전(미국/ 로스엔젤레스 타임지)” “현기증이 일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울 정도로 다채로운 세계문학의 진수(독일/프랑크푸프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 문학적 묘미와 재미를 결합시킨 완벽한 소설(영국/데일리 텔레크래프)”라고 하며 격찬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에서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격찬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일단 터키에 대한 문화적 이해도 부족하고, 예술에 대한(특히 세밀화) 지식도 부족한 탓일 것이다. 참 힘들게, 어렵게, 오래 오래 읽은 책이다. 그러나 읽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들 정도로 무게 있는, 값진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물만두 > 한편의 이슬람 세밀화!!!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책이 아니다. 그림이다. 그림을 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그래서 읽기가 어렵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이슬람 세계와 먼 거리를 유지했는지도 느끼게 되어 더 어렵다. 한 작품을 편견 없는 눈으로 작가가 쓴 길을 따라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 작품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화자가 따로 없고 각 단락마다 그 단락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작품이 이어진다.

하나의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은 어느 시대의 풍경화다. 그림 안에는 사람이 있고 개가 있고 나무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숨결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세밀하게 본다고 치자. 한 남자를 살펴보고, 그 옆의 여자를 살펴보고, 앉아 있는 개와 달리는 말과 나무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화가를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평가한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슬람 국가가 쇄락하기 바로 전 그들의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과 전통을 벗어나려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그러면서 그런 시대를 평범하게 살아간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고 그 시대에 묵묵히 서 있던 나무와 함께 살았던 개와 말과 그림에 칠해지던 색의 이야기이다.

아주 세밀하게 읽지 않으면 쉽게 지치게 되는 작품이지만 다 읽고 나면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공들여 읽으면 보상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야 할 것이다. 책 한 권을 이렇게 오래 읽은 적도 없었고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좌절한 적도 없었다. 나의 무지가 이 작품을 읽는 동안처럼 슬펐던 적도 없었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앞장부터 다시 읽고 싶은 욕망을 느낀 적도 없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진가는 읽는 사람 개개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책이다. 차라리 한 장의 그림이 있다면 보여주고 싶을 뿐...

더 할 수 없는 글은 책 내용으로 대신하고 싶다. 1권 320쪽의 내용이다. 

색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색은 눈길의 스침, 귀머거리의 음악, 어둠 속의 한 개 단어다. 수천년 동안 책에서 책으로, 물건에서 물건으로 바람처럼 옮겨 다니며 영혼의 말소리를 들은 나는, 내가 스쳐 지나간 모양이 천사들의 스침과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들의 눈에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나의 신중함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동시에 나는 공중에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날아오른다. 이것이 나의 가벼움이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시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