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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수영장 수박 수영장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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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사고 싶었던 그림책을 벼르고 벼르다 지난주 토요일 교보에 갔을 때 구입했다.

 꼭 사고 싶었던 이유는...

 안녕달의 그림책이니까.

 

 전작 <할머니의 여름 휴가>에서 너무 귀여운 할머니 때문에

 안녕달 작가에게 반한 후

 이 작가의 책은 다 사고 말겠어,

 해 놓고는

 2015년 발간된 책을 이제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어제,

 이제는 다 커서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 따위에는 흥미가 없는 아이들을 꼬셔다 옆에 끼고

 <수박 수영장>을 읽었다.

 

 줄거리야 수박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이야기지만,

 마치 정말 수박 수영장에 들어가는 듯

 서걱 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수박 물이 고일 때 내 입속에 고이는 달콤함,

 수박색 물 속에 온 몸을 파 묻을 때 느껴지는 사각거리는 차가움.

 

 저렇게 따뜻한 그림체가 이토록 오감을 자극하다니.

 

 보고 또 봐도 아깝지 않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글밥이 적은 대신 의성어, 의태어가 많아서 읽는 즐거움도 있다.

 

 

 한참을 넘기는데, 영아가 말했다.

 

 "근데 좀.....

 드럽겠는데?"

 

 "......"

 

 

 갑작스런 팩트 폭격에 순간 할말을 잃었다가

 셋이 한바탕 낄낄대며 웃었다.

 

 웃으면서 생각했다. 우리 아이의 동심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래도 괜찮다. 한여름 밤에 이렇게 낄낄대며 수박 수영장에 앉아있을 수 있다니.

 좀 더러운 수영장이라 한들 어떠랴. 먹지마, 먹지마, 먹지만 않으면 되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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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초등학생 질문 그림책 3
채인선 글, 한지선 그림 / 미세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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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숫기가 없고 예민한 큰애는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 했다. 낳았을 때부터 그러리라 짐작했던 것이 딱 낳아놓고 보니 내 판박이인게 생긴대로 논다고, 성격도 나를 닮을 줄 알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사회 생활(?)을 좀 시켰다. 이십 몇 개월인가부터 어린이집을 들어가 유치원까지 만 5년을 별 탈 없이 지냈으니, 학교에 가도 특별히 친구관계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여겼다. 그래도 보험 삼아 내가 휴직계를 내고 들어앉았다. 여차하면 내가 발 벗고 나서서 친구를 만들어 줄 참이었다. 1학년때  친구가 6년은 간다하지 않는가. 6년을 우리 애가 친구 없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바짝 긴장이 들어서다.

 

   그래도 1학년은 쉽지 않았다. 그 엄마에 그 딸인지, 나도 그리 사교적이지 않으니 아이에게 이렇다 할 코칭을 해 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여차 저차 엄마들은 사귀어 놨지만 엄마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 동안 우리 애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엄마 옆에 딱 붙어 있을 뿐이었다. 친구는 엄마가 만들어 줄 수 없는 것이란 걸 뼈저리게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엄마, 애들이 끼리끼리 놀아, 나는 안 끼워줘. 이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따돌림 당하는 게 아니어도, 참 마음 아플 일이었다. 가장 순진무구하게 뛰놀며 학교생활을 즐겨야 할 1학년 시기에 우리 아이만 어울리지 못하고 멀뚱멀뚱 겉돌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학교 가기 싫어, 나만 친구가 없단 말이야. 이런 말을 되풀이해 들으며 그럭저럭 1학년을 마쳤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후반부에 가니 아이도 제법 안정감을 찾은 듯 해 나도 그만 (부랴부랴) 직장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는 언제 다시 말할 짬이 있을 것이다. 내 평생 별 탈 없으면 휴직은 없다. 난 정말이지 직장 생활 체질이다. 내게 남은 육아휴직 가능 기간은 26개월. 쓰지도 않을 거, 팔 수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친구 사귈 걱정에 잠 못 자던 내 어릴 적을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겨우 1학년을 마쳤는데. 이것을 또 되풀이해야하나.

 

   다행이도 기우였다. 2학년 학부모 참관수업에 가니 쉬는 시간이 되어도 학교에 찾아온 엄마는 돌아보지 않고 제 친구에게 쪼르르 가버린다. 다행이다. 일단 친구를 만들었으니. 한 고비 또 넘긴 셈이다.

 

   이제 시작이다. 녀석의 교우관계는. 친구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앞으로 그녀석이 자라는 만큼 변할 것이다. 친구는 어떤 존재인지, 친구라는 세계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친구가 잘 되는 것에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그래서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채인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채인선 작가의 글은 늘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명료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함한다. 친구에 대한 모든 것을 질문으로 담아놓았다. 아이에게 그림책의 가장 첫번째 질문을 해보았다.

 "영아야,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같이 노는 사람이지 뭐. 그러네. 정답이데. 여기도 그렇게 써 있구만, 같이 노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씩 웃는다. 책이라고 어려울 게 없구나. 친구가 같이 노는 사람이 맞구나 싶은가보다. 그제야 책에 집중하더니, 금세 친구란 존재에 대한 더 깊은 물음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많이 어려울 것이다. 질문이 주는 의미도, 그 답을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도.

 

   부디 이 책을 자주 펴보면 좋겠다. 이제 가 아니라 우리라는 관계에 발 들여놓은 아이지만, 곧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터이다. 친구의 눈에 들기 위해 를 놓아버리는 순간도 올 것이다. 친구와 함께하기 위하여 내 도덕적 신념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친구에 대한 열등감에 몸을 떠는 고단한 밤도 있을 것이고, 친구의 좋은 날에 기꺼이 박수쳐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에 시달리는 날도 맞을 것이다. 나를 꺾지 못해 고독을 맛보기도 해야 할 테고, 배려를 하려다 불편을 만들어내기도 할 것이다. 그때마다 이 책을 펴고 다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구하면서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과 함께 우리 아이 인생에 있어 친구란 존재가 가르침이고 축복이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여전히 친구라는 존재가 어려운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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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 최영대 나의 학급문고 1
채인선 글, 정순희 그림 / 재미마주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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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짝꿍 최영대>는 나의 첫 그림책이다.(사실 그림책이라기보다 글그림책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의 그림은 내게 ‘삽화’ 이상의 의미다.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동화책이 아니라 그림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이기도 하고, 내가 그림책을 읽기 시작한 때 막 만난 그림책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걸 읽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인지, 어떻게인지도 모르게 내 손에 들어왔고, 우연히 책을 펴 읽는 순간, 한 순간에 나를 울렸다. 그리고 봐도 봐도 눈물이 난다.

   아이들한테 이 책을 읽어주면 우리 아이들은 책은 보지도 않고 내 양 옆에 앉아 내 얼굴만 본다. 엄마가 이번에도 우나, 안 우나 확인하려는 것이다. 뚫어지게 내 표정만 탐색하는 네 개의 눈을 감지하면서도 나는 어김없이 매번 같은 장면에서 또 눈물이 난다. 책을 덮고 오늘도 또 울었음을 확인하면서 나를 매번 울리는 이 책의 힘에 놀라곤 한다. 자주 들쳐볼 수는 없다. 너무 마음 아픈 얼굴은 자주 들여다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래도 지금껏 나를 열 번은 울렸나 보다.

 

   왕따 동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짝꿍 최영대>는 엄마를 일찍 여읜, 그래서 말을 잃어버린, 꾀죄죄한데다 냄새까지 나는 ‘영대’가 전학을 오면서 시작된다. 아이들의 잦은 괴롭힘과 따돌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고, 시작은 그렇게 진부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대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풀어갈까? 우리는 책을 읽지 않아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영대의 새롭게 발견되는 능력, 아이들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능력이 드러나면서 아이들이 영대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 전개가 있을 수 있다. 많은 왕따 동화의 전형이다. 그 ‘가치’ 혹은 ‘능력’으로 선생님 혹은 어른들의 칭찬을 듣게 됨으로서 영대를 다시 보게 되었다든지, 혹은 위기의 순간에서 친구들을 구해낸다든지...... 동화의 세계보다 현실의 세계에 맞추어 예를 들어보면, 그 반의 인기가 많은 한 친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세(勢)를 좀 얻는다고나 할까? 많은 이런 류의 이야기가 난 정말 불만이다. 사람은 사람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을 가르쳐야하는데, 왜 누구에게나 발현되지 못한 달란트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따라서 지금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그 달란트가 발현될 나중을 생각해서?) 무시하거나 따돌리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말 못마땅하다. 사람은 그 사람 자체로, 아니 모든 생명은 그 존재 자체로 존엄한 것이며 그 누구도 그것을 짓밟을 수 없다는 논리는 무엇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둘째, 영대가 참다 참다 통쾌하게 복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스토리 전개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전개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재미지겠지만,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묻고 싶다. 자꾸 그런 이야기가 듣다보면 어른들도 아이들도 현실에서 정말 그런 극적인 탈출구가 존재할 것만 같고, 그래서 피해자인 아이들이 스스로 해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다. 그래서 ‘왜 당하고만 있는지 모르겠어.’라는 대사가 가해자에게서나, 방관자들의 입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당하는 아이가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입장을, 그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는 현실을 위로한다. 그것이 가끔은 시간을 견디게도 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도 한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전개보다는 두 번째 전개가 속 편하다. 물론 <내 짝꿍 최영대>의 스토리 전개는 위의 둘과는 거리가 있다. <내 짝꿍 최영대>는 더 큰 위로가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전개를 제외한 <내 짝꿍 최영대>만의 스토리를 들어보자.

 

   영대의 반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다. 다들 들뜬 모습이고, 영대도 첫 여행에 말없이 들뜬 모습이다. 그리고 수학여행 첫 날 밤, 영대의 울음이 시작된다. 다른 날보다 더 심한 괴롭힘도 아니었고, 더한 따돌림도 없었는데, 늘 듣던 ‘엄마 없는 바보’라는 한마디 놀림에 잠자리에 누운 영대는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들이 ‘영대가 울 수 있다는 걸 몰랐’을 정도로 그저 참기만 했던 아이가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어깨를 출렁이며 울’기 시작한 거다. 선생님은 영대를 달랠 수도, 야단 칠 수도 없어, 결국 ‘우리’를 혼내기 시작했고, 늘 영대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온 ‘나’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영대에게 사과하기 시작하지만, 영대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는다. 결국 선생님의 계속되는 기합과 영대의 그치지 않는 눈물 때문에 아이들도 하나 둘씩 울고 반 전체가 눈물 바람이 된다. 선생님도 울고 영대도 울고, 우리 모두 운다. 그렇게 수학여행의 첫날이 지나가면서 갈등은 마무리된다.

 

   이것이 <내 짝꿍 최영대>가 선택한 결말이다. ‘측은지심’.

   아이들이 선생님의 꾸중과 벌 때문에 우는지, 아니면 정말 영대에게 미안해서 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행간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아니 믿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그 아이들이 진심으로 영대의 울음을 마음으로 들었고, 그 울음을 통해 영대의 슬픔을 함께 느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 구절을 읽는 나에게도 영대의 울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이 아이들에게 발동했다. 한 사람으로서의 나, 존재로서의 내가 그와 똑같은 외로움과 설움을 겪는다면 얼마나 괴로울 것인지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을 것이다.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을 것이고 그리고 자라면서 두고두고 영대의 울음을 꺼내 볼 것이다.

   그렇게 그 사건이 해프닝이 아니라 지속성 있는 깨달음일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그날 밤을 보내고 나서 아이들의 영대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버스 안에서 화해의 행위가 감동적으로 이루어지고-나는 또 울었는데,- 마침내 영대는 반 친구들에게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아이’가 된다. 그저 다시는 따돌리지도, 놀리지도 않았다가 아니라, 이제부터 사이좋게 놀았다가 아니라, ‘소중한 아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영대에게 말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엄마처럼 달래주기도 한다. 우리가 스스로 지켜낸 아이, 우리 스스로 깨달은 친구의 존엄함, 그것이 영대이고 그래서 영대가 아이들에게 소중한 아이로 느껴졌던 것이다. 계속 지켜주어야 할 아이로 인식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어른들의 역할이 없다. 나는 아무 대안도 없이 영대가 따돌림 당하는 것을 두고 본 담임선생님이 정말 무능력하고 느꼈는데, 어찌보면 이 이야기에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아무 역할도 맡지 않았던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그런 캐릭터로 인해 리얼리티도 얻었다. 꼭 진짜 교실에 있을 법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내 짝꿍 최영대>의 결말은 심심하다. 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이다. 공감으로 소외를 극복하다니 진부하지만, 되려 어렵다. 아이들의 마음이 아니라면 어떻게 울음 하나로 남을 이해하는 순간이 그렇게 쉽게 오겠는가. 그래서 그들의 마음씀은 참 아름답고 고맙고 눈물나는 것이다. 내가 남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순간, 그것이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어린 아이들의 마음으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바로 그 말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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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거북 그림책이 참 좋아 15
유설화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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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설화의 그림책 슈퍼거북은 어른들한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왜냐하면 슈퍼거북욕망’, 특히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란 단어는 원래 어른들의 전유물이지 않은가.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아는 토끼와 거북의 우화에서 시작한다. 얼떨결에 토끼를 이겨버린 거북이 꾸물이는 주변사람의 관심과 찬사에 정말로 슈퍼거북이 되고자한다. 진짜로 빨라지기 위한 꾸물이의 고군분투가 이어지고 다시 토끼로부터 도전장을 받는 꾸물이. 과연 꾸물이의 욕망은 충족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꾸물이는 행복해질까.

 

  「슈퍼거북은 다른 이들에 의해 심어진 그릇된 욕망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그런 욕망이 있고, 그런 그릇된 욕망 덩어리가 지금의 우리 사회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부를 얻으려하고, 왜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아이들을 끊임없이 다그치는가.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부추겨 생겨난 욕망인가.

 

  내 삶이 지금 소진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슈퍼거북을 읽은 후 나를 치열함으로 내모는 욕망을 깊이 들여다보길 권한다. 그것이 진정한 내 욕망인지. 그 욕망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

  그러나 욕망이란 원래 탐함이고 탐함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이니 누구로부터 나온 욕망이든지간에 행복은 욕망과 대척점에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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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납치 사건 그림책이 참 좋아 30
김고은 글.그림 / 책읽는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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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고은 작가의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아주 깜찍한 그림책이다.

 

  제목부터 표지까지, 첫 대면부터 범상찮다. 엄마, 아빠, 아이 세 식구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에 꽁꽁 묶여 하늘로 끌려올라가고 있다. 제목을 보아하니 그 세 식구는 동아줄에 이끌려 어디론가 납치되어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아빠는 묶인 채로 발버둥 치고 있고, 엄마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두 손을 꼭 모으고 빌고 있다. 그 위로 태양이 이들을 비웃듯 이글거린다. 표지 가득 하늘만 보이는데도 바다가 생각나니 이 두 사람만 없다면 바캉스 배경이 따로 없다. 오로지 주인공 만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에 대고 ”, 이 납치사건엔 모종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이야기 또한 기가 막힌다.

  열심히 일하러 가던 아빠, 엄마는 각각 자신의 가방과 치마폭에 납치를 당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 떨어뜨려진 엄마와아빠와 나는 집도, 회사도, 학교도 다 잊고 신나게 놀았는데, 아무 일도 없더란다. 그렇게 끝!

  그런데 이 황당한 납치사건이 너무나 위트 있게 그려졌다. 아침 730분 "일해역" 3-1 승강장에서 만원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아빠 "전일만"씨는 사람들에 떠밀려 지하철을 못 탄다. 첫 등장부터 누락, 낙오된 아빠는 가방과 함께 승강장에 널브러져 있는데  그런 아빠를 아빠의 가방이 덥석 삼켜버린다. 아빠는 가방에 잡아먹혀 버린 것일까.

 

  체통 없이 삼켜진 것으로도 모자라 아빠는 그림책의 주인공 자리도 빼앗긴다. 다음 페이지부터는 가방이 주인공이다. 그 아빠의 가방은 홀로 기차역으로 가 아빠의 지갑에서 꺼낸 아빠 돈으로기차표를 끊고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산다. 아빠는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심하게 아빠 가방의 연식을 추리해 본다. 기차여행에 삶은 달걀과 사이다, 가방의 연식이 아빠와 동년배인게 틀림없군. 그렇게 납치의 긴장감이 잠시 풀어진다.

  

  여기까지도 나는 우스워 죽을 판이었는데, 그 가방이란 놈이 기차에 올라타 느긋하게 달걀과 사이다를 까먹는 동안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보고 빵 터져버렸다. 아빠 대신 주연을 꿰 찬 가방의 위상에 굴하지 않고 일품 연기력을 보여주는 그 앞좌석녀는 코가 빠지기 일보직전이고, 내가 어쩌자고 이런 험한 일을 겪는가, 내가 오늘 살아나갈 수는 있을까 싶은 얼굴이다.

 

 

  이런 코믹한 장면이 이어지다 -엄마는 치마폭에 싸여서, 아이는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숫자들이 풍선의 공기처럼 빠져나가면서- 결국 세 식구는 무인도에서 만나게 된다. (가방은 무인도에서 아빠를 뱉어냈는데, 애초에 소화를 시킬 생각은 아니었던 듯하다.)

  옷도 다 벗어 던지고 신나게 하루를 논다. 어쩔 것인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져 버렸는걸. 짐짓 어쩔 수 없음을 가장한 채 오랜만에 휴가를 보내게 된 세 사람. 신나게 놀고 해가 지는 해변에 누워 아이는 중얼거린다. “그래도 별일 없었어요.”라고.

 

  그렇다. 별일 없는 것이다. 하루쯤 쉬어도.

  독자들도 멈춰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나도 누가 좀 납치해줬으면.

 

  그런데 뒷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가방이랑 치마는 다시 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을까? 그래서 그들은 꿈같은 하루의 휴가를 가끔 기억하여 다시 그 쳇바퀴 도는 전쟁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왠지 그렇게 뒷이야기를 상상하면 비극인 것 같다. 그런 상상은 마지막 페이지의 독백 그래도 별일 없었어요.”의 여운을 꿀꺽 삼켜버린다. 그 독백의 여운이 계속되려면 그들은 그만큼 계속 쉬어야 한다. 질리도록, 걱정되도록 그렇게 오래도록 그래서 다시 일상에 오더라도 다시는 예전처럼 복잡하게 살지 못하도록, 가방 따위가 제 주인의 딱함을 못 본채 하지 못해 꿀꺽 삼켜버리는 하극상 따위는 생겨나지 못하도록, 오래오래 그렇게 쉬어야 할 것 같다.

 

  살다보니 그리고 자식을 키우다 보니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조금 멈칫거리게 된다. 오래 생각하면 정말 그런 답을 얻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하기가 귀찮다, 어렵다, 힘들다. 그리고 정말 그런 답이 나오면 어쩌나. 깊고 깊은 고찰 속에 얻은 결론이 그렇게 나와 버린다면. 그렇게 살아도 아무 별일 없다고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한 번 사는 인생을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 결론이 나와 버린다면, 정말 그렇게 살 자신이 없는 나는 정말이지 그런 결론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 가족에게도 하극상의 가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의가 아니라 고의가, 의지가 아니라 핑계가, 그리고 나를 납치해 줄 누군가가 말이다.

 

  누군가에게 이 그림책은 그렇게 살라는 실천의 격려이며 응원이겠지만, 나에게 이 그림책은 다른 의미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다들 생각하고, 결론내리고, 그 결론을 실천하기까지의 용기를 이끌어 내는 일련의 과정을 힘들어 한다고, 그래서 나처럼 몇몇은 그걸 덮어두고 잠시 잠깐의 멈칫으로만 경험하며 살 뿐이라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범상치 않게 실천으로 나아가도, 남아있는 평범한 아빠, 엄마는 그저 누군가 납치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그런 삶을 산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그런 위로다.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담보로 사고의 나태함을 얻어낸 어리석은 인간 군상을 위한 위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변명에 얽매여 시간을 향유할 수 없게 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 바고 그런 나를 위한 위로. 그러고 보면 그림책은 늘 나를 위로해 준다. 그러고보니 나는 또 좋은 친구를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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