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황인숙)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수줍은 제비꽃에 벗은 완두콩.
그에게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
그럼그럼 딸길 살까 바나날 살까?
아니면 익살맞은 쥐덫을 살까?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한 쾌의 말린 뱀. 목에 늘인 할아범.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뽀골뽀골 미꾸라지 시든 오렌지
아니면 특제실크덤핑넥타이.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복작복작 밀리며 걷는 내 손엔
한 쪽엔 아이스크림 한 쪽엔 풍선.
농담처럼 절뚝절뚝 뛰는 지게꾼.
그 위를 바싹 쫓아 빠져나왔죠.
주머니에 뭐가 있나 맞혀보아요.
바로바로 올림픽 복권이어요.
만약에 첫째로 뽑힌다면은
아아아아 재밌어 너무 재밌어
풍선처럼 그이는 푸우 웃겠죠.

        통나무로 만들어진 쥐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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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8-1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쥐덫 압권 ㅎㅎ
저두 이 시 좋아해요. 조잘조잘 거리는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리드미컬한 운율도 좋구요. 카테고리에 올린 시 목록을 보니 제 서재에 올려놓은, 겹쳐지는 것들도 몇 편 있네요. 님도 최승자, 황인숙을 좋아하시는군요 ^^

검둥개 2005-08-1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쥐덫 맘에 드셨어요? 사실은 현대식 쥐덫 사진을 찾으려고 했는데 엽기적이라 그런지 안 나오더라고요. 저는 시를 좋아하지만 플레져님만큼 많이 알지는 못해요 ^^;;; 그냥 눈에 보이는 게 있으면 적어두고 한 두 번씩 읽어보려고 하는 거죠. 헤헤

릴케 현상 2005-08-1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테고리만 만들어놓고 게으름 피웠는데 여기서 곧잘 퍼가게 되네요^^

검둥개 2005-08-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를 같이 좋아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______^
 

올슨 스콧 카드의 소설  읽기를 마쳤다. <엔더의 게임> 시리즈를 쓴 작가인 만큼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읽었는지 전반부는 진행도 좀 느리고 인물들도 좀 건조한 듯 해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중반이 넘어서면서 점점 흥미진진해져서 재미있게 완독했다.

올바른 리더쉽이라든가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관한 작가의 관심이 언뜻언뜻 엿보이는 이 소설은 약간 특이한 형태의 판타지다. 소설의 모티브는 "잠자는 공주". 카드는 주인공인 이반 스메츠키를 중세 러시아/우크라이나로 보내고, 마녀의 마법에 걸려 영원한 잠에 빠진 공주를 입맞춤으로 깨우게 한다. 러시아문학과 신화학을 전공하는 러시아태생 유대계 미국인 대학원생 이반 스메츠키는 그 순간부터 공주의 왕국을 마녀의 손에서 구해야 하는 대과제에 직면한다.

등장인물들의 생각하는 내용이 일일이 독백처럼 묘사되는 부분들은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별로 깊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재미로 읽기에 좋은 책이고, 특히 중반 이후로는 등장 인물들과 줄거리 모두 생생하고 박진감 넘친다. 

물론 중세가 나오는 SF라면 역시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

이 책은 그 만은 못하다. 별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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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8-0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엔더 시리즈, 참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궁금한데.. 번역되기는 하려나요?
교보나 반디가서 원서코너 뒤져볼까.. ;;

검둥개 2005-08-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여행 잘 다녀오셨죠? 인기작가니까 아마 번역되지 않을까 생각돼요.
엔더 시리즈도 보니까 그 새 다 번역되어 나왔더라구요. ^^*

panda78 2005-08-0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 엔더 시리즈, 금방 절판됐어요. 그런 거 보면 다시 안 나올 거 같아서요. ^^;;

검둥개 2005-08-0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몰랐어요. 으, 절판이란 단어는 세상에 좀 없었음 좋겠어요. 찾던 책이 절판으로 나오면 너무 슬퍼요 ^^

panda78 2005-08-0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어찌나 책들이 빨리 절판되는지.. 맘에 드는 책 보이면 바루바루 사 놔야 한다니까요. ^^;; 쩝..
전에 헌책방에서 사자의 대변인 1, 2권 묶어서 25000원에 파는 것도 봤어요. 희귀한 아이템이라(정가는 14000원정도였던가..?) 비싸게 받더라구요. ;;

검둥개 2005-08-05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구구, 그렇군요. 어쩜 그건 인기가 좋을 것 같았는데 금방 절판됐네요. 저도 살까말까 하고 망설이는 책들이 좀 있는데, 절판되기 전에 질러야겠다는 마음이 자꾸만 굳어지네요 ^^;;;
 

나를 구부렸다 (이수명)


복도 끝에 너는 서 있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나는 허리를 구부렸다.

그 때 피어난 바닥의 꽃을 향해
그 때 숨어 든 꽃의 그림자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구부러진 채
나는 펴지지 않았다.

복도를 떠돌던
나의 빛은 구부러진 채
나의 나날들은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다.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그 때 흔들린 꽃에 대해
그 때 사라진 꽃의 그림자에 대해
나는 말하지 않았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구부러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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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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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황인숙)


찍는 것이지요.

그리는 게 아니구요.

질질 끄는 게 아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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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7-25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저 압정...처럼!!

검둥개 2005-07-25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압정처럼 날아서 확 찍으라는 거겠죠? ㅋㅋ 플레져님 휴가 잘 다녀오셨죠? ^^

릴케 현상 2005-07-2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압정으로 마침표를...이렇게 엽기적인 신 줄 몰랐네^^

검둥개 2005-07-2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 정도를 가지고 엽기라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