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부렸다 (이수명)


복도 끝에 너는 서 있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나는 허리를 구부렸다.

그 때 피어난 바닥의 꽃을 향해
그 때 숨어 든 꽃의 그림자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구부러진 채
나는 펴지지 않았다.

복도를 떠돌던
나의 빛은 구부러진 채
나의 나날들은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다.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그 때 흔들린 꽃에 대해
그 때 사라진 꽃의 그림자에 대해
나는 말하지 않았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구부러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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