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많이 걸린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튀김'이라고 검색어를 쳐봤다. 시가 하나도 안 떴다. '튀김'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이 없다는 것이 갑자기 목이 매이게 슬프다. 이럴 땐 나도 상당히 희한한 인간이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도 담배 냄새를 없앤다고 애매한 촛불까지 켜놓고 창가에서 담배를 피워대던 날들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원래 멀쩡한 직장이 있는 사람보다 백수 활동하는 인간이 돈은 훨씬 더 필요한 법이다. 당연히 과외비 떨어지는 날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과외는 시간당 임금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일거리인데도 늘 마음에 물린 덫처럼 나를 절름대게 했다. 그 때 나의 자아상은 과외 활동 따위에 훼손될 정도로 형편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자아상이 있기나 하다고 생각하며 그 시절을 지냈을까 궁금할 정도다. 지나간 날들은 종종 거대한 기름종이처럼 눈 앞에 일렁인다.
흰 봉투를 받아든 날이면 늘 내가 너무 장해서 상을 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좁은 길목에 미니 수퍼가, 그 건너편에는 초미니 튀김 가게가 있었다. 의자며 테이블이며 따위 같은 것 아예 있지도 않았으니 가게라기보다는 좌판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그 튀김 가게의 자산은 기름이 가득 담긴 튀김 솥 하나와 그 기름솥으로 밀가루 반죽을 튀기는 아줌마가 전부였다. 코흘리개들이 늘 한 둘씩 어슬렁거리는 그 튀김가게의 메뉴는 단촐했다. 고추 튀긴 것, 계란 튀긴 것, 오징어 튀긴 것. 동네의 할 일 없는 한량들이 그 곳에서 튀김을 사 가지고서는 그 옆에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허연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미니슈퍼에서는 맥주 두 캔을 사고 튀김가게에 가서 고추 튀김을 여남은개를 산다. 집에 와서는 정말이지 나의 현실과는 실오라기 하나의 관련도 없는 이국 땅에서 만들어진 침침한 영화들을 비디오로 돌려보며 맥주를 홀짝이고 튀김을 씹었다. 종이봉지에 무지막지하게 배어나는 그 기름에도 별 감흥이 없었으니 그 때는 참으로 어둡고 칙칙하고 암울한 것이 맞춤복처럼 딱 맞던 시절이었나보다.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난다. 맥주를 혼자서 마시던 버릇은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 맥주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고추 튀김 생각이 난다. 지금 구해 먹어봐야 그 때 그 맛이 날리가 없건만, 칙칙한 영화를 보고 싶은 날이면 패키지로 맥주에 튀김까지 부둥켜 안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