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작년 여름에 각각 다른 학위를 얻어 졸업을 하고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했다. 졸업 전까지는 둘 다 학생 노릇을 했고 나는 말단 사무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연소득이 바닥이었는데 졸업을 하고 이직을 하면서 갑자기 연소득이 두 배로 증가했다. 덕분에 월세 내고 전기세, 수도세, 난방비, 전화비, 가스비, 등등 갖가지 고지서들을 내고 나면 식비와 책값으로 끝나던 과거와 비교해 주말마다 영화관에 갈 수 있고 와인이며 보드카를 홀짝거릴 수 있는 꽤 호사스런 등급으로 격상되었다.
학생 때 벌던 생활비가 워낙 미약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월급이 두 배로 뛴다는 상황은 상당히 특별한 것이라, 우리는 행복지수도 당연히 더블이 될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별로 그렇지 않다. 그냥 좀 낫다, 하는 정도인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되려 어리둥절해졌다. 과거에는 모든 불행의 원천은 얇은 월급봉투 때문이라 생각해서 일단 졸업만 하고 취직만 하면, 하는 소리를 밥먹듯이 하곤 했는데 막상 그걸 다 해냈는데도 엄청나게 행복하진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보다 훨씬 넓은 집에 사는 것에, 예전보다 훨씬 자주 시장을 보러 가는 것에, 예전에는 꿈도 꾸지 않던 온갖 종류의 술을 사 마시는 데 신속하게 익숙해져 간다. 바뀐 환경에 놀라워하는 것이 한 달을 채 가지 않고 마치 평생 그 환경에서 살아온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무거운 빨래 꾸러미를 들고 아파트 건물 지하실에 있는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를 쓰려고 4층 계단을 왔다갔다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몇 달만에 집에 딸린 세탁기와 건조기에서 아무 때나 세탁을 하는 걸 당연시하게 되었다. 가끔씩 이야, 집에서 편하게 빨래를 할 수 있으니 정말 좋다, 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고, 이제 예전에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서 4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불평을 해댈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무덤덤해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들에 덜 민감해지는 것. 현재의 상황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 마치 예전에 있었던 일은 가끔씩 안주거리로 추억하기에나 좋은 오래된 과거로 치부하게 되는 것. 나이를 먹으면서 분기탱천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서히 지루하고 고루한 성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절부절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