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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
김세걸 지음 / 어진소리(민미디어)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학교 문집에 낸다고 아들놈이 글을 한 편 쓰고 있었다. 동화를 짓는 중이란다. 흘낏 보니, 어떤 놈이 착했는데, 15세에 반항을 하다가 생일날, 학교도 안 가고 자유의 날을 만끽한 다음 그 깨달음으로 나중에 대통령이 된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제목이 '하루의 자유로 대통령이 된 성오'란다. 성오란 살필 성자에 꺠달을 오라고 지었다나.
그런데 그 깨닫는다는 것이, 심부름하지 않고 살려면 높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뭐 그런 꺠달음이었다.(열띤 토론 결과, 남을 돕고 살다 보니 훌륭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서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걸로 바꾸긴 했다.)
오 마이 갓! 사회적 지위가 높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 아이마저 그렇게 되고싶어 한다는 걸 알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회적 지위를 갖는 이유가 편하게 살기 위해서라니.
얼마 전에 '떠나라,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 문구에 혹해서 샀던 <아들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이 생각났다. 그 책의 저자 김세걸은 10살짜리 아들과 함께 미국과 유럽을 여행한다. 아이가 열살이 될 때까지 국내동거형 기러기아빠(자녀교육의 모든 책임은 아내에게 미룬 채 돈만 벌어오는 아빠)에 속했던 저자가 여행 내내 '공부 만능주의' '공부 못하는 놈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에 은연중 젖어있던 아이를 보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던 터였다.
공부를 잘하면 사회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고, 소위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선 열시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오지 않았는가 묻는 글에 사실 가슴이 뜨끔했다. 머리 속에서 이성은 훌륭한 사람을 주장하지만 내 행동과 말은 공부 잘하는 사람을 추구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공부 만능주의에 빠져 있을까.
김세걸은 그것을 평등주의에서 기원하지 않았을까 이야기한다. 제도는 평등주의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의식은 양반사회의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신분차별이 철폐되고 평등주의가 실현되었는데, 의식 속에서는 '내가 비록 배운 것이 없어서 상놈들이 하던 일을 하면서 살지만 내 자식만큼은 양반처럼 살게 하리라, 명문대 가고 고시패스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결과의 불평등 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는 경쟁에서 살아남기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기, 성공한 자의 사회적 책임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을 통해 아버지가 느끼고 배우고 생각한 것의 핵심이라고 한다.
내 아이에게 어떻게 사회적인 책임을 가르쳐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문득 나를, 나와 남편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더불어 살아가기를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떠든다면 아이에게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가식적으로 보일 것인가.
아이의 숙제를 보면서, 나는 또 앵무새 같았던 엄마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다. 입으로만 떠들었던 앵무새 엄마!
남편에게 큰아이와의 여행을 권했지만 남편은 시큰둥이다. 흥, 그도 비슷하다. 국내동거형 기러기아빠! (그러고 보니 우리집은 조류 가족이로군. 아빠는 기러기, 엄마는 앵무새... 애들은? )
차라리 내가 이 책의 저자처럼 아이와 함께 한달쯤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다. 세 놈 뒤치닥거리에 머리아플 여행 말고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그런 여행.
앞으로 3년 후쯤이면 혹시 될라나? 그 전에 아이 앞에 떳떳해져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