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을 뽑는 공고를 냈다.

아무도 안 온다.

어디에 내셨냐고 해서 찾아다 사서들이 즐겨 가는 페이지에 내려고 봤더니........

헉, 사서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사서교사 자격증 그거... 사실 별로 많지 않다. 문헌정보학(내가 대학다닐 때는 도서관학)을 4년 전공해야 하고, 교직 이수도 해야 한다. 그런데 전혀 쓰임새가 없었던 그 자격증은, 우리 때 공부 잘 했던 애들도 별로 하지 않았다. 다소 소심해서 어디다 써먹을지 모르니 무조건 따 두자 했던 친구들이랑, 나처럼 교대를 가고 싶어했는데 내 학비를 댈 분들이 안 보내주셔서(그건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ㅠㅠ) 그 한풀이로 교직을 이수했던 부류들이 있었을 뿐이다. 아, 그리고 공주사대 출신들은 모두 가지고 있다.

아, 내 친구도 있다. ~꿘이었던 내 친구는 거의 수업을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성적은 괜찮아서 교직이수의 자격이 되었다. 자기는 교직 이수하기 정말 싫은데, 순전히 자기가 노트를 빌려야 하는 내가 교직을 이수하기 떄문에 따라했다. 아직도 나 때문에 자기 학점이 엉망이라고 궁시렁댄다. 헉, 4년 내내 노트 빌려주고, 노트 서머리해주고...그때는 '내가 니 덕분에 졸업한다'라고 하더니만.

어쨌든, 그 자격증 가진 사람 구하기 쉽지 않을 거라 말씀드리고, 나도 여기저기 퍼다 두었다.

그런데...

어제 하루 무려 8군데서 전화가 왔다고 하고, 전화 안한 채 이력서 들고 찾아온 사람도 댓 명이란다.

교감선생님은 엄청 당황하셨다.

저, 나는 어떤 사람이 잘 할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니까 혹시 조언을 좀 해주실랍니까?

이러시면서 보여주신다. 두세 명 오면 뽑겠는데 너무 여럿이 오니 도대체 뽑질 못하시겠단다.

제가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겠다고 말씀드리면서도 흘낏 보니, 이력서가 화려~하다. 현직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런저런 자격증을 엄청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사서교사는 아니지만 사서자격증은 다 있다.

갑자기, 내가 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게 과연 잘 하는 짓일까 생각했다.

취업란이 대단한가 보다. 미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을 놓고도 이렇게들 박이 터지니 말이다. 남편은, 그 자리 권리금 받고 팔아란다 ^^

그만 두려니 갑자기 학교도서관의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슴 한 켠이 아릿하기도 하고, 괜히 걸래들고 다니면서 책상을 박박 문지르기도 한다. 겨우 16개월 일했으면서 40년 일하고 정년퇴직하는 것처럼 온갖 감정은 다 잡는다...ㅠㅠ

그동안 벌어진 일이야 정말 하루하루 전쟁이었지만, 그 기억들이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아이들 하나하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한동안 좀 아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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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10-2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란 것이 그렇게 요기롭지요. 아프고 슬픈 기억은 싹 지우고 좋은 장면만 계속 보여주는....
이왕 결정하셨으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시고, "에이, 씨워언하다!"고 나오세요. 나중에 분명, 더 좋은 기회가 생길거예요.
(그리고 권리금...ㅎㅎ 그거, 발상 죽이네요.^^)

로드무비 2004-10-2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든 일 마쳐놓고 왜 그만두시려고요.
어련히 알아서 하신 결정이겠습니까마는 조금 아쉽네요.^^

2004-10-20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10-2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결정하고 나서는 절대 돌아보지 마세요 님 결정이 아마 옳을 겁니다.

숨은아이 2004-10-20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글도 그렇고요, 글을 읽다 보면 영화처럼 스르르 그림이 떠오르는데, 참 아름답고도 슬퍼요. 이렇게 아름다운 느낌 안겨주신 호랑녀님께 좋은 일만 있기를.

호랑녀 2004-10-2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2월까지 일할 거, 넉달 일찍 그만 둔 건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은 섭섭한 마음보다는 시원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군요.
진우맘님,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기회는 아이들과 함께 할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사실 우리애들 너무 방치했거든요.
로드무비님... 우리학교 선생님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셔요. 이제 바쁜 일 다 끝났구만 왜 관두냐구요. 그런데 전 그냥 팔잔가보다고 얘기했어요. 바쁠 때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었지요. ^^
마태우스님, 돌아보지는 않아요. 그냥 그만 두려고 보니 한 순간 한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아이들 하나하나도 참 소중하구요.
숨은아이님... 왜 아름답고도 슬플까요... 가을이어선가? 제 마음을 들켜버린 것같아 가슴이 덜컥 합니다 ^^
속삭여주신 님, 아마 더 자주 들어올 거에요. 다시금 알라딘폐인의 길에 접어들 것만 같은 예감이 들지 않으십니까? ^^

아영엄마 2004-10-2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으로서는 그만 두려니 정말 섭섭하시겠고, 요즘 일자리 구하는 사람 많다는 걸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음.. 저도 이삼년지나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