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준형이라고 해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어요.
내일은 제 생일이에요. 엄마 아빠는 잃어버린 자전거를 다시 사 주시겠다고 하는데, 저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게임시디가 갖고 싶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안 사주실 것 같아서 산타할아버지께 부탁드리는 거에요.
꼭 선물해주세요.
지금 자고 있는 아들놈이 머리맡에 곱게 편지를 써두고 잔다.
내일은 아들놈 생일. 세상에, 10살이나 된 놈이 아직도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쓴다. 것두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생일인데... 진짜 산타에게 보내는 건지, 아님 엄마 보라고 써둔 건지 잠시 헷갈리지만, 워낙 순진한 놈이니(지 동생들에 비해) 혹시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산타클로스마을의 홈페이지에 아이들의 주소를 올려두고 돈을 보냈더니 핀란드 우표와 소인이 찍힌 편지가 크리스카스 무렵에 도착했었다. 그 편지를 받고, 산타를 믿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왜 친구들은 못받고 자기만 받았는지 궁금해하길레(친구들의 엄마는 돈을 안 보냈고, 니 엄마는 돈을 보냈다 가 정답이지만) 산타는 자기를 진심으로 믿는 친구들에게만 편지를 보내는 게 아닐까? 라고 답했었다.
어쩄든... 난 이미 이놈의 생일선물을 사버렸으니, 이를 어째야 할까 잠시 고민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게임시디를 사러 나갈 수도 없다. 이미 늦었다.
그러다, 이렇게 하기로 했다. 일단 작년에 왔던 편지의 문투를 그대로 흉내내어서 편지를 썼다.
200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북극에서
나의 사랑하는 친구에게
나의 고향인 이곳 코르바툰트리에서는 이제 막 크리스마스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요정들은 음악을 연주할 준비를 하고, 또 다른 요정들은 친구들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바쁩니다.
아직 때가 아닌데 어디서 날 부르는 소리가 나서 달려와 봤더니 친구로군요.
아, 오늘은 준형이의 생일인 모양이군요.
산타클로스는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1년을 준비한답니다. 친구들의 생일도 축하해주면 좋지만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생일까지 기억하기에 나는 너무 늙었답니다.
조금 실망스럽지요?
허허...
그렇다고 나를 믿고 편지를 쓴 준형이를 외면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지요? 지금 선물을 준비하기도 힘들군요. 내가 너무 늦게 왔거든요.
아, 어떻게 할까요... 자전거로는 안 되겠어요?
음...
그럼 내가 가진 돈을 놓고 가지요. 그 선물은 아마 준형이 어린이가 구할 수 있을 거에요. 3만6천원이로군요. 이마트에 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네요? 산타클로스가 준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준형이 친구에게 해 주기 시작하면 다른 모든 친구들도 아마 산타클로스를 불러댈 걸요? 그러면 난 크리스마스 준비를 못해요. 그러니 다른 친구들에게는 꼭 비밀을 지켜줘야 해요?
가만, 준형이 친구는 올해 차분하고 꼼꼼한 태도를 많이 길렀나요? 작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으로 알려졌군요. 좋아요. 아주 잘 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어요.
자, 그럼 산타클로스는 이만 가 봐야겠군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서 루돌프 썰매도 타지 못하고 왔거든요. 항상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는 친구가 되기를 바래요. 안녕.
당신을 사랑하는 산타클로스로부터
그리고 현금으로 넣어두었다.
난 절대로 게임시디는 안 사주는 게 원칙인데...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일까...